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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에 집값까지…“8학군이 뭐길래”

[실록 교육정책사 2부 ④] 교육특구 8학군 신드롬

“돈 없으면 강남 못가”…학군조정 대통령도 못해?

2007.10.22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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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고교평준화정책은 그동안 중등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경감, 교육형평성 확대 등의 성과를 올리며 꾸준히 진화·발전해왔다. 지난 1974년 도입돼 올해로 34년째를 맞고 있는 평준화정책은 그러나 최근 시대변화에 따른 각종 교육수요의 등장으로 정책의 공과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평준화 논쟁은 종종 현재의 교육체제를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으로 제기되곤 했지만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지난 평준화정책의 역사를 차분히 성찰하면서 대안과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진지한 접근은 드물었다.

국정브리핑이 기획한 <실록 교육정책사>는 1부 대학입시정책에 이어 2부에서 고교평준화정책이 진화·발전해온 역사, 이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보완책 등에 대해 4회에 걸쳐 살펴본다.

<1부> 대학입시정책
①인재 패러다임 바꿔야 나라가 산다
-(상) “문제는 서울대 정점 대학서열 구조다”
-(하) “서울대 ‘흉내’로는 대학서열 꿈쩍 않는다”
②문민정부~참여정부까지 대입제도의 진화
③‘3불 정책’, 대학자율 속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
④수능, 과연 필요한가 - 국가고사 변천의 역사
⑤다시 개천에서 용나는 사회를 향해
⑥‘뽑는 경쟁’에서 ‘가르치는 경쟁’으로 대학개혁

<2부> 고교평준화정책
①평준화정책의 탄생과 논란
②자립형 사립고, 평준화 보완인가 해체인가
③외국어고, 입시교육의 사생아
④교육특구 8학군 신드롬

“이러한 (지역간 교육) 격차는 지역주민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의 학생 유입을 가져와 부동산 가격 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부모가 선호하는 지역으로 주거를 옮기게 돼, 이로 인해 소위 ‘교육특구’라는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이 오르게 된다.”

이는 건국대 대학원의 부동산학 박사논문 ‘교육환경이 주택가격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실증분석’(진영남, 2006년)이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이다. 지역간 교육격차가 교육의 양극화를 부르고, 이 격차가 결국 학력 세습은 물론 부의 대물림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간 교육격차는 교육 기회와 교육 과정에서 불평등 현상을 야기한다. 이에 따라 교육의 결과인 학력 등에서도 불평등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다른 지역의 아파트 가격과의 차별화를 바탕으로 강남지역이 ‘빗장도시화’돼 지역간 위화감이 조성되고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강남 8학군은 ‘빗장도시’의 상징

사실 서울 강남 8학군은 ‘빗장도시’의 상징이다. 8학군은 교육 특구, 부동산 값 상승의 진원지, 학력 세습 등의 이미지를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선후는 불분명하지만 8학군과 강남 아파트값은 강남 성채(城砦) 탄생의 주역들이었다.

강남 성채가 교육과 부동산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교육 문제가 교육 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8학군은 이런 배경 때문에 우리 사회의 취약점을 선명히 드러내 보인다. 신분상승의 거의 유일한 통로인 교육에서조차 거주 지역과 빈부의 차이에 따라 통로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후천적 노력보다 경제적·지역적 격차에 따라 학업성취가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 묘안이 따로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학군제는 이런 교육 불평등을 희미하게나마 완화할 수 있는 교육정책이다.

8학군이 학력세습, 부동산값 폭등 등 온갖 사회문제의 진원지로 떠오르면서 학군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사진은 2006년 6월 '서울시 후기일반계고 학교선택권 확대방안 공청회'에서 학군조정추진위 회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참석한 모습.


“부동산 잡기 위해 학군 조정하자”

2005년 8월 2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대기업 경영자 출신인 이계안 의원(열린우리당)이 질의했다.

“폭등하는 부동산 문제는 교육 문제와 직결돼 있다. 광역 학군제를 도입하거나 주소지를 초월한 학군제를 도입하는 등 교육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부동산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는 강남에 광역학군제를 도입할 의사가 없느냐.”

부동산 상승의 원인으로 강남 8학군을 지목하고 학군 조정을 통해 이 문제를 풀라는 주문이었다. 경제 부처 출신인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이전 교육 수장들과 달리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학군 조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학군 조정 문제는 시도교육청의 소관이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며 서울시교육감, 교육위원회와 협의해 보겠다.”

