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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재생은 섬살이의 지속이다

[김준의 섬섬옥수] 서귀포시 가파도

2022.09.06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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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은 ‘죽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남’이라 정의한다. ‘죽게 되었다’는 상태는 누가 진단하는 것일까. 인간의 죽음은 의사가 판단한다. 그럼 섬의 상태는 누가하는 것일까. 주민일까, 여행객일까 아니면 행정일까. 대한민국의 도시, 농촌, 어촌 그리고 섬은 모두 재생 중이다.

재생이 아니면 예산확보도 어렵다. 우리 국토 최남단에 있는 가파도도 재생사업이 추진되었다. 작은 섬에 ‘탄소제로섬’과 ‘가파도프로젝트’ 등 두 차례나 진행되었다. 두 사업 모두 종료되었다.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궁금했다.

성게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가파도 해녀들.
성게물질을 마치고 나오는 가파도 해녀들.

가파도는 모슬포에서 5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섬으로 배로 10분이면 닿는다. 모두 20여 명쯤 탔을까. 손님을 마중 나왔는지 ‘가파도전기자동차’가 기다리다 마을로 들어갔다.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올레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몇 사람은 자전거를 빌려타고 출발했다. 가파도는 상동과 하동에 민가가 모여 있고 초등학교가 있는 ‘중동’에 몇 가구가 자리를 잡았다.

가파도 문을 열다

가파도는 사람보다 말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1750년(영조26) 국영목장이 설치되면서다. 진상용 흑우를 지키기 위해 40여 가구가 입도하면서 사람이 머물기 시작했다. 그때 이용했던 포구가 유람선이 도착한 상동마을 ‘모시리포구’다. 그리고 흑우를 지키는 별둔장을 설치했지만 1849년(헌종8) 영국인들이 들어와 흑우를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대정읍 목장을 모동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목장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을 이루었다. 하동마을 항개선착장 입구에 세워진 ‘가파도개경기념비’에 기록된 내용이다. 가파도에 정착한 사람들은 밭을 일구고, 어장지를 만들어 섬살이를 시작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비문에는 개경 40여년 후 ‘1886년 을유년 40호, 1985년 220호 인구 1036호’였다라고 시록했다.

벽화로 단장한 상동마을길.
벽화로 단장한 상동마을길.

개경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민들의 어장침탈이 이어져 잠수기어선을 타고와 전복, 해삼, 해초를 모조리 채취해 주민들이 나서서 싸워야 했다. 섬 주민들은 뇌물을 받고 어장침탈을 방조하는 관리나 조정을 믿을 수 없었다. 목사가 상주하던 큰 섬이 이러했으니 작은 섬은 오죽했을까. 제주사람들에게 왜구나 해적 못지않게 관리들도 경계의 대상이었다.

바람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

배에서 내려 상동마을 골목길을 걸었다. 예전에 비해 상가, 펜션, 식당, 카페들이 많이 늘어났다. 주민들만 아니라 여행객도 많이 머무는 마을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제주다운 돌담과 민가를 확인할 수 있다. 가파도 상동마을은 가파도 올레의 출발점이다.

상동마을에서 북서쪽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큰왕돌’을 만날 수 있다. 주변에 있는 돌과 견줄 수 없을 만큼 크다. 주민들은 큰 바람을 일으키는 바위라 해서 ‘보름바위’라고 부른다. 함부로 위에 올라가거나 걸터앉으면 태풍이나 강풍이 불고 큰 재난이 생긴다고 믿었다.

바람을 불러오는 바위로 알려진 ‘큰왕돌’.
바람을 불러오는 바위로 알려진 ‘큰왕돌’.

하동마을 본향당 옆에 ‘까마귀돌(동산)’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바람은 섬사람들에게 고맙고 두려운 존재다. ‘영등신’이 그렇듯이 제주도 사람들은 바람을 경계하며 신성시한다. 매사에 조심하고 자연을 거슬리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여행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올라갔다가 가파도 삼춘(제주에서 남녀 구분하지 않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르는 호칭)들에게 들키면 야단을 맞기도 한다.

가파도에는 상동 메부리당과 하동 할망당(뒷서낭당) 등 두 개의 본향당이 있다. 제주 본섬에서 심방을 불러 본향당 굿을 하는 것과 달리 가파도에서는 개인별로 간단한 제물을 놓고 가족건강이나 안전을 빌기도 한다. 본향당 외에 가파도 남동쪽 볼락코지 ‘말 잡는 목’에는 포제단이 있다. 이곳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유교식 마을제사를 지내는 장소다.

제주의 멋은 자연에서 나온다

큰왕돌을 지나면 흰 파도 너머로 마라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 년 내내 바람과 파도가 높은 곳이다. 그래서 가파도 동쪽해안에서 보았던 해녀들은 이곳에서는 볼 수 없다. 이 바람과 파도가 길러낸 것이 가파도의 명품인 미역, 톳, 가사리, 소라들이다. 개경 이후 150여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파도와 바람이 있어 가파도 섬살이가 가능하기도 했다.

