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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부동산정책 40년

2만불 시대 주택, 5만불 시대 주택

친환경 계획개발이냐, 원활한 주택공급이냐

[실록 부동산정책 40년 ⑪] 부동산과 택지조성의 방정식

2007.03.06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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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1960년대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함께 크게 움직이기 시작해 지난 40년간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수급 불균형과 공급시차,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향상과 과잉 유동성, 건설경기 부양 유혹, 부동산 투기심리에 무력했던 제도, 정책 미비 등의 요인들에 의해 변동을 겪었다. 과거 집값이 급등할 때는 항상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리고 주택공급이 부족했으며 투기로 얻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역간 불균형 개발의 결과인 수도권 집중, 핵가족화와 고령화로 인한 도시 가구수 증가 등으로 주택 수요는 공급을 앞질렀지만 주택부족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미흡했다. 민간자본에 크게 기댄 주택시장 구조는 주택을 투기대상으로 보는 심리를 키웠다.

지난 40년간 투기억제와 경기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일관성 없는 정책이 추진되면서 주기적 집값 상승과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줬고, 적절한 대체투자 시장의 미성숙은 자본의 부동산 쏠림 현상을 가속화했다. 불투명한 시장 구조와 세제상의 허점도 많았다. 공시가격과 실제 가격이 크게 달라 진짜 가격을 알기 힘들고, 가격 부풀리기와 이중 계약서로 세금탈루가 관행처럼 이뤄졌다. 편법과 허점투성의 거래 환경은 많은 국민들을 부동산 투기라는 유혹 속으로 끌어들였다.

정부는 지금도 과거 ‘투기시대 패러다임’과 씨름하고 있다. 이는 투기로 병든 우리 부동산 시장을 근본부터 치유하고 정상화하는 힘겨운 과정이다.

국정브리핑이 주택도시연구원·국토연구원·금융연구원과 공동으로 기획한 <실록 부동산정책 40년>은 ‘제1부, 왜 올랐나’에 이어 '제2부, 어떤 정책을 폈고, 왜 못잡았나' 를 통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떤 우여곡절 끝에 탄생 했으며 역사적 의미와 쟁점은 무엇인지 점검한다. 2부의 두번째 주제로 <안정적 주택공급 정책>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제2부 어떤 정책 폈고, 왜 못잡았나
<안정적 주택 공급>
① 수도권 집중과 신도시 건설-1
② 수도권 집중과 신도시 건설-2
③ 부동산과 택지조성의 방정식
④ 서민 내집 마련을 위한 금융지원

2006년 하반기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파동 등으로 촉발된 집값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같은해 11월 발표된 11·15대책에는 앞으로 짓는 신도시, 국민임대단지의 개발밀도를 높이는 방안이 포함됐다. 기존보다 녹지율을 줄이고 용적률을 높여 한정된 공간 안에 더 많은 아파트를 지어 주택공급도 늘리고, 분양가도 낮추겠다는 취지였다.
이에 따라 김포, 파주, 광교 등 2기 신도시의 용적률이 종전 평균 175%에서 191%로 16%포인트 높아지고, 녹지율은 종전 평균 31.6%에서 27.2%로 4.4%포인트 줄었다.

2005년 5월 분양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판교신도시의 공급가구수가 환경부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종전 2만9700가구에서 2만6800가구로 10% 가량 줄어든 지 1년 여 만이다.
2006년 11·15대책의 기본 취지는 한정된 땅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2000년 이후 강조됐던 ‘친환경 계획개발’의 기조가 주택공급 확대라는 현실론쪽으로 다소 기울어진 것이다.

‘친환경 계획개발이냐, 원활한 주택공급이냐.’
2000년 이후 주택 정책의 최대 딜레마 중 하나인 이 문제의 배경에는 집을 지을 땅(택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잡고 있다.

원활한 택지확보를 위한 노력

주택문제를 풀려면 먼저 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구체화된 것은 1980년 12월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에서였다.
'주택 500만호를 짓기 위해 신규택지를 확보하고, 이를 위해 택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겠다'는 정부 발표를 보도한 1980년 10월 3일자 조선일보
이 법은 특정지역의 땅을 건설부장관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면 이 땅에 적용되는 도시계획법 등 19개 관련법령의 효력을 일시에 정지시킨 뒤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지방자치단체가 일괄 매수해 택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이었다.
이 법은 원래 5공화국의 주택 500만호 건설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500만호 건설계획은 여러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흐지부지됐지만 대규모 택지확보 계획은 택촉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법에 의해 1993년 말까지 서울 개포동(242만평), 고덕동(90만평), 상계동(112만평), 목동(130만평) 등 전국 406개 지구, 7700만평의 땅이 택지로 개발됐다. 6공화국 들어 분당·일산 등 5개 신도시 건설이 가능했던 것도 이 법 덕분이었다. 홍철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의 평가다.

