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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다트머스 대학교 학제 간 참여 연구소에서 과학자와 인문학자들이 의식, 실재, 지능, 영성, 시간, 환경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토의의 내용도 훌륭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계적인 인문학자들이 현대 과학과 기술 수준에 대해 매우 상세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AI 시대가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올수록 인문학의 위기나 소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인류는 새로운 과학과 기술 발전으로 큰 변혁을 이룰 때마다 인문학을 발전시켜 왔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을 거친 과학 혁명,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양자 역학은 우리 인류에게 세계와 실재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주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이 갖는 존재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AI 관련 강연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기술 발전의 내용에 대한 질문보다 그럼 이제 인간이란 무엇이고 우리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 그리고 미래 사회에 대한 걱정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질문에는 나 같은 공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들이 답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지능을 가진 자율적 존재의 등장을 예견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은 이제 도구가 아닌 우리의 동반자가 되리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존재의 등장이 5년 안에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하며, 최근에 등장한 '오픈클로'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몰트북'에서 보여준 AI 에이전트의 대화 수준은 이들이 자체적인 사회를 갖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물론 과장된 면이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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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기본적으로 언어, 문학, 철학, 역사 등 인간의 문화적, 정신적 유산을 탐구해 인간 자체와 그 가치를 본질적으로 성찰하는 학문이다. 그 기저에는 이 세상에 이런 지적 수준을 갖는 생명은 우리밖에 없고 그에 따라 인간다움의 가치를 논하고 자기 성찰과 삶의 방식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 우리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자체적으로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구성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긴다면 인문학 연구 주제 대상을 인간에 국한하는 것이 맞을까?
2019년 세계적 규모의 사모펀드 회사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만 회장은 옥스퍼드 대학에 1억 5000만 파운드를 기부해 슈워츠만 인문학 센터를 설립하도록 했다. 그가 옥스포드에 요청한 것은 기존의 인문학을 넘어서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문학의 지평을 열라는 것이고 옥스퍼드가 인문학과 철학 분야에서 쌓아온 연구를 통해 전 세계 자연과학 연구자들이 하는 일을 보완하라는 것이었다.
옥스퍼드 대학은 이 기부를 르네상스 이후 가장 규모가 큰 기부라고 반겼다. 그런데 바로 르네상스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을 벗어나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와 개인을 발견한 초기 근대 문화의 성립이라고 볼 수 있다(르네상스에 대한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어쩌면 지금 21세기에는 또 다른 르네상스적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인문학은 다시 한번 변신과 도약을 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20세기까지 인간만이 독창성, 창의력, 뛰어난 사고와 우주에서의 유일한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유전학과 생물 화학의 발전, 천문학과 물리학의 새로운 발견, 컴퓨터 문명의 등장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우리가 갖는 가치를 다시 살펴보게 만들고 있다. 또한 다른 생명과의 공존, 인간 자체가 여러 생명체로 구성된 복합적인 세계라는 것, 뇌과학의 발전과 양자 역학적 해석에 의한 의식 탐구 등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지적 존재의 등장은 우리에게 문명사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제 지능 수준에서 우리를 넘어설 수 있는 디지털 존재와 공존, 협력, 공동 연구, 의사소통과 새로운 사회 구조, 예술 창조 등은 인류 문명이 또 다른 단계로 넘어서는 순간에 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지능에 따른 후(後) 인본주의 또는 인지적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비인간과 공존하는 인간의 조건을 탐구해야 하는 새로운 인문학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AI 시대의 인문학은 인간을 연구 대상에서 배제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유일한 지능 주체가 아닌 세계에서 의미와 규범이 어떻게 생성·유지·충돌하는 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지금 AI 관련해 많은 국가 과제가 기술 혁신과 국가 경쟁력, 산업 고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개인은 AI 사회에서 내 삶의 의미, 존재의 가치, 새로운 윤리와 같은 인문학적인 질문과 대답에 목말라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대부분은 고전적이거나 20세기 수준의 인문학이었다. 이제는 21세기 AI 시대에 맞는 인문학 연구가 필요한 것이고 새로운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
우리가 AI 시대의 새로운 인문학 연구 방식을 수립하면 전 세계 인문학 연구를 이끌 기회를 가질 수 있다. AI에서 세계 1위 국가 달성은 어렵더라도 AI 시대 인문학은 한반도에서 얼마든지 이끌어 갈 수 있다. 정부는 이 부분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하며, 이제 공학자와 자연과학자 그리고 인문학자가 협동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의미 있게 봐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인류 문명에 공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야이며, 이는 우리 젊은 인문학자들이 과학과 기술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출 때 가능할 것이다. 인문학자와 공학자, 과학자들이 같이 연구하는 새로운 융합 연구에 대해 정부 지원이 더 크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벤처포트 설립, 2003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전략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터 경제 포럼 의원, AI챌린지 기획, AI데이터 세트 구축 총괄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 <AGI의 시대>, <AI 전쟁 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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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삭제 <2011. 6. 30.>
6. 삭제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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