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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경제정책사

“문 닫을까요, 외국에 팔까요, 당신이 살 거요?”

[실록 경제정책] ① 카드사태와 금융시장 안정

“카드대란, 관치였다면 시간 끌지도 않았을 것”…대화와 설득으로

2008.01.24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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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미-이라크 전쟁, 신용불량자와 카드채 사태…. 돌아보면 먹구름 뿐이었다. 2003년 위기 상황에서 출범한 참여정부는 신중한 경기조절 등으로 살얼음판 위를 조심스레 건너갔다. 인위적인 경기부양과 결별하는 대신 경제체질을 튼튼히 하고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하고, 본질적 문제 접근을 통한 제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혁신경제와 공정한 시장, 한미자유무역협정(FTA)등 적극적 개방정책, 금융허브 추진을 비롯한 금융산업 선진화정책, 지속적인 연구개발(R&D)투자 확대, 남북경협 등 오늘보다 내일을 위한 투자에 집중했다.

‘한 손에는 성장잠재력 확충, 다른 손에는 사회안전망 확대’. 참여정부는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투자를 확대했다. 경제성장과 사회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전략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고질병이 된 ‘저성장 속 양극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했다. 그럼에도 민생의 어려움은 짙은 그림자로 남았다. 우리 경제의 낡은 유산과 싸우며 새로운 성장전략을 추구했던 참여정부의 이러한 비전과 고투가 한국경제의 터닝포인트로 기록될지 여부는 역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국정브리핑은 재정경제부·한국금융연구원·한국조세연구원 등과 함께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탄생 배경과 전개과정, 정책효과와 의미 등을 실록 형태로 정리한 ‘실록 경제정책’을 기획, 연재한다. 전·현직 정책 담당자들의 증언과 각종 정부기록물, 학계 연구보고서 등을 밑그림으로 삼아 ‘읽는 재미’와 함께 경제정책의 원리와 방향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안목을 제공하려 한다. 연재 내용은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할 예정이다. <편집자>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의 불똥은 시한폭탄으로 여겨졌던 카드채로 튀었다. 사진은 카드발 위기설을 전하는 2003년 3월 13일자 중앙일보 경제 1면 기사.
2003년 3월 14일 아침 여의도 산은캐피탈 건물에서 나온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현 재정경제부 1차관)은 서둘러 금융감독위원회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흐린 날씨만큼이나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대책반장으로 연일 이 건물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추이를 지켜보다 금융시장 전체를 흔들 만한 문제 덩어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앞서 3월 11일, 검찰은 SK글로벌 분식회계(기업이 자산이나 이익을 실제보다 부풀려 재무제표상의 수치를 고의로 왜곡시키는 행위) 사건을 발표했다. 우려했던 SK글로벌발 금융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대책반에 참여했던 이동훈 당시 금감위 감독정책과 사무관의 이야기다.

“2월말 검찰로부터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대책을 마련한 뒤 일일 시장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SK글로벌 등 SK그룹의 채권이 포함된 펀드의 규모에 비해 환매요청이 들어오는 규모가 생각보다 광범위했다. 뭐가 문제인지 들여다보니까 카드채가 들어있는 펀드였다.”

■ 카드대란 1라운드-카드채 문제의 발견

신용카드사는 고객이 사용한 카드대금을 대신 결제하고 수수료를 챙긴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카드채 등을 발행해 확보한다. 즉 돈을 빌려 돈을 대신 갚아주는 셈이다. 만약 카드채를 사는 이가 없거나 카드채 만기연장이 안될 경우 카드사는 급격한 자금경색에 시달리게 된다. 카드채 가치가 떨어지면 카드채를 가진 금융기관도 손해를 보게 된다.