체비지 팔아 사업비 충당

“5공 시대의 부동산 정책이 만족스러울 정도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비교적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집을 꾸준히 지었고, 또한 그렇게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 들고 나온 것이 개포지역 개발사업이었다. 개포에 이어 고덕지구를 100% 공영개발로 착수했고, 그걸 끝내고 나서 또 다른 대단위 개발지역을 찾다가 나온 것이 목동지구였다. 이것은 서울시가 주도했던 것인데 한편으로는 주택공사가 중심이 되어서 상계동 개발작업이 추진됐다”

택촉법이 제정되기 전 택지확보는 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1960년대 37%에 불과했던 도시화율이 1970년 51%까지 확대되면서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문제점들이 불거졌다. 종전의 도시규모나 도시계획법을 가지고는 적절한 도시개발을 시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늘어나는 도시인구를 효과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신규 대단위 택지조성, 도로 신설과 확장 등 도시계획시설 확충을 쉽게 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1966년 8월 기존 도시계획법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분리, 제정된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이란 자연상태의 땅을 택지로 조성하면서 원 토지면적에서 일부를 떼어내(감보) 공공용지로 활용하고, 이중 일부 땅(체비지)을 팔아 사업비를 충당하는 환지방식을 말한다.

강남 개발도 구획정리를 통해

서울시의 ‘서울토지구획백서’(1990년 발간)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1990년까지 서울에서만 여의도 면적(87만평)의 43배에 달하는 땅(3686만평)이 구획정리돼 택지나 공공용지로 개발됐다.

특히 1960, 70년대의 강남 개발을 뒷받침했던 것도 토지구획정리사업이었다.
정부는 1968년 제3한강교~양재동 구간의 경부고속도로 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 구간 428만평(영동 1지구 구획정리사업지구, 이후 520만평으로 확대)을 확보한데 이어 1970년 삼성동에 상공부 산하 12개 국영기업체가 들어설 종합청사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이 일대 365만평(영동 2지구) 등 모두 합쳐 총 900만평의 땅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개발했던 것이다.

1960~70년대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재의 서울 강남 지역은 토지구획정리사업 방식으로 대규모 택지공급이 이뤄졌다. 사진은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바라본 영동대로 일대 전경.

그러나 토지구획정리사업은 체비지를 통해 사업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재정부담이 적은 반면 토지개발과정에서 땅값이 급등해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데다 사업기간이 길어 신속한 택지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속전속결로 필요한 택지를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바로 택촉법이었다.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값으로 공장용지 수용

한편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필요한 공장용지는 도시계획법(1962년 1월 제정)과 산업기지개발촉진법(1973년 12월)을 통해 공급됐다.
1960년대 소규모 경공업단지 조성은 도시계획법이 활용돼 서울 영등포기계공단, 부산 사상·신평공단, 인천 기계공단, 서대구공단, 성남공단 등 대도시 주변의 공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1973년부터 자본집약적 중화학공업화가 추진되면서 기존 도시계획법으로는 대규모 중화학공업단지를 조성하는데 한계가 많았다. 도시계획구역 안에 산업기지를 설치하기에는 단지 규모가 너무 컸고, 기지조성을 위한 토지구입비도 너무 방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73년 12월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을 제정, 이 법을 통해 반월·광양·창원·여천·울산·포항 등 19개 지역에서 총 1억7210만평, 우리나라 전체 공업단지의 약 70%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 1972년 제정된 국토이용관리법을 통해 공공사업의 수용보상가를 정할 때 시가보다 현저히 낮은 기준지가를 적용케 함으로써 천문학적인 보상비용 부담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린벨트 안쪽 땅은 바닥났다

택촉법이 아무리 강력한 법이라고 하더라도 제한된 땅에서 택지공급을 무작정 늘리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미 1980년대 말에는 서울 안에 개발 가능한 택지는 거의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에 수도권 5개 신도시는 그린벨트를 뛰어넘어 서울로부터 반경 20㎞ 범위 안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 당시 건설부장관이었던 박승 씨의 증언이다.