교육 넘어 사회 전체 욕망과 선망, 질투와 시기의 압축 상징

물론 이때만이 아니었다. 학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교육 논리보다는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공론화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교육 수장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서울시 학군 조정 문제가 1998년 손질된 이래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언론들은 스트레이트 기사와 해설은 물론 사설까지 쓰면서 대서특필했다. “실효성 없고 교육적이지도 않은 학군광역화”(경향신문) “서울 학군 광역화 시도할 만하다”(서울신문) “‘서울 학군 광역화’ 충분한 논의부터”(세계일보) “학군 조정, 신중히 접근해야”(한국일보).

서울의 1개 학군 조정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8학군은 이렇게 교육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욕망과 선망, 질투와 시기가 압축된 뜨거운 상징이었다.

“초창기엔 어쩔 수 없이 가는 학교”

학군은 평준화 정책의 산물이다. 평준화가 도입된 1974년 서울의 학군은 6개였다. 서울시청 중심 반경 4km 이내 지역의 공동 학군 1곳과 나머지 지역의 일반 학군 5곳으로 이뤄졌다. 당시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 87개교 가운데 53%인 46개교가 공동학군에 속했다.

8학군 신화는 1970년대 강남개발을 위해 강북의 명문고를 강남지역으로 옮기면서 시작됐다. 전통의 명문 경기고의 강남 이전을 알리는 1972년 2월 29일자 조선일보
초창기 강남 지역 학군은 ‘찬밥’ 취급을 받았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일단 공동학군에 지망했다가 못 들면 일반학군 학교로 배정되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당시 공동 학군엔 경복고·중앙고 등 강북 중심지의 전통 명문고들이 들어 있었다. 강남의 고교는 신입생 정원을 채우는 일도 버거웠다.

상황은 곧 역전되기 시작했다. ‘강북인구 억제정책’ 등을 바탕으로 강남 학군이 ‘뜨기’ 시작했다.

유신정권은 강남 개발을 밀어붙이면서 1976년 경기고를 강남 삼성동으로 옮겼다. 이어 휘문고, 서울고, 숙명여고, 경기여고 등이 차례로 강남에 둥지를 틀었다. 강남 학군의 인기몰이는 그 출발선에서부터 교육 외적인 요인이 컸다.

신군부 “학교는 거주지 기준으로 강제 배정”

1980년 2월 18일, 서울시교육청이 공동학군을 폐지하고 완전학군제를 도입하면서부터 8학군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완전학군제는 고교 신입생을 근거리 원칙에 따라 거주지별로 배정하는 제도였다. 학생들이 가급적 걸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위해 서울시 전역을 9개 학군으로 나눴다.

완전학군제는 서울시 고교 학군제도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조치였다. 그 전까지는 출신 중학교 학군 내의 고교를 배정했다. 이에 따라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고교를 두고도 먼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교육 특구 8학군의 등장

완전학군제 도입을 계기로 강남 학생들만 강남의 고교로 입학하게 됐다. 8학군의 ‘화려한’ 등장을 알렸다.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의 우열을 가르는 대표적 잣대인 서울대 합격자 숫자를 보자.

고교 평준화 세대가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1977년, 강남·서초 지역에서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낸 학교는 영동고로서 모두 17명이었다. 이어 오산고(11명), 한양여고(10명), 한영고(6명), 무학여고(5명) 순이었다. 재수생을 뺀 고등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할 경우 영동고는 서울시에서는 28번째, 전국에서는 41번째로 많이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고등학교였다.

완전학군제가 도입되자 ‘상전벽해’가 됐다. 완전학군제 도입 이후 고교 입학생들이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1984년, 서울대는 8학군의 독무대였다.

영동·경기·상문고…서울대 8학군 독무대

영동고 78명, 경기고 74명, 상문고 58명, 서울고 54명, 휘문고 37명, 세화여고 31명, 경문고 30명, 서문여고 27명, 정신여고 25명, 진선여고 25명, 영동여고 24명, 숙명여고 20명 등이었다. 서울대 배출 순위로 영동고와 경기고, 상문고 등 3개 학교가 전국 10위에 들었다. 다른 학교들도 모두 전국 100위권에 속했다.

8학군 돌풍은 예견된 일이었다. 강남의 고교에 입학하기 위해 위장전입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1981년 10월 30일자 중앙일보 기사다.

“서울 강남의 대치동·삼성동·서초동·청담동 등 명문고들이 몰려 있는 지역은 허위세입자가 많아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교배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먼 곳의 학교로 배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허위전입이 부쩍 늘자 서울 대치동 한 아파트 주민들은 며칠 전 반상회에서 ‘친척·친지들의 허위전입 부탁을 받지 말자’는 색다른 건의를 하고 관할 동사무소에 허위 전입자를 철저히 가려내줄 것을 요청했다.”



투기용 위장전입이 고교진학용으로…사회문제 야기

중산층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 갔다. 위장전입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전까지 위장전입이란 분양 아파트 당첨을 위한 투기용이었으나 바야흐로 고교 진학 용도가 보태졌다.