이미 시장은 2002년 후반기부터 과당경쟁과 신용불량자 급증으로 시한폭탄으로 지목돼 온 신용카드사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금감위도 2002년 10월쯤 카드채 등 신용카드사의 채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다만 자산을 근거로 한 채권이 많았던 까닭에 만기연장 및 신규발행이 이뤄지고 있어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판단했다. 2003년이 되자 ‘특별한 변수’가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카드사들의 위험한 곡예…카드채 규모 90조원이나

2003년 한국경제는 신용불량자 문제로 내수부진을 겪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금융기관의 해외차입이 중단 직전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여기에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되고 있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카드채 위기가 터진다면 걷잡을 수 없었다. 김석동 국장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카드채 규모가 50조원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꼼꼼히 살펴보니 카드채 규모가 90조원에 육박했고 대부분 단기채였다. 카드사들이 상당히 위험한 곡예를 하고 있었다. 회사만 튼튼하면 상관이 없지만 당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신용불량자 수가 계속 늘고 있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긴급한 비상조치가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카드대란 1라운드-카드채 대책 마련

김 국장은 유지창 금감위 부위원장을 찾아가 금감위와 금감원의 관계국이 참가하는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김 국장은 빠른 시간 안에 특단의 대책, 초대형 규모의 구제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주말에 협의를 거친 뒤 3월 17일 오전 7시 30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김광림 재경부 차관 주재로 금융정책협의회를 열어 ‘신용카드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대책은 신용카드사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 및 수지개선 대책을 전제로 신용카드 규제를 일부 완화해 이들의 자금조달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김 국장의 말이다.

“카드사의 증자계획을 담은 3·17대책은 카드사가 자구 노력을 하도록 촉구하는 대책이었다. 그렇게 한 뒤 정부와 금융부문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금융회사들과 오랫동안 협의를 해서 만들어낸 것이 4·3대책이었다.”

“4조 수천억원은 있어야 카드 산업이 붕괴하지 않으리라”

김 국장이 2차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을 때인 3월 21일 이동걸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이 금감위 부위원장으로 부임했다. 이 부위원장의 회고다.

“부임하고 보니까 카드 산업이 거의 도산상태였다. 카드산업 부실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선 부실의 규모가 얼마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립, 긍정, 비판적 시나리오를 세워서 계산해보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4조 수천억원은 있어야 카드 산업이 붕괴하지 않으리라는 결과가 나왔다.”

4·3대책은 카드사의 증자규모를 2조원(3·17대책)에서 4조 6000억원 수준으로 늘리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카드사의 유동성을 개선하는 조치를 담았다. 카드채 문제에 정부와 금융권이 두 팔을 걷고 나선 4·3대책 이후 시장은 일단 안정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 카드대란의 원인-카드사, 회원, 정부 모두의 잘못

거대한 금융위기로 비화될 뻔한 카드대란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카드대란’ 국정감사가 열렸던 2004년 10월 21일 진념 전 재경부장관의 발언이다. “카드사 1번, 회원 2번, 정부 3번, 그러나 카드사가 잘못했든 회원이 잘못했든 도덕적인 면에서 정부의 책임이 작지 않다고 반성하고 있다.”

2004년 10월 21일 오전 국회 재경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진념전재정경제부장관이 신용카드대란과 관련한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자영업자 탈세 방지와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하는 등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분위기에 편승해 신용카드사는 길거리 회원 모집 등 무분별한 카드발급 남발과 과당경쟁을 벌였다. 사용자들은 무리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해 카드대란에 일조했다.

“도덕적인 면에서 정부의 책임이 작지 않다고 반성하고 있다”

정부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부가 제대로 관리만 했더라면 카드대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정부 부처간 카드정책이 조금씩 엇나갔다. 국민의정부는 신용카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신용카드 현금대출 한도를 폐지한 1999년 5월의 결정이다. 재경부는 이를 반대했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신용카드 현금대출 한도는 카드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사항이라는 이유로 규제를 폐지했다.

국민의정부는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어 매번 그 성과를 점검했다. 규제완화 실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할 정도로 몰아쳤다. 이에 대한 여론도 긍정적이었다. 2004년 10월 12일 국감에서 나왔던 김현미 의원(열린우리당)의 지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을 막론하고 언론이나 학계 모두 다 ‘규제 폐지 만능’이라는 우상에 휩쓸려 다니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보도를 보면 ‘현금서비스를 받고 말고는 기본적으로 고객과 카드사가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항이 아니다. 냉면집 간판을 단 식당은 갈비탕을 50% 이상 팔면 안 된다고 강제하는 것과 같다’는 식의 기사가 굉장히 많았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규제 폐지 맹신이 빚은 것이다. 규제 폐지 만능주의에 정부가 휩쓸려서는 안 된다.”

