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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리우의 아름다운 청년들

2016.08.16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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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은 무얼까. 많은 이들이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선수가 보여준 ‘맨발의 투혼’을 기억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온 IMF라는 괴물에 손발 다 들어야 했던 우리 국민에게 큰 위안과 용기를 준 ‘사건’이었다. 갈색으로 그을린 발목과 눈부시게 흰 발의 선명한 대비, 맨발의 해저드샷 하나가 스포츠의 한 장면을 넘어 사회적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 순간이었다. 

리우에서 그런 극적인 순간이 또 나왔다. 9일 펜싱 에페 종목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 만 20세로 국가대표 최연소이자 올림픽 첫 출전. 세계 랭킹 21위. 상대는 세계 랭킹 3위의 헝가리 백전노장. 2라운드가 끝났을 때 스코어는 13대 9. 상대가 두 점만 득점해도 경기는 끝나게 되고 에페 종목은 동시에 공격해도 둘 다 점수로 계산되므로 금메달은 기대난망이었다. 

휴식 시간에 TV카메라가 박상영을 비추지 않았다면 그 장면은 어쩌면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는 앉아서 눈을 부릅뜬 채 고개를 끄덕이고 큰 숨을 내쉬며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굳이 독화술사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그의 단순한 입술 움직임은 확연히 읽어낼 수가 있었다. “할 수 있다. 그래 할 수 있어. 휴우(큰 숨), 할 수 있어.” 이 말의 반복이었다.

자기주문, 자기암시, 자기최면의 힘일까. 그는 3라운드가 시작되자 한 점을 내주어 매치 포인트가 된 상황에서 내리 5점을 따냈다. 47초 동안 신들린 검객이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기뻐하던 그 모습은 먹이를 해치운 수사자의 포효 같았다. 해냈다는 성취감. 자신감의 확인. 중계진마저 패배를 언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은 단 한 사람.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렇게 그는 외국 언론 표현처럼 펜싱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극적인 승부의 주인공이 되었다.

주문을 외는 그의 동영상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뒤덮었다. 2백만 뷰가 넘었다. 여기에 그의 역경과 불굴의 스토리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감동의 파도는 더 높아졌다. 경남 진주의 어려운 가정에서 성장한 촌놈,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기도밖에 없다던 어머니, 십자인대가 파열돼 작년 7개월 동안 목발을 짚으면서도 올림픽의 꿈을 놓지 않았던 20세 청년…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결승 경기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박상영이 시상대에 올라 팔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결승 경기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박상영이 시상대에 올라 팔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검 하나 제대로 살 수 없던 ‘흙수저’가 오직 불굴의 의지와 자신감 하나로 ‘금수저’를 물게 된 실화를 우리는 목격한 것이다. “그래, 난 할 수 있다”는 그의 주문은 수저 탓하며 자조와 실의에 빠져 이 시대를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들이나, 꿈을 가졌지만 당장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를 다시 깨우기에 충분한, 살아있는 교재였다. 패러디들이 쏟아졌다.

18년 만의 박세리 속편이다. 골프채가 검으로, 워터해저드가 피스트로, 연장전이 13대 9로, 양말과 신발을 벗은 행위가 ‘할 수 있다’는 자기주문으로, IMF가 이른바 ‘청년실업문제’로 환치되었을 뿐이다.

청년 박상영이 빛나 보이는 건 그런 스토리텔링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밝고 유쾌했고 무엇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었다. 그가 리우로 떠나기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건 “올림픽=제일 재미있는 놀이”라는 글이다. 그를 처음 펜싱의 길로 인도한 스승에게는 “대진표도 안 좋은데 왜 이렇게 자신 있죠? 저 사고치는 거 아니예요?”라는 장난기 섞인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금메달 소감 역시 “인생 살면서 언제 올림픽에 나오겠냐는 생각에 마음껏 즐기러 왔다”는 말이었다. 아는 것,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는 공자님 말이 헛말이 아님을 스무 살의 청년이 증명했다.

리우의 금메달리스트에겐 공통점이 보였다. 그들은 평소에도 긍정적이고 쾌활했다. 양궁 남자 개인전의 구본찬, 양궁 여자 개인전의 장혜진 선수가 그랬다. ‘까불이’ 구본찬은 우승이 확정되자 관중을 향해 큰절을 했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먼저 하나둘셋 하며 장난치고 인터뷰하다 마이크에 이마를 찧었다. 장혜진은 4년 전 국내 선발전서 4위로 아쉽게 떨어져 런던올림픽에 나가지 못했지만 늘 밝고 유쾌하게 4년을 기다렸다. 맏언니이면서도 늘 분위기메이커였다. 그런 긍정의 힘이 위기의 순간에도 집중력을 흐트러지지 않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베이징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도 긍정적 마인드의 전도사이다.

그들은 금메달을 따고도 울지 않았다. 환하게 웃었다. 관중에게 손키스 세례를 날리고 시상대에선 하트를 그렸다. 세리머니도 유쾌발랄했다. 그들에게 올림픽 헝그리 정신은 과거의 유산일 뿐이다. 그들은 그냥 밝고 아름다운 청년들이다. 그런 긍정의 힘이 누군가에겐 큰 에너지로 전이돼 그의 삶을 바꾸게 할지 모른다. 박세리의 맨발투혼이 세계적인 ‘세리 키즈’들을 낳은 것처럼.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한국 언론과 글쓰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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