“당시 상황을 점검해봤더니 서울 시내에 집지을 땅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그린벨트는 절대 손댈 수 없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땅은 없고, 그린벨트는 손댈 수 없으니 대안은 그린벨트 밖에 신도시를 짓고, 지하철로 교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도시 후보지로 평촌, 산본, 중동, 분당 4곳이 나왔다”

하지만 1994년 신도시 건설이 마무리될 쯤 신도시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었다. 신도시 건설과정에서 불거진 자재·임금파동과 그칠 줄 모르는 부실공사 시비는 정부 안에서조차 신도시를 거론하는 일 자체를 금기로 만들었다. 문민정부 시절 모 건설부장관이 신도시 얘기를 꺼냈다가 교체되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신도시를 짓지 않더라도 택지공급은 원활히 이뤄져야 했다. 택지공급이 막히면 주택공급이 끊어져 결국 집값 불안이 재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준농림지라는 묘수

이에 따라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1994년 도입된 준농림지 제도이다.
준농림지 제도 도입을 보도한 1993년 9월 21일자 중앙일보
집이나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도시용지 공급을 늘리고, 민간에 의한 토지개발을 촉진할 목적으로 1993년 8월 전면 개정된 국토이용관리법을 통해서였다. 이 개정안을 통해 종전까지 10개로 나눠졌던 용도지역이 5개(도시/준도시/농림/준농림/자연환경보전지역)로 단순화됐고, 특히 준농림지역 안에서 민간이 손쉽게 토지개발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특히 당시 준농림지 제도가 도입된 배경에는 기존 신도시 건설에 대한 거부감 외에도 1990년대 불기 시작한 세계화(당시에는 ‘국제화’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불림) 추세 속에서 탈규제(de-regulation), 민영화(privatization)의 요구가 거셌기 때문이다. 당시 문민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뒤쫓고 있던 참이었다.

1994~1998년까지 준농림지에서 민간에 의한 택지개발량은 여의도 면적(87만평)의 8배에 달하는 총 678만평에 이른다. 그러나 민간에 의한 무분별한 토지개발은 1990년대 후반부터 난개발과 환경파괴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다.

난개발,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준농림지 제도 도입은 당시까지 택촉법에 의한 공영개발 위주였던 택지 공급의 주도권이 민간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규제완화로 준농림지에 대한 민간 개발이 봇물을 이루면서 전국은 난개발의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서울과 가까운 용인, 화성, 남양주, 이천, 고양군 일대는 도로변을 따라 러브호텔과 대형 갈비점이 빼꼭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또 분당, 일산 등 기존 신도시의 잘 갖춰진 기반시설에 무임승차하기 위해 신도시 주변에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단독주택이나 소규모 아파트촌이 형성되면서 이 일대의 교통난 등이 심화됐다.

특히 1995년 7월 외지인도 거주지에 관계없이 논밭을 사고 팔 수 있는 방향으로 농지법이 개정되자 무분별한 준농림지 개발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어 같은해 10월 건설교통부가 국토이용관리법 시행령을 고쳐 음식점 및 숙박시설의 설치를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지방세 확보에 눈이 먼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난개발은 아무 규제를 받지 않는 실정이었다.

1994년 준농림지가 도입되면서 서울 인근 강변, 도로변을 따라 러브호텔 등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환경오염과 난개발을 부추겼다. 사진은 경기도 가평군 청평호 부근에 들어선 건물들.

당시 상황에 대해 한 언론(중앙일보, 1996년 10월 28일자)은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러브호텔 음식점 카페 호프집

“국토이용관리법 개정에 따라 경기도 내 총 면적 1만163㎢ 중 33%인 3312㎢가 준농림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준농림지역 지정 이후 △94년 1598㎢ △95년 1887㎢ △96년 8월 말 현재 456㎢ 등 총 3942㎢의 준농림지역이 타 용도로 전용됐다.
대신 이곳에는 농촌지역에 어울리지 않는 러브호텔 등 숙박업소 206곳, 음식점 2483곳, 아파트 250동, 다가구주택 897동, 주유소 78곳 등이 들어서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이 때문에 특히 양평, 광주군 등 남한강변과 경기도내 국도, 지방도변에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대형간판을 내건 러브호텔, 대형 음식점, 호프집, 카페, 찻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마치 도시지역의 유흥가처럼 돼 버렸다.”

이처럼 사태가 심각해지자 1996년 10월 당시 최양부 청와대 농림해양수석은 비서관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94년 준농림지역에서의 자유로운 농지전용 시책 이후 러브호텔과 음식점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고 이에 따른 땅값 상승, 환경파괴로 전면개선이 불가피해졌다”며 “사치성 향락시설과 공해업체의 무질서한 개발, 분산 입지를 최대한 규제해 나가겠다”고 밝힌다.