■ 카드대란의 원인-설익은 규제완화

1999년 5월 월70만원이던 현금대출 한도가 사라졌다. 그러자 그해 48조 1000억원 규모이던 현금 대출은 2001년 267조 7000억원 규모로 6배 가량 많아졌다. 국민의정부는 신용카드 등 가계대출을 기반으로 한 폭발적인 내수성장 덕택에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카드사용으로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잉태했다. 2003~2004년 한국 경제는 극심한 내수부진에 빠졌다.


금감위는 2001년 신용카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곧 재경부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번에는 재경부가 반대 의견을 내놨다. 진념 전 재경부장관은 2004년 10월 14일 국감에서 규제 도입에 반대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현금서비스 문제는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금 사용한도를 1000만원 줄 것이냐, 5000만원 줄 것이냐는 것은 카드회사가 고객의 재산이나 소득 상황을 점검하고 주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고 2년 전 폐지한 규제를 다시 도입하는 것은 시장의 안정성 등 여러 측면에서 부작용이 더 많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길거리 회원모집 등 무분별한 카드발급부터 규제

재경부는 대신 기승을 부리던 길거리 회원모집 등 무분별한 카드발급을 규제하기로 했다. 회원모집방법을 금감위가 정할 수 있도록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금감위는 길거리 회원모집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감독규정 개정작업을 벌였다. 이번엔 규제개혁위원회의 의견이 달랐다. 안문석 전 규개위 경제1분과 위원장은 2004년 10월 12일 국감에서 규제법정주의를 강조했다.

“(당시 위원회에서는) 여전법에 근거가 없는데 금감원의 규정으로 넣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정부측 위원의 주장이 많았다. 조속한 시일 내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 다시 올리라는 것이었다. 가두모집 같은 것은 기존 법을 통해서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단속을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카드대란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카드사가 카드발급을 할 때 잘 해줘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감독관청이 잘 감독하는 데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얘기했다.”

카드회원을 모집할 때 카드사가 카드가입 희망자에게 소득확인서류를 요구하도록 의무화하는 금감위의 방안도 마찬가지였다. 안문석 전 위원장의 국감 답변이다.

“금감위의 규제요청은 규제법정주의에 따라 문제가 있었다. 금감위가 요청했던 규제의 1차적 피규제자는 카드사였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그 의무를 지우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규제법정주의 때문에 위원회는 논의 끝에 기술적으로 풀어나갔다. 즉 카드사는 국민들에게 소득을 확인했다는 사실만 기록하고, 다음에 금감위와 금감원이 카드사 기록 확인을 통해 감독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법적 문제를 피해가도록 만들어줬다.”

■ 카드대란의 원인-정책 실패

규제 도입에 실패한 금감위는 실태조사를 거쳐 감독규정을 위반한 카드회사를 처벌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시적인 조치로 터진 둑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카드사들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무이자 할부판매 등 출혈영업을 감행했다. 개별회사의 수익구조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신용카드 문제는 2002년 커다란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카드빚을 갚기 위해 30대 이혼녀는 딸에게 윤락행위를 시켰다. 카드빚을 갚지 못한 20대 부부는 자녀 2명을 살해하고 자신들도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용카드 관련 범죄가 일어났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2002년 4월 한국의 ‘플라스틱 버블’을 경고할 정도였다.

‘플라스틱 버블’…돌려막기 카드사용자 신용불량자로

재경부 등 금융당국은 2002년 5월부터 대책을 내놓았다. 같은달 23일 무분별한 카드 발급 및 사용행태 개선, 현금대출 위주의 영업행태 개선, 대손충당금 적립기준 강화 등 2001년에 무산됐던 대책을 담은 신용카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금감위는 2003년 1월부터 부실 소지가 있는 금융기관에 내리는 경영개선 조치인 적기시정조치 요건에 연체채권 비율 기준을 포함시키는 등 카드사의 재정건전성 확보에 박차를 가했다.

