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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오랜만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분기 실질 GDP(국내총생산)는 전년동기 대비 3.6% 성장했고, 실질 GDI(국내총소득)는 12.3% 늘었다. 생산의 증가보다 국민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소득의 증가가 훨씬 빠르다는 뜻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단가가 뛰고 교역조건이 개선된 결과다. GDP가 얼마나 생산했는지를 보여준다면, GDI는 그 생산이 국민경제의 구매력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지금은 단순히 성장률이 높아진 시기가 아니라, 경제 전체가 쓸 수 있는 소득과 재정 여력이 함께 커지는 국면이다.
명목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17.1%, 전기대비 10.5%를 기록했다. 수출 가격 상승이 기업과 국민경제의 소득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수출 호조는 기업의 이익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설비투자와 협력업체 매출, 임금과 고용,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로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와 첨단산업의 호황이 경제 전반의 소득 기반을 넓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재정은 경기의 뒷정리를 하는 수동적 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늘어난 세수를 단지 적자를 메우고 지출을 줄이는 데만 쓴다면, 지금의 호황은 일시적 숫자 개선으로 끝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소득과 세수의 증가를 미래의 성장능력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적극적 재정운용은 무조건 돈을 더 쓰자는 뜻이 아니다. 성장의 과실을 생산적인 투자로 전환해 민간의 혁신과 투자, 고용과 소비를 다시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선순환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수출과 기업 이익이 늘면 세수가 좋아진다. 정부는 그 재원을 활용해 연구개발, 인공지능과 반도체, 전력망과 에너지 전환, 지역 혁신, 돌봄과 교육, 청년과 중장년의 재교육에 투자할 수 있다. 이러한 투자는 단기적으로는 정부 지출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민간의 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 기업이 투자할 이유가 생기고, 노동자는 더 나은 일자리와 숙련을 얻으며, 지역은 인구와 산업의 공동화를 늦출 수 있다. 그렇게 높아진 생산성과 고용은 다시 가계소득과 기업이익, 세수 증가로 돌아온다. 재정이 성장의 결과를 나누는 사후 장치가 아니라 성장 자체를 만들어내는 촉매가 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는 미래를 위한 기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호황과 교역조건 개선으로 늘어난 세수를 모두 부채를 상환하거나 추경으로 지출하거나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산업 사이클이 꺾일 때 재정도 함께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초과 세수를 단순히 쌓아두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일정 부분은 가칭 '미래전환기금'으로 적립해 장기 과제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기후위기, 돌봄 수요 확대, 전략기술 경쟁은 시장에만 맡겨 두기 어려운 국가적 과제다. 더구나 인공지능으로 인한 변화가 가져올 구조조정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의 소득 증가를 미래세대의 성장 기반으로 바꾸는 통로가 필요하다.
이 기금이 보조금을 나누어 주는 통장이 되면 곤란하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위험을 분담하고, 파급효과가 큰 분야에 집중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예컨대 첨단기술의 기초연구와 실증사업, 지역대학과 연구기관의 혁신 역량, 기후적응 인프라, 공공 돌봄 기반, 산업전환 과정에서 타격을 받는 노동자와 지역의 재도약에 투자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선도적으로 위험을 분담하면 민간의 후속투자를 끌어낼 수 있다. 재정지출 1원이 단순한 이전지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간투자와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채무와 가계부채 비율의 개선 가능성도 이런 적극재정의 여지를 넓혀 준다. 명목 GDP가 빠르게 늘면 국가채무의 GDP 대비 비율은 40%대 중반으로 낮아질 수 있고, 가계부채 비율도 80%대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재정을 움츠릴 이유가 아니라, 재정의 질을 높일 기회다.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국면에서 정부는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성장률을 높이는 투자에 더 전략적으로 나서야 한다.
가계부채 비율이 낮아지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소득 증가가 부채 증가를 앞서기 시작했다면, 그 여력을 다시 부동산과 대출 확대에 쏟아붓기보다 가계의 소비 여력과 미래 소득능력을 높이는 데 써야 한다. 주거와 교육, 돌봄의 불안을 줄이고 노동시장 이동과 재교육을 지원하면 가계는 빚에 의존하지 않고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적극적 재정은 가계의 부담을 일시적으로 대신 떠안는 것이 아니라, 가계가 더 안정적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수출 호조와 명목성장의 상당 부분이 특정 산업과 가격 상승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성장의 과실이 일부 기업과 자산 보유자에게만 집중된다면 소비와 내수의 회복은 제한될 수 있다. 그래서 적극재정은 더 필요하다. 수출 호황에서 생긴 소득을 내수와 지역, 청년과 취약계층의 역량 강화로 연결해야 성장의 폭이 넓어진다. 성장의 과실이 넓게 퍼질수록 소비 기반이 두터워지고, 경제의 회복력도 커진다.
재정의 선순환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수출과 소득이 늘어 세수가 개선되면, 정부는 미래투자와 구조전환에 나설 수가 있다. 그 투자는 민간의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고 생산성을 높인다. 높아진 생산성과 소득은 다시 세수를 늘리고, 재정은 더 큰 위기 대응력과 투자 여력을 갖게 된다. 적극재정은 재정지출의 확대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다음 성장의 씨앗으로 바꾸는 전략이다.
명목성장률 두 자릿수는 자랑할 숫자만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오랜만에 얻은 정책의 여유이며, 국가가 무엇에 투자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기회를 일회성 감세와 단기 지출 확대에 소진할 것인지, 아니면 미래산업과 사람, 지역과 돌봄에 투자해 성장의 기반을 넓힐 것인지가 중요하다. 경제가 좋아졌을 때 적극적으로 미래에 투자하는 나라만이, 다음 침체가 왔을 때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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