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의 젖줄 블타바 강은 프라하 시가지를 관통하면서 유유히 독일로 흘러간다. 블타바 강과 프라하의 유서 깊은 유대인 지역 사이에는 르네상스 복고풍 양식의 육중한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다름 아닌 체코 최고의 예술의 전당인 루돌피눔(Rudolfinum)이다.
그 앞 광장에는 체코를 대표하는 순수한 체코 음악가인 드보르작을 기념하여 2000년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루돌피눔’은 ‘루돌프의 전당’이란 뜻이다. 체코 역사에서 ‘루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가장 중요한 인물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루돌프 2세(1552–1612)이다.
그는 궁정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아예 프라하로 옮기고 이곳을 문화의 도시로 만들었다. 또 이 전당이 세워질 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권좌를 이어 받을 황태자의 이름도 루돌프였다. ‘루돌피눔’은 공식적으로 바로 이 황태자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루돌피눔의 건립은 체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18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라하 시는 블타바 강변의 버려진 땅에 예술의 전당을 세우기로 계획했고 8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885년에 이를 완공했다.
이때 옥상 난간에는 바흐, 헨델, 하이든, 글룩, 모차르트,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등 유명한 음악가들의 석상이 세워졌는데 석상들은 하나 같이 모두 독일어권 음악가들이고 체코 음악가는 한 명도 없어서 당시 민족주의에 불타오르던 체코사람들은 이에 대해 큰 불만을 품었다. 그런데 석상에는 이름이 붙어있지 않은데다가 길에서 보면 너무 멀어서 당시나 지금이나 그냥 봐서는 누가 누구인지 알기 힘들다.
현재 루돌피눔에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데 이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이곳 무대에 오른 것은 1896년 1월 4일이었고 지휘자는 드보르작(1841-1904)이었다. 그가 연주했던 홀은 지금 ‘드보르작 홀’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고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합쳐져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가 탄생하자 루돌피눔은 용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즉 신생국 체코슬로바키아가 당장 국회의사당이 필요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루돌피눔 내부를 개조했던 것이다.
이때 드보르작 홀의 무대부분은 국회의장석으로 바뀌었고 파이프 오르간은 떼어다가 다른 곳에 보관했다.
그러다가 루돌피눔이 다시 원래의 기능을 되찾은 것은 역설적으로 1939년 3월 체코가 나치 독일의 보호령이 되고나서부터였다. 보호령 총독으로 부임해 온 30대의 젊은 하이드리히(1904-1942)는 음악을 사랑하던 인물로 그에게 루돌피눔은 위대한 독일예술의 전당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독일 오케스트라가 이곳에 상주했으며 드보르작 홀에서는 히틀러 생일이나 영웅의 날 같은 나치 독일의 다양한 공식 행사도 자주 개최되었다. 한편 하이드리히는 헨델이 태어난 할레 출신으로 부모는 음악가였다. 음악적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났으며 유명한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나치 정권 하에서 악마로 변신하여 게슈타포와 친위대 대장을 역임하고는 히틀러의 신임을 받고 체코 보호령의 총독으로 프라하에 부임했던 것이다. 그는 ‘프라하의 도살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통치하다가 1942년 6월 4일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 요원에 의해 피격당한 후 일주일 후에 사망했다.
나치 점령하에서 루돌피눔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독일어권 음악가들의 석상을 올려다보면 웃지 못 할 이야기가 하나 떠오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예술의 성전을 더럽힌 유대인 작곡가 멘델스존 석상을 철거하라는 총독 하이드리히의 명령 떨어지자 한 나치 독일군 장교의 감독 하에 두 명의 체코인 작업부가 멘델스존의 석상을 철거하기 위해 루돌피눔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석상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어느 것이 멘델스존의 석상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 일을 감독한 독일군 장교조차도 몰랐다.
고민하던 독일군 장교는 한 때 인종과학에 대해 연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 즉 유대인은 코가 유별나게 크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작업부들에게 코가 가장 큰 인물의 석상을 철거하라고 명했다. 작업부들은 코가 유별나게 큰 남자의 석상을 쉽게 찾아내고는 그의 목에 밧줄을 감아 올렸다. 독일군 장교는 멘델스존이 아니라 독일의 광적인 반유대주의적 영웅인 바그너의 석상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 멘델스존과 히틀러가 칭송하던 바그너의 모습을 구분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인데 체코 작가이자 언론인인 이르지 바일(1900-1959)이 쓴 단편소설 <멘델스존은 지붕 위에> 중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소설의 내용과는 달리 당시 루돌피눔 지붕에 멘델스존 석상은 있었지만 바그너 석상은 세워져 있지 않았다.
어쨌든 이 코미디 같은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끔찍한 비극의 시대, 즉 나치 독일 점령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당시 나치 독일은 프라하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수많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반 나치 성향의 체코인들도 죽음의 수용소로 몰아넣었다.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