2004년 7월 16일 오전 감사원에서 하복동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장이 2003년 ‘카드대란’을 초래한 정부의 신용카드 정책과 금융감독시스템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적절한 규제 시기를 놓치고 뒤늦게 강력한 조치를 들고 나온 금융당국의 정책은 오히려 카드사의 부실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카드사마다 2003년까지 현금대출 비중을 줄이기 위해 회원의 신용한도를 축소하거나 대출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돌려막기로 연명하던 카드사용자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이는 카드사의 부실로 이어졌다. 또 카드사는 적기시정조치 발동요건인 연체채권 비율을 낮추기 위해 1~2개월도 안된 연체채권을 헐값에 매각, 자산축소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감사원이 2004년 행한 금융기관 감독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 내용이다.
“재경부는 신용카드업 감독강화를 위한 법령 개정 시기를 지체했다. 규개위는 우리 사회의 규제완화 수용능력에 대한 고려 없이 가두모집 규제 철회를 권고하고 이후 사회 문제가 심화되자 뒤늦게 수용했다. 금감위는 2002년 하반기 이후 카드사가 연체채권 급증으로 경영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적기시정조치를 도입했다.”

■ 카드대란 2라운드-LG카드 사태의 시작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발생할 뻔했던 카드대란은 정부와 금융권의 선제 대응으로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수년간 누적된 카드사 부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윤용로 금감위 감독정책2국장(현 기업은행장)의 말이다.

“2003년 4·3대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금융시장 전체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불안하니까 우선 6월까지 책임분담 차원에서 카드채 만기를 연장해주고 그 안에 카드사가 증자 등 자구노력을 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보자는 것이었다. 6월이 되면서 4·3대책의 연장 여부를 놓고 의견이 많았다. 금감위나 정부 내에서 이견이 있었는데 일단 시장 기능에 맡겨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4·3대책 이후 각 카드사는 자본 확충 규모를 발표하고 이행에 나섰다. 대부분의 카드사는 대주주의 적극적인 대응 덕택에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위기를 겪지 않았다. 문제는 LG카드였다. LG카드는 업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자금난이 심했으나 대주주인 LG그룹은 적극적인 자구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이동걸 부위원장의 말이다.

‘LG가 넘어갈거냐, 자본을 확충할거냐’

“LG카드는 1년 내내 관찰대상이었다. (자구노력을 보이지 않기에) 5월쯤 강유식 LG그룹 부회장을 불러 ‘LG가 넘어갈거냐, 자본을 확충할거냐’고 강하게 얘기했다. 카드가 넘어가면 LG그룹의 신용에 회의가 오기 때문에 채권단이 LG그룹의 신용을 달리 평가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채권단이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LG측이 자본을 투입했는데 우리는 부족하다는 판단이었고 LG그룹측은 더 이상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11월까지 이어졌다.”

금감위가 LG카드를 놔두면 부도위기에 처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파악한 때는 2003년 11월초였다. 경기회복이 늦어지고 신용불량자가 증가한 데다 금융권의 신용회복 지원방안이 봇물처럼 이어지면서 회수율이 급격히 떨어지던 때였다. 윤용로 국장의 이야기다.

“10월 하순이 되면서 여러 곳에서 한국 금융시장이 어려워지리란 보고서가 나왔다. 카드회사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외국 투자은행 보고서 내용도 언론에 보도됐다. 당연히 개인투자가들이 LG카드 채권을 꺼리기 시작했다. 7월 이후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LG카드 채권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자금 조달의 중심은 개인투자가였던 것이었다. 이들이 채권을 사지 않자 자금조달이 어려웠다. 계산해보니 LG카드가 11월 중하순에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 카드대란 2라운드-LG카드 문제 해결 모색

자금난이 심했던 LG카드는 2003년말 금융대란을 가져올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사진은 2003년말 당시 서울 역삼동 LG카드 본사.<사진=연합뉴스>
금감위는 LG카드의 처리방법을 놓고 고심했다. LG카드가 무너지면 투신환매→채권시장 붕괴→주가급락→보험·저축은행 등 2금융권 부실화→은행 가계대출 부실→신용불량자 급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또 새로 생길 신용불량자 수가 85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고승범 금감위 비은행감독과장(현 금감위 기획행정실장)의 기억이다.

