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노래 제목처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던 예술가이자 행동주의자 ‘시네이드 오코너’는 팝스타, 그리고 투쟁가 사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했다.
남성들이 스튜디오 작업을 독점하던 시기 주류 팝 씬에서는 드물게 직접 프로듀스 혹은 공동 프로듀스를 해낸 그녀는 언제나 한발자국씩 앞서 나갔다.
씬에 처음 등장했을 무렵 그녀는 80년대 MTV 시대의 팝에 아일랜드 특유의 분노와 우울함을 채워 넣었다.
유년시절 모친으로부터 학대 받았던 시네이드 오코너의 분노는 개인적인 관점에 국한되지 않았고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박해, 종교집단의 병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지배 및 착취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그녀는 소용돌이치는 이 격렬한 상황 속에 온몸을 맞긴 채 섬세하게 울부짖는 음악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 했다.
시네이드 오코너는 자신이 체험한 종교적 억압을 배경으로 현대 페미니즘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또한 노래해 나갔다.
당시 시네이드 오코너는 팝스타로써는 드물게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식의 태도를 강조했다.
무엇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시저, 올리비아 로드리고 같은 미래 세대의 어두운 팝 스타들을 위한 공간을 여는 데에 어떤 시발점과도 같은 역할을 하면서 주류 팝 씬에서 선구자가 됐다.
여성의 트라우마를 음악으로 다뤄냈다는 점에 있어서는 피오나 애플이 직접 시네이드 오코너의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다.
시네이드 오코너의 급진성은 과거 존 바에즈나 오데타, 그리고 밥 말리 보다는 훨씬 공격적인 형태를 지녔다. 삭발한 헤어 스타일 또한 목소리 만큼이나 그녀의 정체성의 일부였다.
유년 시절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막달레나 수녀원의 개혁 학교를 다닌 시네이드 오코너는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일찌감치 길거리에 나앉았고 정신적으로 연약했으며 또한 위태로웠다. 그리고 음악이 그녀를 구했다. 클럽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그녀에게 있어 음악은 일종의 치료목적의 행위였다.
같은 아일랜드 출신의 U2가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80년대 후반 서정적인 성숙함, 그리고 강렬한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등장했다.
데뷔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에서 많은 이들이 다음 시대의 스타로 그녀를 점쳤는데, 이듬해 그래미 시장식장에서 삭발한 채 ‘Mandinka’를 공연하던 모습에서 남성들로 채워진 로큰롤 히스토리 틈바구니에서 이 강렬한 여성이 기어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내려 한다는 인식을 세상에 심어줬다.
시네이드 오코너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앨범인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에서는 프린스의 곡을 커버한 ‘Nothing Compares 2 U’가 전세계적 히트를 거뒀다.
원곡의 화려함을 제거하면서 어떤 성스러운 분위기를 획득하게 됐고, 특히 얼굴이 클로즈업 된 비디오에서 울면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90년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결정적 장면이 됐다.
앨범에서는 ‘The Emperor’s New Clothes’ 같은 트랙들 또한 크게 성공했고 비로소 그녀는 정상의 팝스타로서 우뚝 선다.
하지만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바로 그 시기 시네이드 오코너는 오히려 모든 것을 거부하려 했다. 거짓되고 파괴적인 물질적 가치에 항의하면서 그래미 시상식을 보이콧했고, 공연 직전 미국 국가가 연주됐다는 이유로 뉴 저지에서의 공연을 거부했다.
무엇보다 1992년 SNL에 출연해 충격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그녀는 밥 말리의 ‘War’를 무반주로 부른 직후 집에서 가져온 교황의 사진을 카메라에 들이밀고는 손으로 찢으며 “진정한 적과 싸우라”는 말을 남겼다.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이 행동 이후 시네이드 오코너는 살해 위협은 물론 각종 매체에서 보이콧 당했다. 2주 후 그녀가 참여한 밥 딜런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는 야유로 인해 결국 무대를 마치지도 못한 채 퇴장했다.
이 무렵 본질적으로 시네이드 오코너의 주류 음악 경력은 끝났다 말할 수 있었다.
