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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번영정책

엄중한 사태, 가벼운 언론

‘농축우라늄 밀매업자 조선족 구속’ 등 북핵 오보 난무

2006.10.25 이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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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사태와 관련해 국내 언론들의 무책임한 보도가 난무하고 있다. 조선족의 농축우라늄 판매시도 기사를 비롯해 11일 북한의 2차 핵실험 관련보도, 9월 25일 로버트 칼린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 담당관의 에세이 보도 등 오보가 줄을 잇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이 엄중한 사태를 보도하고 있는 국내 언론들의 형태를 살펴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우선 국내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대서특필한 조선족 농축우라늄 판매시도 기사와 관련, 베이징(北京)시 펑타이(豊臺)구 인민검찰원은 지난 23일 베이징오락신보(吳樂信報)가 보도한 우라늄 밀매업자 구속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고 24일 밝혔다. 수사 결과 이들이 소지한 물품은 농축우라늄이 아니라 골동품이었으며, 피의자 역시 조선족이 아니라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중국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1보를 쓴 베이징오락신보는 지난 22일자에서 장 씨 등이 농축 우라늄 969.03g을 해외에 팔아 넘기려 한 혐의로 구속됐다며 경찰이 이들로부터 압수한 물건을 감정한 결과 핵무기 원료로 사용되는 우라늄-235 성분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었다. 이 기사는 정식 기자가 아닌 실습생(수습기자)과 통신원 명의로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베이징오락신보의 황당한 오보는 중국보다는 한국에서 더 요란스러웠다. 베이징오락신보의 농축우라늄 관련 기사를 가장 크게 받아 쓴 조선일보를 위시해 한국일보와 매일경제신문 연합뉴스 세계일보 등이 대서특필하며 파장을 키웠다.

조선일보 10월 24일자 1면.

조선일보, 1면·4면에서 ‘농축우라늄과 조선족’ 대서특필

조선일보는 24일자 1면 톱으로 보도한 ‘中 조선족 ‘농축우라늄 장사’;1㎏ 단둥 등서 판매시도… 中서 2명 검거’란 기사에서 “중국 경찰은 지난달 핵무기 원료로 쓰이는 농축우라늄 1㎏을 판매하려던 중국인 2명을 체포했다고 중화권 언론이 23일 보도했다”며 “베이징(北京) 경찰에 확인한 결과, 체포된 2명은 모두 조선족 동포로 밝혀졌다. 중국 경찰은 농축우라늄의 출처를 러시아로 추정하고 있으나, 북한산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북한 사정에 밝은 중국의 소식통들은 ‘북한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한 소식통은 ‘조선족 동포들 중 북한과의 밀무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중국과 북한 접경 지역에서 ‘북한에서 빼내온 농축우라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구매 희망자를 알선해 달라고 접근한 사례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만으로는 모자랐는지 4면 ‘中적발 ‘농축우라늄 1㎏’… 어디서 왔나; 舊소련? 北?… 또 하나의 수수께끼’란 관련기사를 통해 “대만 언론 보도대로 이번에 중국 공안에 적발된 조선족 상인들이 농축 우라늄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은 핵폭탄 개발에 사용되는 ‘우라늄 235’라는 물질일 가능성이 있다”며 서균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인용해 “우라늄 235는 약 20㎏을 모아 놓아도 바로 폭발력을 갖는 위험한 물질”이라고 친절한 해설을 곁들였다.

조선일보 10월 24일자 4면.
이어 “일반적으로 핵물질은 국가가 관리하기 때문에 핵 보유국 가운데 국가 전체의 위기가 있던 나라가 아닌 경우에는 이 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라며 “다른 가능성은 파키스탄 핵 개발을 담당한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한 국제 밀매 조직”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또 “미국 정보당국은 이 밀매 조직에 북한, 리비아, 이란 등이 관련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면서도 “북·중 접경 지역인 단둥에서도 구매자를 찾은 것으로 나와 있지만 북한과의 직접 연관성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본 언론의 “북한 2차 핵실험 실시”도 오보

이에 앞서 지난 11일에는 일본 언론들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대형 사고를 쳤다. 북한이 11일 오전 2차 핵 실험을 실시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가장 먼저 보도한 니혼TV에 이어 NHK와 아사히 등이 이를 받아서 긴급뉴스로 전하면서 사태는 커졌다. 일본 민영방송 니혼TV는 오전 8시 40분쯤 긴급 자막방송을 통해 일본정부가 오전 7시 40분 보통과는 다른 지진파를 관측했으며, 북한이 2차 지하 핵실험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보분석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공영 NHK도 자막으로 일본정부가 북한에서 흔들림이 관측됐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2차 핵실험 가능성이 있어 관련정보 수집을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의 보도내용은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 등 세계 주요 통신사는 물론 연합뉴스 등 국내 언론을 타고 북한의 2차 핵실험 징후가 포착됐다는 속보로 긴급 타전됐다. 전 세계 언론들이 한순간 일본 언론들의 어처구니없는 오보에 휘청거린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는 보도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고 더 큰 파장을 막을 수 있었다.

