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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큰 울림을 전해주는 두 거장의 정신적 가치

[클래식에 빠지다] 바흐와 렘브란트(Bach & Rembrandt)

2023.02.27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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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는 매너리즘이라는 새로운 도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90세를 넘게 산 미켈란젤로의 초기 걸작 바티칸의 피에타상은 조화와 균형, 비례의 아름다움이 극적으로 표현된 르네상스시대의 대표작이다. 

반면 그의 말년 미완성작인 론다니니의 피에타상은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친 듯 보이며 전작과 구도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바로 매너리즘이라는 과도기 시대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틴토레토(Tintoretto)와 엘 그레코(El Greco)등 매너리즘의 시대에도 걸출한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과도기는 다음시대로 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 일뿐 거대한 흐름 속에 곧 묻히기 마련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 그들은 이전의 모든 지식과 양식을 섭렵하며 결국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로 하나의 사조를 형성하였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는 여러 명이 있다. 바로크시대에 가장 명성을 날렸던 예술가를 들자면 헨델과 루벤스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시대의 정점에 선 예술가를 후세의 입장에서 보자면 바흐(J.S.Bach)와 렘브란트(Rembrandt)에 무게가 실린다. 

그들의 삶과 예술이 현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과 예술세계에는 어떤 공통점들이 있을까?   

◆ 빛의 예술가

빛은 단순히 우리가 사물을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모든 생물의 생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흐와 렘브란트의 작품은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을 넘어 음악과 회화 예술세계에 생명력의 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흔히 바흐의 음악을 두고 혹자들은 음악의 시작과 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가 음악사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며 이전의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확고한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세상의 음악이 다 없어졌을 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만 있으면 다시 음악을 복원할 수 있다고 한다.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는 평균율은 한 옥타브 안의 음을 12개로 정확하게 나누어 똑같은 비율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연주하면 조바꿈이 일어나도 불협화음 없이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 

바흐 이전에는 주로 순정률에 따라 연주했는데, 순정률은 음과 음 사이의 비가 유리수 비율을 갖는 음계로 몇몇 화성은 완벽하지만 예를 들어 C장조에서 D장조로 조를 바꿀 때는 필연적으로 불협화음을 동반하게 된다. 

우리가 음악을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것에는 이런 바흐의 오랜 노력을 통한 평균율의 발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음악 속 수학적 사고의 발견, 그를 음악의 피타고라스라고 불러도 무방할듯하다.

바흐의 작품 속 수많은 멜로디와 아이디어가 현대 재즈나 탱고 등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도 무수히 차용되고 있는 것은 그가 단순히 그 시대의 음악가가 아닌 음악의 생장과 함께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에 세워진 바흐 기념비.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독일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에 세워진 바흐 기념비.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음악의 빛 그 자체였던 바흐와 함께 빛을 이용하여 자신을 성장시키고 우리를 작품의 세계로 끌어들인 이는 렘브란트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미술 사학자 곰브리치는 렘브란트를 미술사 통틀어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글을 통해 여러 군상들의 심리적 묘사에 대가였다면, 렘브란트는 빛을 통한 인물의 심리적 재현에 대가였다. 그가 수많은 작품을 그리며 가장 추구했던 것은 ‘빛’이라 할 수 있다. 

일명 렘브란트 조명(Rembrandt Lighting)이라 불리는 그의 빛은 대상의 인물 뒤쪽 옆 45도에 광원을 두어 얼굴에 음영을 주는 기법으로 인물의 왼쪽 뺨에 역삼각형 모양의 빛이 생기는 특징이 있으며 현대의 인물사진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르네상스의 천재화가 카라바지오(Caravaggio)와 스승 라스트만(Pieter Lastman)으로부터 빛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이어받은 렘브란트는 빛을 단순히 어둠을 밝히고 주제를 명확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빛을 통해 각인되어있는 우리 뇌 속 잔상의 느낌을 살려 인물의 심리까지 묘사하는 경지로 발전시켰으며, 회화의 위치를 명확하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세계에서 심리적이고 사색적이며 극적인 세계로 옮겨 놓았다. 

그의 수많은 자화상과 작품 <명상하는 철학자>, <벨사살 왕의 연희> 등 여러 작품들은 그가 왜 빛의 화가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 Insight : 모사와 습득

아인슈타인은 직관은 ‘신성한 선물’이라고 하고 이성은 ‘충실한 하인’이라고 말했다. 어떠한 것에 대한 내적 통찰은 직관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경험과 관찰, 유추, 감정의 이입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흐와 렘브란트는 수많은 모사와 습득을 통해 독창적이며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비범한 통찰력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바흐음악의 전문가인 존 엘리엇 가디너경(Sir John Eliot Gardiner)은 자신의 저서 <바흐: 천상의 음악>에서 “바흐는 자신의 솜씨와 창의적인 재능, 인간적인 공감대가 완벽한 균형을 이룰 때까지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였다”고 하였다.

선배 작곡가인 비발디와 알비노니, 코렐리, 토렐리, 텔레만등 당대 대가들의 수많은 작품을 필사하고 모사하면서 바흐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끝없이 확장해 나아갔다. 

그의 작품은 선배 작곡가들의 단순한 모사를 통한 기법의 완성도와 독창적 음악어법에 그치지 않는다. 바흐음악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과 신에 대한 깊은 내적 통찰에서 오는 깊이에 있다. 

베토벤은 바흐의 음악을 바다에 비유할 정도로 그의 음악적 방대함과 깊이를 칭송하였는데, 특히 마테수난곡, 요한수난곡을 비롯한 종교음악과 오르간 작품은 그런 그의 음악적 깊이와 방대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렘브란트 역시 타고난 예술적인 감각과 천재성을 갖고 있었지만 상당한 노력파 였음을 그가 남긴 스케치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풍경화와 정물화도 그렸지만 당대 역사화가로 명성을 쌓았다. 

