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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어떤 나라인가?

200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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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건국과 성장

고구려는 아시아 동부 지역에서 넓은 영역을 차지하며 화려한 역사를 꽃피웠던 고대 제국(帝國)이다.

BC 37년에 건국되어 AD 668년 멸망할 때까지 705년간 고구려가 이룬 역사적 성취는 후손들에게 커다란 자랑이 되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도 처음에는 압록강 유역의 졸본 지역에서 아주 미약하게 출발하였다.

고구려를 건국한 사람은 부여국 출신의 추모왕(고주몽)이다. 그가 부여를 탈출해 처음 고구려를 건국할 때에는 궁궐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였고, 식량 생산도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주변에는 비류국, 선비, 부여, 한 같은 강국들이 많이 있었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남에게 굴복하여 제후국으로 살아야 할 상황이었다. 고구려는 강한 리더쉽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소국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가는 팽창정책을 펼쳐갔다. 주변의 비류국, 옥저, 행인국, 양맥 같은 작은 나라를 정복한 고구려는 AD 1세기 초에는 부여국마저 압도하는 나라로 성장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앞서 있었던 고조선과 부여의 문화적 토대와 외래의 여러 문화적 요소를 흡수하여 1세기 중반 태조대왕 시대에는 체계적인 지배체제를 갖춘 안정적 국가로 자리 잡았다. 태조대왕은 후한의 동방군현인 낙랑, 현도, 요동군을 공격하여 이들을 서쪽으로 쫓아내며 요동과 한반도 북부의 평야 지대로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246년 고구려는 서쪽에서 쳐들어오는 위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수도가 일시 함락되는 등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고구려는 곧 국력을 회복하여, 위나라의 거듭된 공격을 격퇴했다. 또 북쪽의 부여와 숙신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4세기 초 미천왕이 낙랑, 대방군을 소멸시켜버리는 등 고구려는 꾸준하게 성장을 해갔다. 그러나 342년 모용선비족의 침략을 받아 다시 한번 수도가 함락되고, 371년에는 남쪽으로부터 백제의 공격을 받아 고국원왕이 죽는 등 고구려의 발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 대제국을 건설한 고구려

고국원왕의 뒤를 이은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은 고구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부 제도부터 고쳐가기 시작했다. 율령을 제정하여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고, 불교를 도입하여 사상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태학을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주력하는 등 두 왕을 거치면서 고구려는 단단한 국력을 다질 수 있었다.

100년전 한 조선인이 만주 지안(集安)시 광개토대왕비 옆에서 찍은 사진. 광개토대왕은 활발한 정복활동을 통해 고구려를 크게 바꿔 놓았다.
391년 등장한 광개토태왕은 고구려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그는 축적된 고구려의 힘을 바탕으로 활발한 정복활동을 펼쳐 남쪽으로 한반도 남부의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고, 백제와 가야, 왜를 굴복시켜 조공을 받았다. 북쪽으로는 숙신과 동부여를 속국으로 굴복시켰으며, 서쪽으로 현재의 서요하 중상류에 있는 거란족을 정벌하였으며, 모용선비족이 세운 후연을 멸망에 이르게 했다.

그의 아들 장수왕 시대에는 북으로 더욱 세력을 넓혀 대흥안령에 위치한 지두우를 유목제국인 유연과 함께 분할하여 차지하기도 했으며, 남쪽으로는 경기만에서 경상북도 영일만에 이르는 지역을 직접 지배하기도 했다. 고구려의 영토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넓어져 북쪽 영역은 대체로 동류송화강, 서쪽은 요하를 넘어 의무려산, 동쪽은 연해주 남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이 영역을 넘어 유목민 부족 등에 대한 간접지배 방식을 고려한다면, 고구려의 세력권은 대체로 현재의 만주 전역과 연해주 일대, 한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국을 건설하였다. 거대한 세력권 안에는 거란, 말갈, 지두우, 신라, 예 등이 속국과 속민의 형태로 속해 있었다. 이 무렵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하의 질서의 수호자, 천하에서 가장 신성한 나라로 자부하는 제국이었다.

