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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과 스트라빈스키, 그들의 ‘신화와 성서(Myth & Bible)’

[클래식에 빠지다] 샤갈과 스트라빈스키

2022.06.24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화가와 작곡가다.

유명 예술가답게 두 명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막상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대중적 사랑을 받는 샤갈의 그림은 국내전시회나 해외유명 미술관을 통해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클래식 애호가나 연주자가 아닌 이상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익숙한 음악은 아닐 듯 하다. 심지어 연주자나 평론가도 변화무쌍한 그의 음악에 대해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17일은 스트라빈스키의 탄생 140주년이 되는 날이다. 샤갈과 스트라빈스키는 19세기말에 태어나서 20세기말까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러시아 출신의 예술가다.

서로의 인상에서 느껴지는 모습과 성격적으로 상이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작품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은 의외로 공통된 점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세기말 체제 붕괴와 세계대전, 냉전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러시아와 프랑스 파리, 미국을 돌아다니며 방랑자의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 그림과 음악은 삶에 어떤 의미로 투영되었을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사진=저작권자(c) ITAR-TASS/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사진=저작권자(c) ITAR-TASS/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뿌리(Root)

어느 분야에서나 높은 수준의 경지에 다다르면 ‘예술의 경지’라고 말한다. 신기하게도 예술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함이 있다.

자신의 꿈과 야망을 좇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샤갈과 스트라빈스키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 그들 작품에 종종 드러나곤 한다.

그들에게 공통된 영감의 원천 중 하나는 바로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태어난 19세기말 러시아는 당시 시대의 역사적 요구로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청년시절 로마노프왕가의 몰락과 볼셰비키혁명을 목격했으며, 장년에는 공산화 된 소비에트 연방을 지켜보았다.

특히 샤갈이 태어난 러시아의 비테프스크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이자 장소로 활용되었는데, 그의 여러 작품 중 <비테프스크 위에서>, <나와 마을>, <산책> 등은 고향의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있다.

이곳은 그가 유년시절을 보내던 당시 인구의 절반이 유대인이었던 지역으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는데 샤갈 역시 유대인이었다.

그는 고향에서 유대인 방랑자의 아픔을 그림에 담았으며 아내 벨라와의 만남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들 또한 그의 스승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포함된 러시아 5인조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민속음악의 색채가 강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를 성공으로 이끌어 준 발레음악 <불새>를 포함해 같은 발레 음악인 <페트루슈카> 등은 러시아의 원초적이고 민속적인 색채가 녹아있는 음악들로 그의 정서적 뿌리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느낄 수 있다.

◆ 샤갈 : 신화와 성서(Myth & Bible)

샤갈과 스트라빈스키에게 신화와 성서는 중요한 예술적 동기이자 모티브다.

그들에게 신화와 종교는 각각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닌 서로 인과관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란 샤갈에게 종교는 삶의 일부분이자 그의 예술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다.

20세기 초 샤갈의 초창기 파리 유학시절은 피카소와 마티스, 브라크 등 입체파와 야수파가 미술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샤갈은 시대의 흐름을 흡수하며 자신만의 상상력과 개성에 충실한 공간과 개념을 창조했다.

인물들이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한 그의 그림은 중력을 거스르는 듯하며 동화적이고 몽환적 느낌을 주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여러 동물, 물고기, 바이올린, 꽃 등과 다양한 색상들은 상징화 되어있는 그의 무의식 세계를 잘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은 태고적 인류의 공통된 집단무의식의 발현인 신화처럼 보여지며 초현실주의와도 연결되는 듯 하다. 하지만 샤갈은 자신의 작품이 “비이성적인 꿈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의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라 말했다. 

그의 상징들은 종교와도 이어져 있는데 특히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수탉’은 그의 고향 비테프스크의 종교의식에 제물로 사용되었다.

종교적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수탉의 울음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탉은 샤갈 그림에서 종교적 의미를 포함해 연민과 애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그림 속 물고기는 한때 가톨릭의 비밀 표식으로서 종교적 의미와 생선장수였던 자신 아버지의 상징으로 중첩된다.