이날 일본 언론의 보도에 대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측은 “일본 바다에서 발생한 것은 핵실험에 의한 인공지진이 아니라 순수한 자연지진으로 판단된다”며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더라도 일본에서는 매우 약하게 감지되므로 일본이 주변의 작은 지진에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 신문사는 “이번 해프닝은 북핵에 대한 일본의 지나친 예민함에서 초래된 것으로 보인다”며 “아울러 대북강경책과 군사대국화 명분으로 북핵 사태를 활용하기 위해 위기감을 확대시키려는 일본 정부 및 언론의 속내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썼다.

문제는 이 같은 분석 이전에 사실관계를 확인한 보도보다는 받아쓰기에만 급급한 한국 언론들의 보도태도가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었다는 점이다. 만일 일본 언론의 보도가 확인가능한 일과시간이 아니라 마감시간이 임박한 일과 후 시간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로버트 칼린 전 미국관리의 에세이 받아쓰기

마감시간이 임박했을 때 빚어지는 대형오보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9월 25일자 대부분의 국내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이 로버트 칼린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 담당관이 작성한 에세이를 올해 7월 평양의 북한재외공관장 회의에서 강석주 외무성 부상이 한 발언으로 알고 보도한 사건이다.

24일 밤 11시경 연합뉴스의 보도로 시작된 오보 사태는 25일 일부 신문이 <북 핵무기 최소 5∼6기 보유> 등의 제목으로 여러 면에 걸쳐 대서특필하면서 크게 확산됐다. 신문들은 연합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인 채 노틸러스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을 옮겼다. 한겨레와 중앙일보는 기사에 우리 정부 입장을 추가 취재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긴 했으나 칼린의 에세이가 허구임을 밝혀내진 못했다.

‘로버트 칼린의 자작 에세이’를 첫 보도한 연합뉴스는 다음날인 25일 새벽 5시경 ‘기사 전문을 취소한다’고 밝히면서 오보사태의 파장을 최소화시키려 했지만 이미 조간신문들의 마감시간을 넘긴 상태였다.

결국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9월 26일 ‘북 강석주 발언 오보 사과드립니다’란 정정기사를 통해 신문 마감 시간 이후 추가확인한 결과 강석주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 아닌 전 미국 관리의 에세이임이 확인됐고 부정확한 보도를 한데 대해 독자여러분께 깊이 사과한다는 사과문과 정정보도문을 게재해야 했다.

이와 관련,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그룹 동북아사무소장은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한국 언론들이 영어를 정확히 해석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글에 나오는 ‘채널(channel)’이란 말은 무당이 자기 몸에 귀신이 들어가서 자기의 말이 아닌 귀신의 말을 할 때 쓰는 말”이라며 “이는 로버트 칼린의 몸에 강석주가 들어와서 말한다는 의미인데, 그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들의 북한 관련보도, 특히 북한의 핵실험이나 핵무기 관련보도는 북한 사회의 폐쇄성·특수성과 일부 언론의 안보상업주의에 의해 추측과 왜곡, 오보가 반복돼왔다. 북한관련 대형오보를 소개하는 것만으로 책 한권, 아니 전집 한질을 쓸 수 있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오보가 반복되는데도 우리 언론들의 고질적인 불감증, 악의적인 무관심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하지 않으면 쓰지 않겠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은 우리 언론에게 요구하기 어려운 것일까.

“봉쇄명분의 선전성 뉴스는 가려낼 수 있어야”

한국일보 강병태 논설위원은 지난 24일자 ‘지평선: 핵물질 밀수’란 칼럼에서 “북한 핵 위기 속에 중국 조선족이 출처 불명 농축우라늄을 팔려다 체포됐다는 뉴스는 낡은 탐사보도를 떠올리게 한다”며 “이런 뉴스의 대표적 허점은 농축 우라늄이든 뭐든 핵 물질을 들고 다니는 인간은 온전히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어렵게 얻은 핵 물질을 내다팔 처지가 아니라는 지적은 그 다음”이라며 “북한 핵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건 좋지만, 봉쇄 명분을 노린 선전성 뉴스는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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