5-6세기 고구려는 유목제국인 유연, 황하 유역에 선비족이 세운 북위, 양자강 유역에 한족이 세운 송나라 등과 함께 동아시아 4대 강국의 하나가 되었다. 고구려는 항상 전란이 끊이질 않았던 북위나 송 등과 달리 상대적 평화를 누리면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백제와 신라, 왜 등은 고구려의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6세기 초 북중국의 지배자 북위는 고구려를 일컬어 커다란 술항아리라고 일컫고, 그 안에 작은 술독이 빈 것은 고구려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고구려가 만리장성 동쪽에서 하나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을 주변국에서도 서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고구려와 수, 당의 전쟁

고구려의 전성기에도 한 차례 위기가 닥친 바가 있다. 540년대 왕위계승권을 놓고 귀족간의 다툼이 한 차례 벌어진 이후, 55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유목제국인 돌궐이 공격해오고, 이 틈을 타서 백제와 신라 양국이 남쪽에서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신라에게 한반도 중부지방을 내주고, 돌궐과의 전쟁에 전념하여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더 큰 위기는 6세기 후반에 찾아왔다. 동아시아 4강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강자가 수나라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수나라는 황하와 양자강 일대에서 서로 자웅을 겨루던 나라들을 통일하고, 초원을 지배하던 돌궐마저 굴복시켜 버렸다. 결국 고구려는 팽창주의 정책을 고수하던 수나라와 격돌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무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내적 단결을 꾀하며 전쟁에 대비했다. 612년 고구려는 수백만 대군을 동원해 공격해온 수나라 군대를 맞이하여 살수 전투에서 적의 별동대 30만 5천명을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는 등, 4차례에 걸친 수나라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었다. 결국 수나라를 패전의 후유증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다.

30여 년이 지난 뒤 고구려는 수를 계승한 당나라와 또 다시 전쟁을 해야 했다. 645년 고구려는 서부 변방의 군사요지인 신성과 건안성, 안시성과 주필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중국 최고의 제왕으로 칭송 받는 당태종이 이끄는 수십만에 달하는 당군을 격파했다. 당나라는 661년에도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공격해왔으나, 다음해 2월 고구려군은 당의 주력군을 모두 궤멸시키는 등 당의 침략야욕을 분쇄하였다.

• 고구려 멸망과 계승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강대국도 결국에는 멸망한다. 이 점에서 고구려도 예외는 아니었다. 642년 권력을 쟁취한 연개소문은 645년과 662년 당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구려의 명장이었지만, 그는 독재정치라는 폐해를 남겼다. 그의 독재정치로 인해 고구려는 인재 등용의 폭이 좁아들고, 새로운 정세 변화에 둔감해져갔다.

게다가 그가 죽자 후계자 자리를 두고 그의 첫째 아들 남생과 둘째, 셋째인 남건, 남생 형제간의 내분마저 일어났다. 이 싸움에서 패한 남생은 고구려를 배신하여 적국인 당나라에 투항하여 고구려의 고급정보를 제공했다. 거듭된 당과의 전쟁으로 국내 생산기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독재 정권으로 인한 폐해와 지도층의 분열과 배신마저 생긴 것이다. 결국 고구려는 668년 당과 신라 연합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멸망하였다.

고구려의 멸망의 여파는 매우 컸다. 동아시아의 다원 문명의 한 축을 이루던 고구려가 사라짐에 따라, 동아시아에는 당나라 중심의 단일 문명권이 형성되었고, 그것은 이후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로 굳어졌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도 고구려인들은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결국 고구려 후예인 대조영이 698년 발해를 건국함으로써 고구려를 이었다. 발해(698-926)는 외국에 보낸 국서에서 고려(고구려)왕이라고 표시하는 등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자랑으로 여겼다. 발해에 뒤이은 고려(918-1392) 또한 고구려의 국호를 그대로 이어 ‘고려’라고 했다(고구려 후반기에는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다.

집필: 서길수(고구려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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