바이올린은 유대교를 믿으며 떠돌아다녀야 했던 유대민족의 악기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듯 샤갈의 수많은 상징들은 1930년대 성서작업을 의뢰 받고 예루살렘을 방문하면서 더욱 더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되며 민족의 고난과 운명에 관한 주제로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한편 말년에 그는 성당의 스테인 글라스 작업과 테피스트리, 그리고 성서적 주제로 국립 샤갈 박물관을 니스에 건설했다.

◆ 스트라빈스키 : 신화와 성서(Myth & Bible)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세계 역시 신화와 성서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추측하건데 젊은 시절의 스트라빈스키에게 종교는 큰 부분을 차지 하지 않았던 듯 하다. 세례는 받았지만 러시아 정교회에서 금하는 사촌간의 결혼을 한 사실만 보더라도 종교적 도덕의식이 높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오페라 오라토리오라는 독특한 장르를 선보인 작품 <오이디푸스 왕>은 신화를 모티브로 한 그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시인 장 콕도의 라틴어 번안을 대본으로 하고 있다.

작품 <페르세포네>도 역시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중요작품으로 초연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킨 <봄의 제전> 역시 신화적 느낌을 주는데, 특히 러시아 초원에서 유목민과의 전쟁을 연상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춤사위가 돋보인다.

작품을 통해 스트라빈스키는 인간의 원시적 야만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러시아적인 것에는 동양의 원시적 생명력이 자리잡고 있다고 확신해 그것에서 정체성을 찾았다.

초기작품은 러시아 고대문헌인 <원초 연대기> 등에 기록된 이교의 제사의식을 참고했는데, 이는 신화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느낌으로 작품에 영감을 주고 있다.

<봄의 제전>은 당시 파시즘과 전제주의의 공포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유럽인들에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야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연이은 아내와 큰딸,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삶의 큰 괘적이 바뀌었다.

이후 말년에는 미국으로의 이주와 함께 다양한 종교적 작품을 내놓았는데, 시편 <교향곡(Symphony of Psalms)>은 그의 종교적 성향이 잘 반영된 곡이다.

이 곡은 초창기 작품과 다른 성향인 신고전주의의 작품으로 하느님에 대한 숭배와 찬양을 나타냈으며 그리스도 이전의 소박한, 원시 그리스도교적인 것을 파악하려 꾀하고 있다.

이외에도 <노아의 홍수>, <칸티쿰 사크쿰>, <성 마르코의 이름에 경의를 표하는 성가>, <설교, 설화 및 기도>,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  합창곡 <케네디의 추억을 위하여> 등이 그의 종교적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넓은 의미에서 ‘신화에서 종교로’라고 말할 수 있다.

◆ 오페라 가르니에(Opera Garnier)

파리에서 직접 촬영한 ‘오페라 가르니에’. (사진=필자 제공)
파리에서 직접 촬영한 ‘오페라 가르니에’. (사진=필자 제공)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샤갈은 러시아 이민자 집단거주지에서 스트라빈스키와 조우했다. 그곳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오페라 공연의 무대를 샤갈에게 의뢰했고 샤갈은 자신만의 아름다운 감성으로 훌륭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전쟁 이후 파리로 돌아간 샤갈은 세계 5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 작업을 맡게 된다.

천장화에는 샤갈의 모든 예술성이 녹아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위대한 예술가들을 그린 한 쪽에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가 그려져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88세에, 샤갈은 98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들에게 창작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사랑했던 가족들과의 이별,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놓지 않았던 희망 가득한 꿈이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샤갈에게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를 의뢰한 작가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된다. 꿈 없이 가능한 일은 없다. 먼저 꿈을 가져라.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 추천음반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는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음반을 추천한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필자가 같이 리허설을 한 지휘자 중 귀가 가장 예민한 지휘자였다. 음반에서도 그의 이지적인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이외 안탈 도라티(Antal Dorati)의 음반도 명반이라 생각한다.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은 에사 페카 살로넨(Esa-Pekka Salonen)과 LA필하모닉의 연주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시편 교향곡(Symphony of Psalms)>은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콜롬비아 심포니(Columbia Symphony)와 함께 레코딩 한 음반과 솔티(Sir Georg Solti)와 시카고 심포니의 연주를 추천한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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