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28일 일본 구마모토에서 규모 6.8(일본 기상청 기준 7.1)의 강진이 일어났다. 최대 진도 7의 흔들림에 쇼핑몰 천장이 내려앉고 8만 가구가 단수됐지만, 사망자는 38명에서 멈췄다. 13일 뒤인 8월 10일에는 콜롬비아 서부 커피 산지를 규모 7.4의 지진이 덮쳐 240명 넘게 숨지고 1600여 동의 건물이 부서졌다. 실종자가 수천 명이라고 한다. 일본과 콜롬비아의 사례는 진원 깊이가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같은 커피 벨트의 도시 아르메니아를 덮친 1999년 지진(규모 6.2)에서 1900여 명이 희생됐던 사례를 살피면 참조할 내용이 드러난다. 당시 아르메니아에서 무너진 건물 대부분은 내진 기준 도입 이전의 노후 건축물이었고, 1984년 내진 설계 도입 이후 지어진 건물은 대체로 버텼다. 재난의 피해 수준은 누적된 준비 수준을 따랐다.
일본인의 침착한 대응을 국민성으로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구마모토 지진 당일 나는 후쿠오카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지진 1분 전 굉음의 재난 경고 문자가 오자 사람들은 앱을 켜서 진앙과 진도를 확인한 뒤 해야 할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진도는 3이었고, 사람들은 잠시 기다렸다가 강의를 속개하자고 했다. 만약 진앙이 가깝고 진도가 5가 넘으면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만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국민성 이야기는 절반만 맞다. 일본은 1978년 미야기현 해역 지진을 겪고 1981년 내진 설계 기준을 대폭 상향했고,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기존 건축물의 내진 보강을 촉진하는 법을 만들고 2000년에 기준을 다시 손봤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의 복구 과정에서는 현과 시정촌 단위의 피난소 운영과 훈련 체계를 재정비했다. 이번 지진에서 주민들이 침착했던 것은 기질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의 산물이고, 건물이 버틴 것은 재난이 올 때마다 기준을 올리며 축적해 온 제도의 성과다. 그리고 그 훈련과 대응의 실핏줄은 언제나 기초자치단체였다.
한국은 2003년 태풍 매미 이후 초대형 태풍이 상륙한 경험이 없고, 2016년 경주와 2017년 포항 이후 이렇다 할 지진도 겪지 않았다. 공공시설물 내진 보강은 진척됐지만 민간 건축물의 내진율은 여전히 20%에 못 미치고, 내진 설계의 지역별 격차가 크다. 경주와 포항 지진을 겪은 경북의 내진율이 오히려 전국 최하위권이다. 얼마 전 만난 한 기후과학자는 이제 장마를 한국에서 찾기 힘들 거라고 전했다. 앞으로 여름비는 국지성 폭우로 쏟아지며, 태풍은 늦여름까지 달궈진 바다 위에서 힘을 키워 9월에 몰려온다는 것이다. 특히 농촌 가구의 대응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6~7월의 장마, 이어지는 폭염, 그 이후의 태풍을 전제했던 농촌의 기상 대응 방식도 불확실성과 높은 기후 변동성에 맞춰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경험이 없는 재난이, 경험이 없는 지역에, 예고 없이 도착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정점으로 한 중앙 중심의 방재 국가고, 이 체계는 대규모 재난에서 자원을 동원하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 이번 콜롬비아도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대통령이 직접 통합지휘부를 꾸려 대응했지만, 도시마다 피해 수준을 가른 것은 그 지역의 건물과 병원, 그리고 현장의 대응 역량이었다. 컨트롤타워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재난이 전국에 균등하게 오지 않는다. 재난은 언제나 국지적으로 도착하고, 골든타임의 첫 대응은 시군구와 읍면동의 몫이다. 인구 감소가 빠른 지역일수록 방재 인력과 재정, 응급의료 자원이 부족하다. 재난 담당 공무원 한두 명이 풍수해와 지진, 산불과 폭염 대책을 도맡는 군 단위 지역이 적지 않고, 순환보직 탓에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설계된 매뉴얼이 모든 지역에서 같은 속도로 작동하리라 기대하기 어렵고, 중앙의 컨트롤타워가 이 역량 격차 전체를 메우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중앙은 재난이 전개된 뒤 자원을 집중해 보낼 수는 있어도, 재난 초기 대응을 각 지역 대신 해줄 수는 없다.
기후 재난의 얼굴은 권역마다 다르다. 남해안은 태풍과 해일, 동해안은 지진과 산불의 위협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재의 기획 단위도 5극 3특 기준의 권역별로 유연하게 편성되어야 한다. 초광역권 협력이 지역산업 정책과 교통망 조성에 머물 이유가 없다. 권역별로 위험 지도를 그리고 장비와 전문인력, 거점병원과 대피 체계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비축하는 것이다. 실제 훈련과 첫 대응은 일본의 시정촌이 그러하듯, 시군구와 읍면동이라는 더 작은 행정 단위가 몸에 익혀야 한다. 계획은 권역이 세우고, 힘줄과 핏줄은 동네 수준까지 이어서 엮어야 한다.
이것은 방재 정책이면서 동시에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다. 안전은 정주 여건의 출발점이고, 재난 대응 역량의 격차가 곧 지역 격차다. 재난에 취약한 지역에 사람과 기업이 머물기 어렵고, 사람이 떠난 지역은 다시 재난에 더 취약해진다. 방치되어 있는 빈집들이 만드는 다양한 위험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는 투자가 방재다. 격변하는 기후 앞에서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버텨낼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 것까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태풍 오기 전 지역의 준비가 수도권-비수도권 다양한 형태의 격차와 불평등을 줄이는 또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학, 문화인류학을 거쳐 공학 박사(과학기술정책 전공)를 받았다. 제조업, 엔지니어, 산업 생태계에 대해서 현장 연구를 수행 중이다. 저서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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