“찬반 양론이 있었다. ‘정부 입장은 개별회사 문제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 왜 개입하느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LG카드사의 고객 가운데 다중 채무자가 많다는 점이었다. LG카드사가 무너지면 신용불량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도미노 현상으로 삼성카드 등 다른 카드사도 무너지게 되는 구조였다. LG카드로 시작해서 전 카드사의 문제, 채권시장 등 전 금융시장의 문제로 번지게 될 것이 뻔했다. 정부는 시스템리스크 발생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정관리냐,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적용이냐

청와대도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정책기획위원장 역임, 현 경북대 교수)의 회고다.

“판단이 쉽지 않았다. LG카드를 청산해서 금융시장이 무너지는 경우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정책은 해보고 안 되면 방향을 수정하는 게 가능하지만 이 문제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안전 위주로 간 게 아닐까 한다.”

시민단체 등은 법정관리나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적용해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감위도 이같은 방안을 고려했으나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윤용로 국장의 말이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적용할 것이냐, 법정관리를 할 것이냐. 열흘 넘게 검토했다. 그러나 LG카드가 금융기관이라 두 가지 방법을 적용하기 힘들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산유동화증권이 총부채 21조원 가운데 8조7000억원을 차지해 기구촉법이나 법정관리가 적용되는 순간부터 조기상환 요청이 들어오게 돼 있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게임이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금감위는 경기가 저점을 통과해서 돌아서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경기가 저점을 통과해 부실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채권자가 만기연장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또 최종부실규모와 자본 확충 규모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 금융 감독 당국도 자신 있게 공식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이동걸 부위원장의 말이다.

“당시 경기는 저점을 완전히 통과해서 회복기에 들어갔다는 자신이 서지 않는 상태였다. 그 시점이 경기 저점이었을텐데, 저점이라는 것은 두세달 지나야 확인가능한 것이 아닌가. 마음을 졸이느라 과감하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문을 닫게 할 각오를 해야 하는데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LG카드를 처리하겠다고 달려들면 그 자체가 경기악화 요인이 돼버리는 것이었다.”

■ 카드대란 2라운드-정부의 선택 : 대화와 설득

LG카드 정상화 노력은 과거와 같은 ‘관치’와는 성격이 달랐다. 과거 정부는 금리결정과 신용배분, 예산, 인사, 조직 등 금융기관의 전반적인 운영을 장악하는 등 금융에 개입했다. 수출금융에 대한 특혜, 저금리 정책에 의한 신용할당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정책금융이 그 예다.

이같은 관치금융은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관치금융은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등 금융의 발전을 저해했고 IMF 외환위기를 불러온 주범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정부는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두려워했다. 이동걸 부위원장의 기억이다.

“예전처럼 ‘관치’였다면 시간 끌지도 않았을 것”

“LG카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모든 채권단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금감위) 공무원이 또 관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을까봐 두려웠다. 결국 채권단을 몇 명씩 만나서 차례차례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정부의 역할은 우선 채권단의 이견을 LG카드 회생 쪽으로 모은 뒤, 채권단과 LG그룹간의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고승범 비은행감독과장의 말이다.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했지만 예전처럼 개입하지는 않았다. 정부가 예전처럼 개입했더라면 몇 달간 시간을 끌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관치금융은 안 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채권단이 모여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만 했다.”

LG카드 문제 협상을 이끈 윤용로 국장도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다.

“관치금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은행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가 선진화됐다. 정부가 은행장 불러다놓고 강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은행장들이 괴로워할 만큼 매일 회의를 여는 것이었다. 매일 회의는 ‘망했을 때 은행은 얼마를 손해보고, 돈을 얼마 대면 얼마를 회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후자가 손해가 덜하다’는 것을 금융권과 협의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근거를 줘야 은행장도 돌아가서 이사회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LG카드가 더 내놔야 한다’…추가 증자 권유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채권단은 괜히 지원 부담 폭만 커지는 것이 아닌지를 우려했다. 채권단은 대주주인 LG그룹의 추가적인 조치가 없으면 지원할 수 없다고 버텼다. LG그룹측은 채권단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며 버텼다. 2003년 11월 17일 LG카드가 채권단에 2조원의 자금을 요청한 이래 일주일이 되도록 양측은 자금지원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이동걸 부위원장의 증언이다.