근거리 배정원칙의 평준화 정책이 자리잡으면서 명문고 주변으로 위장전입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를 보도한 1981년 10월 30일자 중앙일보
제5공화국 정부가 나섰다. 1982년 경찰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위장전입자와 관련자들을 엄중히 문책하고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경우 배정 전에는 정학 등의 징계 처분을 받고, 배정 후라면 배정을 취소하기로 했다. 위장 전입 학부모들은 그 명단이 직장에 통보된다고 밝혔다. ‘엄벌 문책’이라는 용어가 난무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명문대 진학 열기를 누그러뜨릴 수는 없었다.

8학군 내 학부모들은 “위장 전입 때문에 오히려 강남 지역 학생 7000명 정도가 8학군 대신 강북 지역 학군에 배정됐다”면서 정부에 거세게 항의했다.

1982년 사회정화위원회와 경찰 등 관계기관이 8학군 지역의 중학교 3학년생을 둔 가정을 조사했다. 3965명의 조사 대상자 중 1653명(42%)이 위장전입자였다. 1983년에는 경기고·서울고 등 10개교 주변의 47개동을 단속, 3212명의 조사 대상자 중 238명을 적발했다.

“배정하고 나면 서울시교육청 불바다”

강남 이주 행렬이 이어지면서 8학군 학생들이 다른 학군의 고교로 배정되기 일쑤였다. 1993년 서울시내에서 타학군으로 배정된 학생들 가운데 8학군 학생이 40.2%를 차지할 정도였다. 1990년대 초 서울시 교육청에 근무했던 이수일 전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의 회고다.

“1983년 8학군 신드롬이 본격적으로 생겼다. 위장 전입자가 늘어나면서 거주 기간을 기준으로 8학군 방배동 학생을 강북의 용산고로 배정한 일이 있었다. 이때부터 난리가 시작됐다. 학부모들이 연일 시위를 하는데 교육청 업무가 마비되는 수준을 넘어 ‘불바다’가 되다시피 했다.”

강남 학생들에 대한 타학군 배정으로 장거리 통학에 지친 강남 학생들이 양산됐다.


원거리 통학 문제가 불거지자 서울시교육청은 1986년부터 완전학군제에 또 다른 조건을 추가했다. 학생 배정에 거주지뿐만 아니라 전입학생의 거주기간을 반영키로 했다. 8학군 장기 거주자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전입 가정을 줄인다는 취지였다.

“40개월 이상 살아야…8학군 때문에 강남 거주”

거주 기간을 고려한 완전학군제가 도입됐다. 1986년 8학군에 배정받으려면 1년 이상 강남에 살아야 했다. 그해 거주 기간 1년 미만이었던 527명의 학생들이 강북 학군으로 배정됐다.

이후부터 8학군 지역에 배정받기 위한 거주 기간이 늘어났다. 거주 기간 조건이 가장 길었던 때는 1993년이었다. 그해엔 40개월 이상 강남에 산 학생만 8학군에 배정됐다. 이 기간을 채우지 못한 학생들은 강을 넘어 강북 학교를 다녔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희생된 여고생 8명은 강남 압구정동에 살면서 강북인 왕십리 무학여고를 다니던 학생들이었다. 동일 학군에 배정됐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참변이었다.

8학군을 향한 꿈은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8학군으로의 교육 전입 수요가 강남지역 아파트값마저 자극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연초엔 강남 진입과 결부된 방학특수를 맞아 아파트 값과 전세 값이 크게 올랐다. 1989년 강남주택사업협회가 압구정동 6개 아파트단지 955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39.9%가 강남에 사는 이유로 “학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돈 없으면 강남 못가”…미봉책 그친 8학군 처방책

교육과 부동산이 결합하면서 “돈 없으면 강남 못 가고” “강남 가면 명문대 간다”라는 말이 떠돌았다. 비평준화 시절의 명문고가 평준화 시절의 8학군으로 모습을 바꾼 셈이었다. 명문고의 기준이 학교에서 지역으로 바뀐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강남 소재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배정 통지서를 나눠주던 날, 8학군 배정에 탈락한 중학생들은 인생에 실패한 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8학군으로 인한 폐해가 불거질 때마다 교육정책 담당자들은 학군 개편을 거론했다. 그러나 논의만 무성했을 뿐 실행에 옮겨진 것은 드물었다.

8학군병이 사회문제화되자 1983년 9월 당시 구본석 서울시교육감이 처음으로 학군조정 문제를 제기했다. 이를 보도한 1983년 9월 8일자 중앙일보
학군 개편설이 처음으로 불거진 것은 1983년 9월. 구본석 서울시교육감은 8학군의 전·입학 적체현상을 이유로 들어 “1985년부터 학군을 크게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하철 3~4호선 개통으로 통학 여건이 양호해지면 학군을 추가해 8학군을 나눠놓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문교부에서 ‘선지원-후선발’ 등 고입제도 자체를 바꾸는 문제를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학군개편 연구를 ‘없던 일’로 했다.