이어 농림부의 농지법 시행령 개정으로 1997년 1월부터 무분별한 준농림지 농지전용이 억제된다.
또 같은해 9월 국토이용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준농림지 내 아파트 건립 기준을 용적률 100% 이하(종전 400% 이하)로 강화하고, 최소 건립 주택수는 300가구 미만(종전에는 50가구 이내 소규모 개발도 가능)으로 현실화했다.
그러나 준농림지에 대한 규제는 곧이어 닥친 IMF외환위기 여파로 유야무야된다. 1998년 12월 ‘건설 및 부동산경기 활성화대책’으로 준농림지에 대한 토지이용 규제가 대폭 완화된 것이다.

난개발 용인시 연이은 감사 홍역

경기활성화 대책으로 준농림지에 대한 규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고 마구잡이 개발이 다시 기승을 부리자 2000년 들어 난개발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기 시작한다.

2000년 이후 마구잡이 주택건설에 따른 난개발은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사진은 난개발의 대명사였던 용인지역의 한 아파트 공사장 현장.

2000년 3월 국내 양대 환경단체의 하나인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는 ‘수도권 난개발 저지 시민연대’를 결성, 용인·파주·김포 등 난개발 피해주민들로 구성된 원고인단을 구성해 집단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힌다.

난개발에 대한 사회적 비난여론이 커지자 같은해 4월 건교부와 경기도는 용인지역의 신축허가를 향후 1년간 묶고, 분당선 오리~기흥~수원 노선 등을 조기 완공한다는 교통대책을 담은 ‘수도권 난개발 방지대책’을 내놓는다.
특히 난개발의 대명사가 된 용인시청은 건축 인·허가 과정에 대한 경기도 감사(4월 24~28일)를 시작으로 감사원 특별감사(5월 17일~30일), 건교부 감사(6월 7일~30일) 등 연이은 감사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장관직을 걸고 준농림지 대책 마련하라"

같은 해 5월 3일 당시 김윤기 건교부장관의 업무보고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수도권 인구집중은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위험하고, 경제효율성 면에서도 비능률적”이라며 “장관직을 걸고 획기적인 수도권 과밀해소 대책을 시행하라”고 지시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난개발 방지대책을 지시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같은 해 5월 30일 ‘난개발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대책의 골자는 마구잡이 개발의 주범인 준농림지 제도를 아예 없애고, 전 국토를 개발대상지와 보전대상지로 분류해 개발대상지는 ‘선(先)계획 후(後)개발’을 유도하고, 보전대상지는 철저히 보전한다는 것이었다.

8년만에 사라진 준농림지

이 대책은 2002년 2월 제정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 시행은 2003년 1월 이후)로 구체화된다.
기존 국토건설종합계획법, 국토이용관리법, 도시계획법 등 3개 법률을 통합한 이 법에 따라 종전 5개였던 용도지역이 4개(도시/관리/농림/자연환경보존지역)로 재조정되면서 1994년 도입된 준농림지는 도입 8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이에 대해 김용창 서울대 교수는 “준농림지 개발을 허용한 것은 토지공급을 늘리기 위함이었고, 현재 준농림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 토지공급의 증가를 포기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는 일부 시장주의자들의 견해가 있지만, 이는 안이한 생각에 불과하다. 준농림지의 난개발 경험에서 보듯이 계획적 개발제도를 확고하게 정비하지 않고 성급하게 추진한 도시용지 공급확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경향신문(2000년 12월 26일자)도 ‘부동산칼럼’에서 “난개발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준농림지제도 폐지 발표는 아파트 시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용인 등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분양시장이 한파를 맞기는 했지만 쾌적한 주거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제도 폐지를 옹호했다.

허공에 뜬 300만평

2000년 준농림지 폐지가 공식화되자 한동안 잠잠하던 신도시 건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첫 번째 포문을 연 것은 업계를 대표하는 상공회의소였다. 2000년 6월 21일 상공회의소는 “수도권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200만평이 넘는 대규모 신도시 건설이 시급하다”며 문산, 파주, 교하 등 경기 북부에 자족형 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청와대, 건교부 등에 긴급 건의한다.

2000년 들어 준농림지가 폐지되자 신도시 건설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다. 사진은 신도시가 들어설 경부고속도로 판교IC 모습

사실 상공회의소의 긴급 건의는 건설업계의 요구이기도 했다. 2000년 7월말 현재 주택업체가 보유한 준농림지는 약 300만평으로, 금액으로는 약 5조원에 달했다. 막대한 규모의 자산이 묶이게 될 판인 건설업계로서는 신도시 건설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야 했던 것이다. 또 주무부처인 건교부 역시 대통령까지 건설경기를 부양하라고 엄명한 상황인데다 계획적 개발이 가능한 신도시 건설에 긍정적이었다.

