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년 전. 경북 경산시 공단대로에 위치한 자동차용 방진 고무부품 제조업체 벽진산업 3300㎡ 규모의 공장 내부는 고무를 태우면서 발생하는 악취와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여름철이면 작업자들은 거대한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이중고를 겪었다. 작업 동선이 복잡한 탓에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도 여러 번에 걸쳐 번거롭게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8월 16일 오후 방문한 벽진산업은 ‘고무를 다루는 공장이 맞나’ 싶을 만큼 쾌적했다. 집진기의 필터가 매캐한 가스를 거르면서 공장의 공기가 깨끗해졌고, 천장에 개별 에어컨이 설치돼 작업자의 작업 여건이 개선됐다. 작업 동선도 깔끔하게 정리됐다. ㄷ자 모양의 작업대를 일직선으로 재배치해 작업자의 이동거리가 1만4483m에서 9501m로 크게 줄었다. 작업 효율성이 향상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공장 한쪽에 들어선 무인자동화기기는 벽진산업이 ‘스마트’하게 거듭났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7월 도입한 쇠와 고무를 접착시키는 외철 로봇자동도포기 덕분에 양품률이 4배나 상승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추가 공정과 불량률이 줄면서 연간 3000만 원의 절감 효과를 거뒀다.
제품 신뢰도 역시 향상됐다. 벽진산업은 현대·기아자동차가 실시한 2차 협력업체 실사평가에서 전국 34곳 중최우수 업체로 선정된 데 이어 쌍용자동차 협력업체로 등록돼 연간 24억 원에 이르는 수주가 발생할 전망이다. 52명의 직원을 거느린 이 회사의 올해 매출은 2015년 146억 원에서 24% 증가한 18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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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진산업 권재득 대표(오른쪽)와 조기원 이사가 스마트 팩토리 지원사업을 통해 도입한 설비 모니터링 관리 시스템을 작동하고 있다. |
스마트 팩토리 지원받은 후 쾌적해진 근무 환경
회사에 대한 애착은 일의 능률 향상으로 연결
무엇이 벽진산업을 1년 만에 이렇게 바꾼 것일까. 1999년 설립된 벽진산업은 연 매출 100억 원이 넘는 알짜 중소기업이지만 남모를 고민을 갖고 있었다. 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회사가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벽진산업을 창업한 권재득 대표의 초조함은 더욱 커졌다.
“총 네 차례에 걸쳐 2억 원의 비용을 들여 사설업체로부터 작업 환경 개선 명목으로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면 효과가 사라지고 ‘말짱 도루묵’이 되더군요. 돈도 돈이지만, 수차례 시행한 컨설팅으로 작업 환경이 점점 엉망이 됐고, 직원들의 피로감도 커졌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가진 문제를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는 피해의식이 형성돼 직원들의 자존감이 낮아졌습니다.”
벽진산업의 고민이 해결된 것은 지난해 7월 삼성이 후원하는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경북혁신센터)로부터 ‘스마트 팩토리 지원사업’ 대상 업체에 선정돼 지원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삼성전자 직원 4명이 벽진산업에 6주간 상주하면서 작업 동선 및 환경 개선, 직원 의식 개혁, 장비 자동화 구축 등을 진행했다. 복잡하게 꼬였던 작업 동선을 바꾸고, 생산 시스템을 전산화하는 등 근무 환경을 효율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경산을 포함한 경북지역의 산업단지는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심지이지만, 시설이 노후화되고 업종이 성장 한계에 부딪히면서 지역경제가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북혁신센터의 스마트 팩토리 지원사업으로 창조경제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 지원사업은 경북혁신센터와 삼성이 협업해 도내 중소 제조업체들의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는 것이 골자다. 사업명에서 알수 있듯 정보통신기술(ICT)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수주에서 제품 공급까지 효율적으로 생산 공정을 관리하는 ‘미래형 공장’을 지향한다. 현재 30명의 삼성 직원이 경북혁신센터에 상주하며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지원한다.
우선 심사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중소·중견기업을 선정한 뒤 삼성의 전문가들이 직접 해당 공장에 상주하며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이를 위해 경북혁신센터는 기업당 소요 비용의 50%를투자하고, 최대 5000만 원까지 무상으로 지원한다.
현장에 적용하는 해결책은 자동화기기의 도입이나 공정 개선방안만 제시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화장실 청소, 공장 내부 정리 등 환경미화부터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도록 돕는 직원 의식 혁신 프로그램까지 병행한다. 경북혁신센터와 삼성은 네 차례에 걸쳐 벽진산업 직원을 대상으로 주인의식을 고취하는 교육을 실시했다. 벽진산업 직원들은 구미에 위치한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해 작업 환경을 탐방했다.
“사실 현장직이란 게 사무직처럼 깨끗할 수는 없습니다. 때론 거칠고 위험하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현장직이 저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삼성 측에서 자신의 작업 환경을 우리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삼성의 작업 환경도 특별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작업자의 태도와 마인드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들의 진심 어린 조언이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회사에 대한 애착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일의 능률이 향상된 것이다. 여기에 직원들 사이에서 ‘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형성되면서 역동적인 조직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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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벽진산업) |
경북혁신센터와 삼성 협력해 스마트 팩토리 진행
생산성 103% 증가, 불량률 65% 감소… 165억 원 비용 절감
벽진산업의 경우처럼 스마트 팩토리 적용 기업들의변화가 감지되면서 사업 또한 탄력을 받고 있다. 경북혁신센터는 지난해 추진 목표(100개 과제)의 37%를 초과한 137개의 과제를 완료했고, 현재 223개의 과제를 실시했다. 만족도도 높다.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기업의 생산성이 103%(127개 과제) 증가했고, 불량률은 65%(119개 과제) 감소했다. 120개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절감한 비용은 연간 165억 원에 이른다.
경북혁신센터는 지역 내 대학과 협약을 맺어 ‘스마트 팩토리 전문가 양성 및 매칭 프로그램’을 진행해 사업 모델을 발전시킬 방침이다. 1000명 규모의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올 3월부터 벽진산업을 비롯해 스마트 팩토리 지원사업에 참여한 7개 기업에서구미대학교 학생 20명이 ‘스마트 팩토리 혁신과정 고용 예약 프로그램’ 교육을 받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 지원사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를 통한 고용 창출 증진과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상생을 이뤄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혁신센터 조호영 창조사업본부 팀장은 “스마트 팩토리 지원사업이 경북 내 중소·중견기업의 제조 환경을 개선하고 직원들의 업무의식을 제고해 인력난 해소에 활력을 주고 있다”며 “기업들의 제조 공정이 스마트하게 바뀜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고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 사업 모델을 창출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평가했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