소망동산에서 본 상동마을.
소망동산에서 본 상동마을.

마라도가 잘 보이는 해안에서 소망전망대가 있는 섬 안길로 들어섰다. 봄철에는 청보리가 물결을 치던 자리이다. 소망전망대에 오르면 상동마을과 하동마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바닷가에 작은 성냥갑으로 지은 집처럼 보인다. 그 뒤로 한라산과 산방산과 모슬봉이 자리했다. 경관작물을 심어 한껏 멋을 냈지만 청보리밭을 차지한 강아지풀만 못하다.

제주의 멋은 자연스러움이다. 가파초등학교를 지나면 하동마을로 이어진다. 하동마을에는 보건진료소, 복지회관, 교회, 강당 등이 있다. 항개마을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항개는 큰 포구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아기자기한 커피숍,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기념품 판매점도 눈에 띈다. 상동항에 비해 배를 접안하기 좋고 수심도 좋고 식수도 풍부했다. 까마귀동산이 포구 앞에서 파도와 바람을 막고 있어 가능했다. 마을 사람들이 까마귀동산을 신성시하고 함부로 오르지 못하게 한 이유이다.

누구를 위한 프로젝트일까

가파도에 문을 연 소품가게.
가파도에 문을 연 소품가게.

가파도를 찾는 여행객이 크게 늘었다. 올레길, 청보리축제, 탄소제로섬, 가파도프로젝트 등 많은 사업과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면서다. 여행객이 많은 마라도가 부러웠던 섬 가파도 주민들은 이제 행복할까. 여행객이 증가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2012년 추진된 ‘탄소제로섬(140억)’과 2013년 시작된 ‘가파도 프로젝트(150억)’ 사업이다. ‘탄소제로섬’이 계획대로 추진되었다면 가파도는 기후위기에 대응한 탄소제로의 시범지역인 ‘카본제로아일래드’로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전봇대가 없는 섬 경관을 얻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전봇대 대신에 섬 가운데 상징처럼 풍력발전기 2기가 우뚝 세워졌다. 하지만 풍력발전기는 돌아가는 날보다 멈춘 날이 더 많다. 태양광도 설치되었지만 여전히 디젤발전기를 돌리고 있다. 가파도 ‘탄소제로섬’ 사업은 2012년 세계인의 환경축제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제주에서 열리면서 발굴된 사업이었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가파도 전기를 충족하고, 더 나아가 2030년까지 제주도를 탄소 없는 제주도로 완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최근 가파도가 ‘소형도서재생에너지 전환사업’에 선정되어 65억 원을 투입해 탄소제로섬을 ‘재생’할 계획이다.

탄소제로섬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풍력발전기 2기.
탄소제로섬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풍력발전기 2기.

또 다른 프로젝트는 2013년에 대형 카드사의 사회공헌사업으로 출발한 ‘가파도 프로젝트’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참여해 가파도의 생태회복과 문화예술을 접목한 자립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당시 제주도지사는 가파도를 일본 예술의 섬 나오시마나 이누시마와 다른 품격을 갖춘 문화예술의 섬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 사업에는 150여억 원이 투입되고 문화예술인 등 전문가가 600여 명이 참여해, 가파도터미널·가파도하우스·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등이 만들어졌다.

초기 사업 결과에 대한 반응이 좋아 여행객은 20여만 명으로 증가했고 세계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빈집을 재생한 가파도하우스는 예약하기 어려울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제주도 감사 결과 ‘가파도하우스’는 자연취락지구라 숙박시설을 허가해 줄 수 없는 지역이고, ‘가파도터미널’은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커피나 음식을 판매하는 팔 수 없는 지역으로 확인되었다.

가파도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가파도터미널’.
가파도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가파도터미널’.

결국 행정이 관계법령을 위반해 건축하고 영업을 허가했다며 해당 지자체에 시정을 요구했다. 설상가상으로 시설을 위탁 운영하던 마을협동조합도 주민 대표성과 사업운영의 투명성, 조합원과 비조합 사이 갈등 등이 생겨나기도 했다. 프로젝트 이후 여행객은 늘었지만 주민사이에 반목과 고소고발 등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또 섬 재생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 땅값이 크게 올라 이제 주민들은 섬 땅을 살 수 없는 처지이다.

행정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마라도에 비해 여행객이 적어 재생이 필요하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가파도 주민들은 ‘바당’에서 톳, 가사리, 소라, 문어를 잡고 섬에 보리를 심어 생활해왔다. 재생도 중요하지만 더 강조해야 할 것이 섬살이의 지속성이다. 작은 섬은 오랫동안 얽히고 설킨 삶을 조율하며 살아온 생활공동체이자 경제공동체이다. 재생은 주민들의 섬살이가 지속될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재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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