다시 고개든 신도시 건설

더욱 근본적으로 수도권 택지공급의 오아시스였던 준농림지 제도가 폐지되면 수도권 택지공급 부족이 결국 집값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도시 건설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2000년 10월 10일 경기 안양시 국토연구원 강당에서 열린 ‘수도권 도시성장관리와 신도시개발’이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는 그동안 묵혀뒀던 신도시 건설 카드를 공식화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에서 국토연구원은 판교(250만평), 화성군 중부지역(400만평), 충남 천안·아산지역(890만평) 등 3곳에 우선적으로 신도시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고, 여전히 신도시 건설에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건교부는 전문 연구기관의 정책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우회적으로 신도시 건설 논의를 공식화한 것이었다.
1990년대 초반 기피됐던 신도시 건설의 대안으로 각광받았던 준농림지가 숱한 부작용을 남긴 채 사라지자 다시 신도시 건설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친환경 계획개발이냐, 원활한 주택공급이냐

택지공급의 새로운 대안으로 신도시 건설이 떠올랐지만 2000년대의 상황은 1990년대 초반처럼 마구잡이식 신도시 건설이 불가능해졌다. 1990년대 말부터 환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토지개발사업이 힘들어지고, 그 과정도 기존 3년 내외에서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등 환경규제 강화로 5~6년 가량이 걸리게 됐기 때문이다.
‘친환경 계획개발이냐, 원활한 주택공급이냐’라는 주택정책의 딜레마 중 전자가 대세로 굳어진 것이다.

2003년 1월부터 시행된 국토계획법에 따라 난개발이 제한되고 계획적 개발이 강조되면서 민간의 택지확보가 더 어려워졌다. 여기에 도심지 난개발을 막기 위해 주차장과 일조권 확보 요건이 강화되면서 연간 10만~20만호씩 지어졌던 다가구·다세대주택이 2003년부터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갈수록 늘어나는 택지개발비용도 원활한 택지공급을 어렵게 했다.
1990년대 초 분당신도시 개발 당시 수용보상가는 평균 평당 19만2000원 선이었지만 2000년 이후 판교신도시 개발에는 보상가가 평당 200만~300만원을 웃돌았다. 여기에 상하수도, 전기, 가스, 도로 등 각종 기반시설비용까지 보태져 판교신도시의 경우 조성원가만 평당 734만원에 달해 전체 분양가(평당 1300만~1857만원)에서 택지비 비중이 53%에 이르렀다. 2006년 하반기 고분양가 파동의 주역인 은평뉴타운의 경우 분양가(1151만~1523만원) 내 택지비 비중이 57.2%였다.

이처럼 주택공급을 위축시키는 모든 조건들에다 일부 지역의 고분양가 파동이 보태지면서 2006년 하반기 집값 상승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1월 발표된 11·15대책은 친환경 개발과 주택공급 확대라는 두 명제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와 관련, 건교부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는 국민소득 2만불 수준에 살면서 주택공급정책은 5만불 시대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여하튼 11·15대책은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기하여 주택공급물량을 늘리는 계획을 담았다. 개발밀도를 높이고 녹지율을 약간 낮추지만, 중심지는 압축개발해 대중교통 중심으로 생활편리성을 갖추도록 하고, 단지내 생태녹지율을 높이는 새로운 친환경개발기법을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5만달러 시대의 주택, 2만달러 시대의 주택

대책에서는 신도시와 국민임대단지의 개발밀도를 상향조정했고, 택지개발절차를 간소화해 신도시 개발기간을 종전보다 1년 여 앞당겼다. 또 기반설치비용을 지자체와 적절히 분담해 택지비 인상을 최대한 억제키로 했다.
친환경 계획개발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민간주택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계획관리지역 내 2종 지구단위계획 구역의 용적률을 종전 150%에서 180%로 확대키로 했다. 다가구·다세대주택의 주차장 기준 완화 등도 포함됐다.
이를 통해 2010년까지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86만7000호(53%), 민간택지에서 77만3000호(47%)를 각각 공급해 2007년부터 매년 수도권에 36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택지공급의 용이성만을 고려해 개발을 최우선으로 할 경우 준농림지의 난개발과 유사한 문제들이 또 다시 발생할 것이다. 또 계획개발이 필요한 지역보다 개발이익이 발생하는 곳을 중심으로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국토공간이 왜곡될 수 있다.
반면 친환경 계획개발이 강조된 나머지 택지공급이 원활치 못할 경우 주택가격 상승을 초래해 국민들은 난개발 못지않은 부담이 생긴다. 난개발을 생각하면 환경규제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지속적인 주택공급을 위한 택지확보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공급시차의 문제도 제도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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