“LG그룹측에는 ‘LG카드가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데 어차피 채권단의 지원이 필요하다면 LG그룹측도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로 추가 증자를 권했다. 채권단에는 ‘추가 증자만으로 부족하겠지만 성의를 믿고 채권단이 지원하면 어떻겠느냐’고 설득했다. 채권단은 ‘LG카드의 부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불안하다’면서 ‘LG카드가 더 내놔야 한다’고 버텼다.”

그 와중인 11월 21일 LG카드 현금서비스가 오후 2시부터 3시간 30분 동안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튿날에도 오후 3시 30분부터 현금카드 서비스가 멈췄다. 이 부위원장이 협상장에 직접 찾아갔다.

“채권단에게 ‘일단 LG가 1조원을 증자하면 스스로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한 것이니까, 채권단이 믿어주자’고 말했다. 그 대신 LG에게도 ‘추가증자를 하되 은행이 LG를 신뢰해준 대가로 LG카드가 채권단의 지원에도 못살아나면 기존 지분과 1조원 증자를 모두 포기하라’고 했다. 그러자 LG측은 ‘포기할거면 뭐 하러 하느냐’고 했다. 그래서 ‘(LG측 주장대로) LG카드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은 포기 각서를 쓰더라도 포기 안할 자신 있는 것 아니냐, 그걸 못하겠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고 압박했다. 채권단에도 ‘어차피 물렸는데 LG가 추가로 1조원 증자하면 그만큼 손해가 덜 나는 것이므로 무조건 받으시라’고 설득했다. 겨우 타협이 이뤄졌다.”

2003년 12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서 열린 LG카드 사태 관련 채권은행단 회의에 참가한 9개 시중은행 부행장들이 회의 시작전 인사말을 교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1월 23일 밤중의 일이었다. LG측과 채권단은 8개 채권은행이 LG카드에 2조원을 연 7.5% 금리로 지원하고 만기가 돌아오는 모든 채권의 만기를 1년간 연장해주기로 했다. 대신 LG카드 대주주는 LG카드 지분과 구 회장의 (주)LG 지분 5.46%를 담보로 내놓기로 했다.

협상 타결 뒤 채권단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이미 받기로 한 LG측의 증자를 먼저 받아내는 것이 채권단의 급선무였지만 8개 은행은 조금이라도 덜 부담하기 위해 지원배분액을 놓고 이견을 보였다.

그 와중에 LG그룹측의 마음이 바뀌었다. 다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조짐을 보이면서 약속한 추가증자보다 더 많은 부담이 예상되는 가운데 LG그룹은 12월 16일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LG카드 지분 등을 포기하고 금융업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미이행한 8000억원의 유상증자 대신 돈을 건질 수 있는 기업어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카드대란 2라운드-정부의 결심 : 산업은행 활용

LG카드를 떠안게 된 채권단은 LG카드 매각에 나서지만 복병을 만났다. 부실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실사에서 3조 2000억원의 자본잠식이 드러났다. 사겠다고 나선 은행들이 일제히 매수의견을 거둬들였다. 채권단은 공동관리방안을 모색했지만 추가 부담을 꺼리는 일부 채권은행은 청산을 주장했다. 이동걸 부위원장의 말이다.

문을 닫을까요-외국에 팔까요-당신이 살테요

“채권단 몇 명을 만나서 LG카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문을 닫을까요’라고 물으니 ‘파장이 너무 크므로 닫으면 안 된다’고 했다. ‘외국에 팔까요’라고 물으니 ‘회원 수가 많은 LG카드를 팔면 소매금융을 외국계가 다 장악하게 된다’고 불가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당신이 살테요’라고 하니 ‘지금 어려워서 사기 힘들다’고 했다.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채권단이 출자전환해서 가야 한다. 나중에 회생하면 그때 가서 채권단 몫을 되찾으면 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그런데 한 은행장이 금감위가 강압이라도 한 것처럼 난리를 쳤다. 그래서 ‘정 그러시다면 LG카드 닫읍시다. 닫아드릴테니, 얼마나 손해나는지 두고 봅시다’라고 강하게 말한 뒤 사무실로 돌아와버렸다. 그랬더니 그 양반이 실무진을 통해서 ‘도대체 진의가 뭐냐, 진짜 닫으려고 하는 거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합리적으로 채권단에게 출자전환하라고 한 건데 이거 가지고 계속 싸울 거면 정말 문 닫자고 전하라’고 했다. 그 다음부터 빨리 진전이 됐다.”