시네이드 오코너의 이런 행동은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제들의 아동 성 학대 은폐에 대한 반발이었고, 이는 실제로 그녀가 다녔던 막달레나 수녀원에서도 자행됐던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 사태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유명인이었고 대중들은 아직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의 음악적 재능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녀의 말을 듣는 대신 비난하려 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십 수년이 지난 2008년, 교황청에서 아동 성학대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으며, 시간이 더 흘러서는 전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퍼져 나갔다.
누군가는 시네이드 오코너에 대해 그녀가 이 모든 것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간접적으로는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직접 전성기를 끝내 버렸고 이는 어찌 보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커리어를 희생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녀가 처했던 상황과는 별개로 음악 활동 또한 꾸준히 이어 나갔다. 90년대 중반 발표했던 <Universal Mother>와 <Gospel Oak> 같은 앨범들은 인권 투쟁과 도덕에 관해 다뤘고 이는 자기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기도 했다.
알려진 대로 흑인 인권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히트 곡 ‘Mandinka’ 같은 곡의 경우 아프리카 부족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시네이드 오코너는 음악적으로도 대담한 행보를 보였다. 그녀는 커리어 전반에 걸쳐 컨트리와 펑크, R&B와 힙합 등을 구분없이 다뤘다.
<Sean-Nos Nua>에서는 자신의 뿌리인 아일랜드 민속음악을, 그리고 <Throw Down Your Arms> 같은 경우에는 자메이카의 전설 적인 스튜디오 터프 공에 직접 체류하며 완성한 레게 앨범이기도 했다.
자유롭게 다양한 스타일을 횡단함에도 들으면 즉각 그녀를 떠올리게끔 하는 목소리가 음악의 중심에 있었다.
평생을 투쟁하며 살아온 시네이드 오코너는 끝까지 안정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젊은 날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카톨릭의 이단종파로 들어갔다가 후에는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2022년, 자신의 아들 중 하나가 자살했고, 이로 인해 종종 삶에 미련이 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결국 2023년 7월 26일 시네이드 오코너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사망 원인은 명시되지 않았고 장례식에는 아일랜드 대통령 마이클 D. 히긴스가 참석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갑고 잔인한 무관심을 택할 때 시네이드 오코너는 인종차별과 아동학대, 조직화된 종교, 가부장제, 여성혐오, 전쟁, 파시즘, 마가렛 대처의 보수주의, 그리고 모든 종류의 계급주의와 맞서 싸웠다.
주요 LGBT 프라이드 행사에서 공연했으며, HIV 연구 및 에이즈 퇴치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트랜스젠더 권리를 지지했다.
그녀가 팝스타로써의 현상유지라는 쉽고 편한 길을 단호히 거부한 덕분에 상처받고 버림받은 다양한 세대의 소외된 이들이 스스로의 길을 추구해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수많은 이들을 위해 살신성인해온 시네이드 오코너가 지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과연 누가 그녀를 위해 노래 불러줄까.
“사람들은 나를 묻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씨앗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추천 음반
◆ Gospel Oak(1997 / Chrysalis)
제목처럼 가스펠을 전면에 다룬 앨범은 아니고 당시 그녀가 거주했던 런던의 동네 이름을 따서 지은 제목의 EP이다.
‘This is a Rebel Song’ 같은 트랙 제목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차분한 곡들을 다뤄내고 있으며 부드럽고 경건한 분위기가 내내 이어진다.
이스라엘과 북아일랜드, 그리고 당시 내전으로 수많은 이들이 학살된 르완다 사람들에게 이 앨범을 바친다 언급하고 있다.
◆ Sean-Nos Nua(2002 / Vanguard)
아일랜드 민요를 뜻하는 ‘션 노스(Sean-Nos)’를 아예 제목에 내걸고 있는 앨범으로 시네이드 오코너 자신의 뿌리에 집중하는 작품이 됐다.
정갈하고 목가적인 아일랜드 전통 음악 자체만으로도 청명한 기운을 선사하는데 거기에 시네이드 오코너 특유의 서정적인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