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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예술세계가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이유

[클래식에 빠지다] 드뷔시와 모네, 두 명의 끌로드

2022.11.18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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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생 라자르 역(Gare de Paris-Saint-Lazare)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면 베르농(Vernon)역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10여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지베르니(Giverny)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은 모네(Claude Monet)가 머물던 집과 수련을 그리던 일본식 정원이 있는 장소다.

햇살이 좋은 따뜻한 날씨에 모네의 정원에 가면 연못에 부서지는 빛 줄기들이 노래 부르듯 반짝이고 있다. 연꽃의 뿌리가 보일 정도로 청명한 날씨와 맑은 공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색상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그의 수련연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떠오르게 만들어 준다.

가까이에서 작품을 보는 것보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편안하게 감상이 되는 인상주의 작품은 대상의 사실적 묘사보다는 작가가 받은 인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거쳐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상주의는 논리적 이성보다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 동안 서양을 지배해온 사상과 철학에서 벗어나 비로소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앙드레 지드의 “나는 감각을 통해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로 철학적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 19세기후반, 인상주의 회화는 음악과 문학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했다.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인상주의(impressionism) 단어의 탄생에는 두 명의 끌로드(Claude)가 있었는데, 바로 끌로드 모네(Claude Monet)와 끌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다.

모네의 작품 <해돋이>를 감상한 한 기자는 ‘인상주의’라는 단어를 만들어냈고, 드뷔시의 관현악곡 <봄>을 감상한 평론가는 인상주의 음악이라는 비평을 했다.

모두 당시에는 비주류 예술로 시작하였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그들의 위치는 점점 확고해졌다. 모네와 드뷔시는 인상주의라는 공통점과 함께 여러 예술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들의 예술세계가 우리에게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4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빛과 물

빛과 물은 생명탄생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끊임없는 생명력과 활동성의 상징인 빛과 물은 인상주의 탄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빛의 다양한 스팩트럼과 잔잔하지만 역동적인 물의 움직임은 모네와 드뷔시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드뷔시의 작품 중 유명한 <달빛(Claire de lune)>과 그의 대표작 교향시 <바다(La Mer)>를 포함해 피아노 독주곡 영상(Images) 중 <물의 반영(Reflets dans l'eau)>과 <금빛 물고기(Poissons d'or)>등은 빛과 물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외할머니 댁 바닷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물과 친근했던 드뷔시는, 성인이 된 후에도 늘 바다를 동경해왔다. 그는 태생이 뱃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잘못 길을 들어서서 작곡가가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햇빛과 부딪치는 물의 일렁임, 고요한 호수 위의 달빛은 드뷔시의 선율과 화성을 아름다운 수채화의 세계로 인도해주고 있다.

모네 역시 빛과 물은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노르망디해안의 르 아브르(Le Havre)에서 가족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모네는 바다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항구라는 뜻인 르 아브르의 ‘해돋이’를 비롯해 해안가도시들인 푸르빌(Pourville), 코끼리 절벽으로 유명한 에트르타(Etretat), 유년시절 숙모의 보살핌을 받았던 생타드레스(Sainte-Adresse), 아담한 항구이자 도시전체가 그림인 옹플뢰르(Honfleur), 벨일(Belle Ile)섬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에서 그는 다양한 빛의 반영에 빠져들었다.

그가 사랑한 지베르니에 정착한 후에도 빛과 물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었는데, 40년동안 그린 수련작품들은 그런 그의 탐구정신이 낳은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물에 반사된 빛의 반짝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영원한 순간을 포착하는 직관적이면서 감각적인 작업이다. 결국 관찰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작업은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과 사고를 통해 심리적 재현의 대상으로 재탄생됐다. 

◆ 감정의 탄생

사진술의 발명은 회화가 더 이상 역사적 기록이나 사실적 묘사의 역할로부터 해방되어짐을 의미하고 있다.

19세기후반 사진기술의 발달과 함께한 인상주의는 이성적으로 통제되었던 사고의 확장을 가져왔으며 그것은 구속 받지 않는 감정의 발산으로 이어졌다.

풍경화의 대가 영국의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로부터 영감을 받은 모네는 빛에 대한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며 대상을 근시안적 시선에서 원시안적 시선으로 옮겨놓고 있다.

그것은 마치 논리와 형식을 중요시하던 서양의 분석적 사고에서 부분보다는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동양의 종합적 사고로의 이동과도 비슷하다.

서양과 동양적 사고의 결합에는 자의식의 성장이 있었고 그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표현의 밑바탕이 되었다. 즉 감정의 탄생은 인상주의 탄생과 그 괘를 함께하며 현대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름답게 변화하는 수련과 생 라자르 기차역,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등 모네의 연작들은 빛에 반사된 대상의 모습을 눈에 담아 그것을 자신의 감정과 함께 캔버스에 옮겨놓았다.

