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콘텐츠 영역

2025 경주 APEC

"경주 구경 마치고 국밥과 회국수를 먹었다"

2025.10.28 박찬일 셰프
글자크기 설정
목록
경북 남부와 경남은 돼지국밥 지역이다. 경주도 그곳에 속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주에서 국밥 한 그릇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고대 도시에서 먹는 가장 근대적인 국밥이라니. 여기에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회국수 같은 음식이 아직도 살아 있다. 경주의 맛을 다르게 즐기는 법
박찬일 셰프
박찬일 셰프

나는 도시를 다니면서 음식을 먹는다. 도시 음식에는 화려함과 서민적 소박함이 같이 있다. 

경주에는 우아하고 좋은 반상이 있는데, 나는 거리 음식, 민중 음식을 많이 찾아다녔다. 국밥이 그것이다. 달리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국밥의 순정이 좋아서였다. 

순정이라니, 묻는 이들에게 딱히 뭐라 답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재료를 우리거나 끓이고, 거기에 밥 한 그릇을 말아내는, 뚝배기나 대접에 턱 하고 담는, 그게 전부인 음식. 달리 꾸미거나 만질 일이 없는 투박함이라고 겨우 설명할 수 있을 '밥'이었다. 

국밥은 문화권이 있다. 서울은 장국밥과 해장국에 설렁탕이고, 충청도는 올갱이국밥이며, 부산은 돼지국밥이다. 

국밥은 사실 기름기 도는 화려한(?) 음식이다. 잘 나가는 도시의 물량과 돈과 에너지를 뒷받침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리지 않으면 국밥도 없다. 그래서 시장터에서 국밥이 성했다. 가장 빠른 패스트푸드였다. 바삐 먹고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 음식이었다. 

부산이 돼지국밥의 성지가 된 것은 임시수도 시절의 번다함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전쟁으로, 도시가 껴안을 수 있는 인구보다 몇 배를 넘겨 피난민을 받아서 꾸려가야 했던 부산의 숙명이 돼지국밥의 현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한 그릇 말아먹고 뚝딱 일해야 겨우 하루를 넘길 수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그 국밥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경북 경주 태종로에 위치한 돼지국밥집 (사진=기고자 제공)
경북 경주 태종로에 위치한 돼지국밥집 (사진=기고자 제공)

부산 돼지국밥을 먹으러 당일치기 고속열차를 자주 탔는데, 이것도 이력이 붙으니 이른바 '외연이 확장'되곤 했다. 부산 말고 다른 도시로 뻗어나갔다. 울산이며 포항이며 밀양이며 대구 같은 도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부산의 유명 돼지국밥은 다른 지역의 이름을 달고 있다. 합천, 밀양, 포항 같은. 돼지국밥의 기원과 발전은 누구도 정설을 내놓을 수 없다. 민중음식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일하는 사람들의 기호로 도도하게 번져나간 것이 돼지국밥이다. 헌데 경주도 돼지국밥이 세다는 건 늦게 알았다. 내 친구가 그쪽 사람이다. 

"경주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타지인이 놀라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해산물이 좋다는 거. 경주를 내륙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 경주는 바다 도시야. 둘째, 돼지국밥은 부산만 알고들 있는데 경주도 한 가락 한다고."

경주는 노포 돼지국밥이 여럿 있다. 역사 있는 음식이다. 세련되고 장엄한 고대 도시의 면모에 돼지국밥 같은 허름한 서민 음식이 묘하게 어울려 있다. 

도시 곳곳에 거대한 고분이 마치 길가의 장식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불쑥 솟아 있는 비현실적 그림에 돼지국밥이 함께 한다. 고대 왕의 거대한 무덤 옆에 도시적 돼지국밥을 먹는 시민이 산다.

곁가지인데, 경주에 가서 들으면 유별난 대목이 있다. 첨성대에 올라가서(!) 놀았다는 노인의 증언이거나, 왕릉의 무덤에서 미끄럼놀이를 했다는 믿어지지 않는 무용담이다. 어찌 보면 유적 유물 관리라는 것도 나라에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국밥집은 반찬이 간결한 게 보통이지만 경주에서는 더러 반찬 많이 깔아주는 집도 볼 수 있다. (사진=기고자 제공)
국밥집은 반찬이 간결한 게 보통이지만 경주에서는 더러 반찬 많이 깔아주는 집도 볼 수 있다. (사진=기고자 제공)

경주는 인심의 도시다. 맛에도 묻어난다. 국밥 한 그릇에도 반찬을 깔아주는 집이 많다. 게다가 성실하게 토렴을 한다. 토렴은 주로 한국에서 성행해온 조리법이다. 고기와 밥을 상온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뜨거운 국물에 여러 번 데워내는 기술이다.

