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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추경은 규모도 중요하지만 속도가 더 중요하다. 중동전쟁의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국내 경제에 충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미 분명하다. 국제 유가가 빠르게 뛰고 있고, 국내 유가는 독과점 상황과 맞물려 더 빠르게 뛰었다. 물류비 부담이 커지고, 취약계층의 생계비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생산 비용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서 동시에 생산은 줄어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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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응을 미루면 충격은 시장에서 끝나지 않고 민생과 고용, 산업 전반으로 번진다. 충격이 확인됐을 때 피해가 확대되기 전에 먼저 작동해야 의미가 있다. 이번 26.2조 원 추경은 바로 그런 성격의 예산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추경안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고유가 부담 완화에 10.1조 원, 민생 안정에 약 2.8조 원,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에 2.6조 원, 지방재정 보강에 9.7조 원이 배정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경기 전반을 강하게 부양하기 위한 확장재정이라기보다, 전쟁으로 인한 비용 충격을 흡수하고 취약한 고리를 먼저 방어하기 위한 대응 예산에 가깝다. 고유가 대응과 민생 안정에 예산이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 추경의 목적은 분명하다. 성장률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충격이 민생을 무너뜨리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시급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두바이유 가격은 2월 26일 배럴당 68달러에서 3월 19일 138달러까지 급등했다. 소상공인 체감경기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청년고용률도 전년동기비 기준으로 22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해운·물류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OECD의 세계 성장률 전망치에 따르면, 한국은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21%에서 1.7%로 0.4%p 하향 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지켜보자"는 접근은 신중한 것이 아니라 늦는 것이다.
유가 충격은 교통비와 난방비를 올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식료품 가격, 운송비, 원자재 비용, 영세 자영업자의 운영비, 수출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일단 충격이 산업과 소비심리 전반으로 번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더 큰 재정을 투입해도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이번 추경의 의미는 바로 이 선제성에 있다.

이번 추경이 상대적으로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지원 방식에도 있다. 가장 주목되는 항목은 4.8조 원 규모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 이하 국민에게 1인당 10만~60만 원을 지급하되, 지역과 계층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 비수도권보다 인구감소지역에 더 두텁게 지급하고, 일반 저소득층보다 차상위·한부모·기초수급자에게 더 많은 금액이 가도록 설계했다. 기초·차상위 가구는 먼저 지급하고, 이후 건강보험료 등을 활용해 소득 하위 70%에 2차 지급하는 구조도 포함됐다. 이번 추경은 보편지원과 선별지원 중 하나만 택한 것이 아니라, 선별과 차등을 결합해 실제 부담이 큰 곳에 재정을 더 집중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점은 물가 우려를 평가할 때도 중요하다. 모든 추경이 같은 방식으로 물가를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고소득층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현금 살포는 총수요를 크게 밀어 올릴 수 있지만, 이번처럼 소득 하위층의 에너지비와 생계비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은 물가 파급이 상대적으로 작다. 한국은행도 최근 물가가 대체로 목표 수준 근처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고, 국제유가와 환율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추경의 물가 영향은 사용처에 따라 달라진다는 취지로 설명해 왔다. 즉, 이번 추경처럼 비용 상승 충격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의 실질 구매력을 방어하는 구조라면 물가를 크게 자극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예산 항목을 봐도 이번 추경은 소비를 전면적으로 밀어 올리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와 대중교통 환급 확대에 5.1조 원이 들어가고, 에너지바우처와 면세유·선박용 경유·비료·사료 지원도 포함돼 있다. 이런 지출은 소비 확대를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올라버린 비용을 완충해 생활비와 생산비 부담을 덜어주는 데 가깝다. 다시 말해 물가를 새로 자극하는 예산이라기보다, 전쟁으로 생긴 물가 충격을 흡수하는 예산이다. 이번 추경을 두고 물가 우려만 과도하게 부각하는 것은 예산의 성격을 충분히 보지 않은 평가일 수 있다.
재원 조달 방식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 재원을 적자국채 추가 발행이 아니라 초과세수 25.2조 원과 기금 자체재원 1조 원으로 마련하고, 오히려 1조 원의 국채를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본예산 대비 국가채무와 관리재정수지 지표도 소폭 개선되는 구조다. 위기 대응을 하면서도 재정 신뢰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따라서 이번 추경을 단순히 큰돈을 풀어 단기 처방을 하는 예산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전쟁발 충격에 대응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부담을 일정 부분 관리하려는 설계가 담겨 있다.
결국 이번 추경은 "써도 되느냐"보다 "지금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로 봐야 한다. 전쟁과 유가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취약계층, 소상공인, 청년, 비용 증가에 민감한 산업은 충격을 버틸 여력이 크지 않다. 지금 대응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할 수 있다. 이번 추경은 규모 자체보다 시급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지원이 소득 하위층 중심으로 설계되고, 선별과 차등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정책의 방향도 비교적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늦은 대응이 아니라, 충격이 본격화되기 전에 작동하는 대응이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바로 속도에 있다.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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