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는 영화의 역사 속에 수많은 영화 음악 거장들이 존재하지만 버나드 허만의 등장은 특히 중요했다. 그의 출현 이래 영화 음악의 구조가 급변했고 이후에는 대체로 그가 설립한 구조를 그대로 따랐다.
버나드 허만은 뮤지컬의 영향 아래 있던 초기 영화 음악을 단호히 부정하면서 새로운 문법을 썼고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구조가 이 방식으로 재편됐다.
이후 영화 음악은 단순히 화면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나 감정, 분위기의 흐름 정도를 따라가는 역할이 아닌, 입체적인 효과를 통해 스토리를 보다 돋보이게끔 유도해내는 작용을 했다.
영화 음악은 영화의 내용을 확실히 내포하고 있어야 했고 사운드는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에 있는 과정이며, 악보는 시나리오보다 구체적이라는 원칙이 세워졌다.
1911년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로 뉴욕에서 태어난 버나드 허만은 독일계 작곡가들이 지배하던 할리우드에 미국 고유의 음악 표현을 가지고 왔다.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줄리어드 음악원 졸업 이후에는 지휘자로서 다수의 칸타타와 오페라 및 교향곡을 녹음, 제작했다.
찰스 아이브스와 윌리엄 월튼 등 20세기 음악들에 경도되어 있던 그는 1934년 CBS 방송국에 입사하면서 CBS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및 편곡자가 됐다.
방송 현장에서 오손 웰스를 알게 되면서 주로 그의 연출 및 출연 작을 담당해왔다.
특히 이들이 함께했던 라디오 쇼 <우주 전쟁>은 그 리얼리티 때문에 라디오 청취자들이 정말로 우주인이 습격했다고 오해하게끔 만들면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후 오손 웰스가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되고 버나드 허만 또한 CBS를 나와 영화 음악을 시작한다.
이 두 사람 모두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시민 케인>으로 영화 데뷔를 완수했는데, <시민 케인>의 사운드트랙 또한 영화 음악의 역사 속에서도 <시민 케인>의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버나드 허만은 <악마와 다니엘 웹스터>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곡상을 수상한다.
오손 웰스와는 이후에도 <위대한 앰버슨가> 같은 작품들에서 함께 했고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SF 영화 <지구 최후의 날>에서는 ‘테레민*’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팝 뮤지션들이 이 기묘한 음색의 매력을 알아차리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Theremin: 접촉없이 손짓으로 전파를 움직여 작동하는 전자 악기)
오손 웰스는 물론 알프레드 히치콕의 대표작들 또한 버나드 허만의 커리어에 있어 중요하다.
<현기증>의 놀라운 분위기와 초조함, 무엇보다 <싸이코>의 샤워실 장면에 삽입된 신경을 찌르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의 스코어는 지금 시대에도 여기저기서 확인 가능할 정도다.
심지어 히치콕은 이 장면에 음악을 넣으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 버나드 허만의 음악으로 인해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이 됐다.
버나드 허만은 히치콕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직접 지휘자로 출연하기도 하며 <새>에서는 ‘음향 컨설턴트’로 크레딧을 올렸는데 전자음을 활용하여 불길한 사운드를 훌륭하게 주조해냈다.
이런 작업은 작곡과 음향 효과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였고 이후 세대 영화 음악 작업에도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히치콕의 <찢어진 커튼> 작업 도중 서로 크게 대립하게 되고 결국 히치콕이 영화에 그의 음악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둘은 더이상 함께 작업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종결됐지만 그럼에도 세간에서는 버나드 허만과 히치콕의 작업이 영화음악이 진정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치에 가장 가깝다 평가하곤 했다.
히치콕과의 결별 이후 버나드 허만은 런던으로 이주하고 지휘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는 와중 작업한 영화 음악들 모두 결국은 대체로 히치콕과 관련이 있었다.
히치콕과의 대담으로 유명한 히치콕 추종자 프랑소와 트뤼포의 <화씨 451>, 그리고 히치콕의 서자(庶子)라는 별칭으로까지 불리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자매들>과 <강박관념>의 음악들을 담당했다.
이후 작업한 마틴 스콜세지의 걸작 <택시 드라이버>의 경우 재즈의 요소를 도입한 스코어가 극찬을 받았는데, 알려진 대로 버나드 허만은 <택시 드라이버>의 마지막 녹음이 끝나고 12시간 후 호텔에서 숨졌다.
심지어는 녹음 직후 다음 작품을 위해 래리 코헨 감독과 저녁식사를 마친 직후 숨을 거뒀는데, 창작에 대한 그의 열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동안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버나드 허만은 30년 만에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강박관념> 두 편 모두를 작곡상 후보에 올리지만 결국 수상은 <오멘>의 제리 골드스미스에게로 돌아갔다.
버나드 허만이 후대에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다. 1998년 리메이크 판 <싸이코>에서는 버나드 허만을 가장 존경한다던 영화 음악가 대니 엘프만이 원작의 스코어를 거의 편곡하지 않은 채 재구성하기도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 Vol. 1>에서는 엘 드라이버가 병원에서 부는 휘파람 곡으로 버나드 허만의 <Twisted Nerve> 테마를 재사용하기도 하는데, 이후 이 휘파람 곡은 다양하게 활용됐다.
영화 음악가로 크게 성공했지만 스스로의 개인 작업 또한 멈추지 않았는데, 심지어는 자신에게 있어 영화 음악이란 상업적인 작업일 뿐이라 말하기도 했다.
버나드 허만은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춤곡을 작곡한 것처럼 자신은 영화 음악을 작곡한다고도 덧붙였다.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또한 자신이 담당했던 영화 음악들로 인해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을 벌 수 있었다 말하기도 했다.
버나드 허만은 음악을 이용해 영화 속에 내재하는 극적 구조나 심층 심리를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관객에게 전달했다.
연출이나 촬영의 요소와 같은 수준에서 음악이 영화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버나드 허만 때문이었다.
영화에 숨어있는 공기감을 세분화해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부여했고, 이러한 방식은 이후 세대 영화 음악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됐다.
단순히 미학적으로 기능하는 영화 음악의 테두리를 확장한 버나드 허만은 20세기 미국 영화 산업은 물론 클래식 계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일종의 문화적 지표라 말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 추천 음반
◆ Bernard Herrmann: The Film Scores - Esa-Pekka Solonen & the Los Angeles Philharmonic (1996 / Sony Classical)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한 핀란드 출신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이 로스 앤젤레스 필하모닉과 함께 버나드 허만의 곡들을 녹음했다.
음악적 가치가 뛰어난 버나드 허만의 대표 곡들을 탁월한 해석으로 풀어냈고 곡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냈다. 히치콕의 대표작들을 비롯 <화씨 451>, 그리고 <택시 드라이버>까지 76분에 걸쳐 빼곡히 담겨있다.
◆ Cape Fear (1991 / MCA)
<택시 드라이버>에서 함께 했던 마틴 스콜세지가 리메이크한 <케이프 피어>의 1962년도 원작의 음악 또한 버나드 허만이었다.
마틴 스콜세지는 원작의 음악은 물론 히치콕이 거절하여 폐기됐던 <찢어진 커튼>의 음악까지 부활시켜 새롭게 영화에 삽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버나드 허만이 사망한 이후 진행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편곡과 지휘는 엘머 번스타인이 담당했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