토렴이 발달한 건 이유가 있다. 삶은 고기와 밥을 상온에 두게 되는데,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니 국물에 여러 번 열기를 입혀야 했다. 

한 가지 더. 옛날에는 자기가 먹을 밥을 손님이 들고 오곤 했다. 국밥집이 밥을 모두 지어서 제공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받아든 밥이 식었으니 토렴을 하는 게 필수였다. 

하여튼 경주에 가거든 노포 돼지국밥집은 물론이고 시장과 거리의 돼지국밥집 순례가 이어진다. 한 그릇 시켜놓고 진한 양념의 김치에 막걸리를 먼저 한 잔 마셔야 한다. 

경주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여러 막걸리가 있다. 죄다 맛있으니 비교해가며 마신다. 첫 잔이 비기도 전에 뜨끈한 국밥이 나온다. 극락이란 이런 것이다. 

노포라고 하면 대개 번듯하기보다는 낡은 곳이 많은데 흔히들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한다. 그렇다. 그 아우라는 주인의 고집이고 드나드는 손님의 흔적이며 가게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부심이다. 

이름은 분식이고 국수를 주로 파는 집이 경주에 있다. 현재는 가게 터를 옮겼는데, 왕년에 갔을 때는 거의 쓰려져가는 낮은 지붕의 건물이었다. 그런 모습에 정감을 느끼는 것은 나그네의 과잉 감정이었을까. 

국수를 넉넉히 말아낸다. 가게 이름이 '놋전'이어서 무슨 연유인가 물었더니 과거 그 동네에 유기장인들이 많았다 한다. 금속가공은 경주의 영화를 상징한다. 이 분식집, 아니 국수집은 경주가 바다 도시라는 걸 알려준다. 회국수가 있다. 

바다, 특히 동해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해안의 도시에서는 흔히 비빔국수에 회를 얹어먹곤 했다. 회는 지천이니 말린 국수가 끼니를 담당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먹는 게 일상이었다. 내륙 도시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별난 풍경이리라. 그 비싼 회를 국수에 얹어먹는다니. 

물론 이 가게서 파는 회국수는 그저 비빔국수 값이었다. 이 가게는 허물어지고난 후 다른 곳으로 옮겨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아직도 옛 맛을 간직하고 있는지 가볼 작정이다. 

박찬일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는 담당자와 협의한 후에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책브리핑 공공누리 담당자 안내 닫기

이전다음기사

정책브리핑 게시물 운영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게시물은 삭제 또는 계정이 차단 될 수 있습니다.

  • 1. 타인의 메일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또는 해당 정보를 게재하는 경우
  • 2.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경우
  •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시키는 경우
  • 4. 욕설 및 비속어의 사용 및 특정 인종, 성별, 지역 또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용어를 게시하는 경우
  • 5. 불법복제, 바이러스, 해킹 등을 조장하는 내용인 경우
  • 6.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 또는 특정 개인(단체)의 홍보성 글인 경우
  • 7. 타인의 저작물(기사, 사진 등 링크)을 무단으로 게시하여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글
  • 8. 범죄와 관련있거나 범죄를 유도하는 행위 및 관련 내용을 게시한 경우
  • 9. 공인이나 특정이슈와 관련된 당사자 및 당사자의 주변인, 지인 등을 가장 또는 사칭하여 글을 게시하는 경우
  • 10. 해당 기사나 게시글의 내용과 관련없는 특정 의견, 주장, 정보 등을 게시하는 경우
  • 11. 동일한 제목, 내용의 글 또는 일부분만 변경해서 글을 반복 게재하는 경우
  • 12. 기타 관계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 13. 수사기관 등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는 경우

히단 배너 영역

정책 NOW, MY 맞춤뉴스

정책 NOW

123대 국정과제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MY 맞춤뉴스 AI 추천

My 맞춤뉴스 더보기

인기, 최신, 오늘의 영상 , 오늘의 사진

오늘의 멀티미디어

정책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