그의 작품들은 전통적 원근법과 명암, 윤곽선을 탈피하며 다음세대 화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모네는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천성적으로 규율이 내 몸에 맞지 않았다. 어렸지만 나는 어떤 규율에도 굽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드뷔시 또한 독일 오스트리아의 전통적인 음악어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화성과 내면의 감성에 충실했다. 인상주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희미한 경계선, 복잡한 색감과 색조를 음악으로 좀더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음악은 바람, 하늘, 바다처럼 무한한 것들이 용솟음쳐 나오는 자유로운 예술이다. 그것을 학문적인 틀 속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면서 “예술작품은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 그 규칙들은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 리듬감과 생동감

모네는 순간을 리듬감 있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드로잉실력 뛰어난 그는 소년시절 케리커처를 잘 그렸는데, 캐리커처의 핵심은 인물의 형태를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 이상으로 특징을 순간적으로 잘 잡아내는 것에 있다.

찰나의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 바로 모네가 추구한 예술세계이며 이는 그의 작품 속 리듬감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모네 회화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은 연속적이며 끊어지지 않는 선의 흐름과 구성적으로 통일된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는데, 이는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면 뭉개져 있는 물감덩어리의 생동감 있는 붓 터치를 느낄 수 있고, 거리감을 두고 보면 그 물감덩어리들의 리듬감이 조화롭게 합쳐져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보라색을 표현하고 싶으면 파란색과 빨간색을 따로 분리시켜 그린 다음 보는 이의 눈에서 섞이는 효과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며 생동감을 자아냈다. 리듬과 생동감은 인상주의 회화뿐만 아니라 인상주의 음악에서도 특징적인 요소다.

드뷔시는 기존법칙을 뛰어넘는 화성과 불규칙한 리듬, 유동적인 템포를 사용해 음악에 색채감을 입혔다. 음악으로 회화보다 생생한 표현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드뷔시는 중세시대 교회선법과 동양의 5음계등 여러 화음을 쌓아서 신비로운 느낌을 만들었다.

그는 강약 반복의 규칙적이며 고전적 리듬에서 탈피해 모호하며 불규칙적인 박자와 당김음 등을 이용하였으며 마디의 속박에 벗어나 리듬에 자유를 주었다.

그의 작품이 색채와 빛뿐만 아니라 움직임까지 음악으로 그려내며 상상하게 만드는 이유는 화성으로 쌓아 올린 색채에 자유로운 리듬이라는 움직임을 접목했기 때문이다.

그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나 교향시 <바다>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다양하고 색채감 있는 소리와 리듬을 이용하여 음악의 회화적 느낌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 2017년 1일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드뷔시의 <The more than slow - the joyful Isle>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 2017년 1일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드뷔시의 <The more than slow - the joyful Isle>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위로

제1차세계대전은 두 예술가의 말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였다. 모네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두 번째 부인 알리스(Alice)와 아들 잔(Jean Monet)을 하늘로 떠나 보내야 했으며 눈은 이미 백내장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드뷔시 또한 이미 전쟁 중 건강이 악화돼서 요양 중이었으며 끝내 종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전쟁은 예술가의 마지막 혼을 불태우게 만들었다.

전쟁이 한참인 1915년 드뷔시는 이미 의사의 손에 맡겨진 몸이었지만, 전쟁의 만행과 아름다운 것들이 파괴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다소라도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며 그들에 대항하려 한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이후 그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백과 흑의 카프리스>, 12곡의 피아노를 위한 <에튜드>를 완성했고, 세상을 뜨기 1년전 필사의 힘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나타를 완성했다.

모네 또한 약하게 남은 오른쪽 시력만으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친구이자 당시 총리였던 클레망소(Georges Clemanceau)는 지베르니로 찾아가 우리모두에게 위안이 뒬 작품을 그려달라고 노화가에게 부탁한다.

자연채광의 전용관과 일반시민의 관람 등을 조건으로 모네는 감동적이고 거대한 수련연작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파리 오랑주리(Musee de l'Orangerie) 미술관에 전시된 수련연작에 관하여 모네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 전체를 감싸며 수평선도 해안도 없는 물, 그 무한한 총체의 환영을 만들어 낼 것, 멈춰있는 물의 편안한 모습을 통해 그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꽃이 핀 수족관 가운데 서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명상의 피난처를 느낄 것입니다”라고.

당시 프랑스는 1차세계대전으로 전체인구의 8분의 1이 숨졌다. 모네는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하여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드뷔시와 모네는 오늘날 현대예술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드뷔시의 출현이 없었다면 20세기의 현대음악은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고 그로부터 이어진 라벨, 스트라빈스키, 바르토크(Bela Bartok), 메시앙(Olivier Messiaen) 덕분에 오늘날의 현대음악은 보다 풍성한 내용을 가질 수 있었다.

모네 또한 모더니즘이라는 시작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후 후배 피카소와 마티스등에 영향을 미치며 현대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성적이기 보다 감각적인 그들의 예술세계가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작품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추천음반

교향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Prelude a l'apres-midi d'un faune)>과 <바다(La mer)>는 장 마르티농(Jean Martinon)과 프랑스 국립관현악단(Orchestre National De L’O.R.T.F)의 음반을 추천한다.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Cleveland Orchestra)의 음반 또한 명반이다. 아바도(Abbado)와 루체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의 <바다(La mer)> 역시 명연이다.

드뷔시의 피아노음반은 상송 프랑소와(Samson Francois)연주를 선호하고 유명한 베르가마스크(Suite Bergamasque)는 백건우 선생님 연주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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