2003년 11월 23일 밤 우리은행 본점에서 이종휘 우리은행 부행장이 LG카드 채권단회의를 마친 뒤 LG카드에 대한 채권금융기관 지원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채권단은 출자전환은 하겠지만 추가부담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나타나는 부실을 메울 추가지원은 산업은행과 LG그룹이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를 일으킨 LG가 돈을 더 쓰고,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면 정부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2004년 1월 9일까지 LG카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금융권 전체에 후폭풍이 몰아칠 게 뻔한 상황이었다. 과거처럼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도 없었다. 정부는 소극적인 채권단과 눈앞에 보이는 금융위기 사이에서 고민했다. 결국 1월 7일 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단독관리 방안을 받아들였다. 유지창 산업은행 총재는 2004년 10월 14일 국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칼로 딱 잘라서 보니까 익스포저(위험자산 노출)의 10%가 산업은행에 물려있었다. 당시 일정 기준 시점을 정해서 들어가 있는 사람들(채권단)이 같이 분담해서 살려나가자, 분담해서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런데 다른 채권단이 반대하면서 산업은행이 더 많이 부담해달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자꾸 시간은 흐르고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산업은행이 일정부분 더 부담하고 가는 것도 방법이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것을 (산업은행) 의사결정기구에 부의해서 동의를 받아 추진하게 된 것이다.”

■ 카드대란의 결말, 그리고 그 이후

이번엔 LG그룹이 문제였다. LG그룹은 미래의 추가부실을 75% 책임지라는 정부와 채권단의 합의안을 부담스러워한 까닭에 합의에 소극적이었다. 급기야 1월 8일 LG카드 현금서비스 중단사태까지 발생했다. 채권단과 LG그룹은 1월 9일 밤에야 협상안에 합의했다. LG그룹은 LG카드가 부도나는 경우 그룹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수용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채권단은 이미 지원한 2조원 이외에 마지막으로 1조 6500억원을 추가지원한 뒤 출자전환하기로 했다. 대신 향후 추가부실이 발생할 경우 5000억원 한도 내에서 LG그룹이 75%, 산업은행이 25%를 분담하기로 했다. 이후 산업은행이 LG카드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LG카드는 2004년 9월 27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등 경영정상화를 이뤄갔다.



“정부가 관여하지 않으려다 끌려들어간 일종의 사건”

과거 정부가 잉태한 카드문제에 직면한 참여정부는 설득과 협상으로 문제를 풀어냈다. 하지만 산업은행 중심의 해결방안은 ‘관치’라는 비판의 빌미로 남았다. 이에 대해 이헌재 부총리는 2004년 10월 12일 재경부 국감에서 “정부가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끌려들어간 일종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당초 LG카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채권은행들이 모여서 1차적으로 유동성 보완대책을 해주면 된다라고 시작했던 것이 몇달이 지나 당초에 시작했던 때와 달리 시스템 위기 가능성까지로 확대된 상황 하에서 정부가 방치할 수 없는 데까지 갔다. 그래서 도리없이 산업은행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논란에도 산업은행을 지렛대로 삼은 정부의 노력 때문에 신용카드 사태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2004년 6월 7일 제17대 국회 개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1년여 우리 모두에게 정말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전쟁위기설까지 나돌던 북핵문제에다 이라크 전쟁과 사스공포까지 겹쳤습니다. SK글로벌 사태, 카드채 문제로 제2의 경제위기가 온다고 많은 국민들이 가슴을 졸였습니다. 지난 1년 내내 금융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모두가 합심해서 잘 대처해왔고 지금은 작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금융위기나 금융시스템 붕괴를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금융위기나 금융시스템 붕괴 위기는 사라졌지만 카드대란의 여파는 컸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2005년까지 이어졌다. 신용카드를 활용한 무리한 경기부양은 내수침체를 불러왔고, 경제의 양극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 끊임없이 쏟아지는 경제를 살리라는 요구와 ‘진통제’ 투약을 바라는 여론은 정책 결정을 더욱 어렵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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