초상화로도 인기가 있었지만 뛰어난 역사화가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의 스케치 속에 담긴 다양한 표정들과 제스처들은 역사 속 인물을 더욱더 잘 그리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 중 하나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렘브란트의 명작 <야경'(The Night Watch)> 앞에 그림 분석 장비가 설치돼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렘브란트의 명작 <야경'(The Night Watch)> 앞에 그림 분석 장비가 설치돼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여담으로 그는 제자들을 성경 속 인물로 변장시키고 그리는 연습도 자주하였으며, 그의 초상화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의뢰인이 있으면 성화로 둔갑시켜서 팔기도 하였다. 

인물의 표정과 제스처에 대한 연구 그리고 빛에 대한 탐구는 그에게 인간의 다양하고 미묘한 심리를 표현할 수 있는 통찰력을 주었다. 

그를 몰락의 길로 내몰았지만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야경>의 경우 시대의 관행을 뛰어넘는 개성이 발휘되었으며, 인물화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진실함과 깊이 있는 삶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살던 곳을 벗어나 다른 국가로 가본적이 없는 바흐와 렘브란트, 두 예술가가 시대를 선도하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수많은 모사와 습득을 통한 내적인 통찰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Signature : B.A.C.H와 자화상

퍼스트 네임 즉 자신의 성(姓)으로 불린 사람은 흔치 않다. 요한, 바오로, 베네딕토등 교황이 자신이 성(姓)으로 불리고, 라파엘로와 모차르트, 나폴레옹 등 몇몇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인들이 그렇게 불린다. 

바흐와 렘브란트도 성을 이름처럼 사용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문을 대표한다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세상에 자신을 브랜드화 한다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특징을 나타내는 시그니처가 있다. 바흐는 자신 성 철자를 계이름으로 바꾸어 작품에 시그니처로 활용하였고, ‘하멜스 존 판 레인’이라는 이름 대신 성(姓)을 싸인으로 활용한 렘브란트에게는 자화상이 시그니처일 것이다.

바흐는 자신의 이름(성)철자 B-A-C-H를 독일어 계이름 ‘시b-라-도-시’로 치환하여 작품에 차용하였다. 

그의 시그니처가 활용된 작품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2번을 포함하여 작품번호 898번의 푸가(Fugue), 영국 모음곡6번의 지그(Gigue), 무반주 바이올린 샤콘느(Chaconne)등 수많은 작품이 있다. 

그를 존경한 후배 음악가인 슈만, 아이브스(Charles Ives), 베베른(Anton Webern)은 자신의 작품에 바흐의 모티브를 사용하였고, 쇼스타코비치(D.Shostakovich)나 쉰베르크(Arnold Schonberg), 바르톡(Bela Bartok)은 자신의 이름 철자로 된 시그니처 사운드를 작품에 아이디어로 활용하였다.

시그니처를 서명의 의미 이외에 그 사람의 특징과 성격을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자화상은 렘브란트를 특징지어주는 시그니처라 할 수 있다. 

100여점 이상의 유화와 20여점의 에칭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는 그 시대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렘브란트 하면 바로 자화상이 떠오르는데, 많은 글을 남기지 않았던 렘브란트에게 자화상은 그의 일대기를 표현해주는 지표와도 같다. 

20대 초반의 자화상은 빛에 대한 실험이면서 추상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20대 후반부터는 활력 있고 강한 자신감이 엿보이며, 3,40대 중년에는 사회적 위치와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자긍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50대이후 사랑하는 아들과 부인을 잃고 파산하여 작품과 재산마저 몰수 당하던 시절의 그는 해탈한듯한 모습과 고독,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의 자화상은 엄격한 자기 성찰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 예술사적으로도 위대하다 할 수 있다.  

◆ Coda

바흐가 서거한 1750년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있다. 시대의 정점에 서있는 인물과 한 시대가 같이 저문 것이다. 

바흐와 렘브란트는 당대 스타였던 헨델과 루벤스를 동경하였으나 당시엔 그들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후세는 그들의 명성을 뛰어넘어 지금도 예술사 전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확신과 압도적 긍정의 힘으로 가득 찬 바흐의 음악과 심오함과 사색으로 가득한 렘브란트의 그림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을까?  

지금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또한 진실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들은 작품을 통해 물어보고 있는 듯 하다. 그건 마치 우리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와 사리지는 시대정신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과 같다. 

링컨은 “보고 만지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승리이며 축복이다”라고 말하였다. 결국 물리적 세계는 비물리적 세계의 발현일 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가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헨리 소로우의 <월든>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삶이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당당히 받아들여 살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회피하거나 욕하지 마라. 그런 삶도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두 거장이 말하는 정신적 가치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 추천음반

바흐의 수난곡을 포함한 오라토리오, 미사, 칸타타 등은 존 엘리엇 가디너 경의 연주를 추천한다. 잉글리시 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트레버 피노크(Trevor David Pinnock)의 연주도 좋다. 

합시코드 연주자이기도 한 피노크의 훌륭한 평균율 연주 역시 추천한다. 오르간 작품은 사이몬 프레스톤(Simon Preston)의 음반을, 클라비어 음반은 머레이 페라이아(Murray Perahia)와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바이올린 무반주 소나타는 나탄 밀슈타인(Nathan Milstein)과 현대 연주자로는 율리아 피셔(Julia Fischer)와 테츨라프(C.Tetzlaff)의 첫 번째 음반을 추천하고, 첼로 무반주 모음곡은 요요마와 피터 비스펠베이(Pieter Wispelwey) 앨범을 권하겠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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