문교부는 나중에 ‘선지원-후선발’ 입학 전형 방식을 도입하지 않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학군개편의 동력을 상실한 후였다.

“8학군 선지원 후시험 선발·강북 명문학교 육성” 공수표

6공화국에서도 8학군 조정 문제가 불거졌다. 교육 문제가 아닌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거론됐다. 1989년 2월 정부의 부동산실무대책위원회를 주재한 이형구 경제기획원 차관이 정부의 의지를 표명했다.

1989년 초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선지원-후시험제 도입을 시사했다. 이를 보도한 1989년 2월 4일자 경향신문
“서울 강남 지역의 8학군이 인기가 높아 이곳 아파트가 투기대상이 되고 있다. 8학군 학교의 일부 학생을 지역에 관계없이 선지원 후시험 방식으로 뽑거나 서울 강북 지역 학교를 명문 학교로 중점 육성할 계획이다.”

두 달 뒤 정원식 문교부 장관이 힘을 실었다. “학군 문제는 투기뿐 아니라 교육 차원에서도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서울 강남의 8학군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에 조정이 불가피하다. 평준화정책은 유지하면서 학군의 광역화와 수험생의 학교선택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마련해 다음해부터 시행하겠다.”

서울시교육청도 정부 방침에 호응했다. 서울 전역의 단일학군제, 4~5개의 광역학군제, 혼합학군제(1지망은 학군과 관계없이 지원하고, 2지망부터 소속 학군 학교에 지원하는 방식)를 다 연구했다. 당시 여건에서 학군 조정이 가능한 방안을 다 찾아본 것이었다.

그러나 학군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해 8월 서울시교위는 “서울시 고교의 학군조정방안은 문교부가 내신제의 등급간 격차를 높이는 방향으로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해 시행하겠다는 계획에 맞춰 제시될 것”이라며 학군조정방안을 보류했다.

학군조정, 대통령도 포기하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까지 나섰다. 1990년 2월 노 대통령은 학군 문제 개선을 들고 나왔다. “서울의 8학군은 이상과열로 아파트가격을 자극하고 사회적 위화감을 초래했다. 새로운 방안이 내년부터 실시될 수 있게 하라.”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한 문교부와 서울시교위가 이번에도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또 포기하고 말았다. 정원식 장관의 회고다.

“8학군을 허문다는 조건 하에 서울 시내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모의 배정해 보았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8학군의 한 학교는 1지망자가 정원의 14배를 넘었다. 또 그 여파로 학생들의 예상 통학거리가 2배 이상 늘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강남-상도동 불만의 연쇄반응…모든 이해당사자가 자기 주장

평준화를 유지하면서 8학군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정 장관은 8학군 개편 대신 서울 시내 모든 학군을 8학군 수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강북지역에 제 2과학고 등을 세워 비(非) 8학군의 수준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다. 다시 이수일 전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의 증언이다.

“경제 부처에서는 서울시교육청 때문에 못 살겠다고 했다. 8학군이 정책 수행의 걸림돌이어서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경기고 주변이 부동산 앙등의 진원지여서 이곳부터 집값이 올라가 강남을 거쳐 서울 전체로 번진다는 것이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도 연두회견에서 관심을 보이고 해결하라고 했지만 방안이 없었다. 8학군의 학생이 넘치면 처음엔 상도동으로 보냈는데, 그 때문에 상도동 학생은 용산으로 가는 연쇄효과가 발생했다. 8학군 학생의 불만이 가장 컸겠지만, 상도동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역 구민들은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시위를 했고, 의원들은 서울시 교육청 배정담당 장학사를 불러 ‘목을 자르겠다’고 했다. 이 와중에 ‘우리 학교도 8학군에 넣어 달라’든가 ‘우리 학교는 8학군에 빼지 말라’는 등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자기주장을 내세웠다.”

도입 16년 만에 일부 학군 조정

1996년 문민정부는 1980년 폐지했던 공동학군제를 일부 부활시켰다. 당초 정부는 서울시의 모든 지역에서 학군 내 '선복수지원-후추첨' 방식을 도입하려 했다.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가능하게 하고 학교들의 경쟁을 이끌어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목표에서였다. 그러나 실행 주체인 서울시교육청이 전면 실시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절충점이 모색됐다. 도심 지역의 공동학군제를 1980년 이전보다 크게 넓혀 실시하기로 했다.

선복수지원-후추첨 방식 제안은 당시의 ‘도심 공동화’를 막기 위한 고민도 담겨 있었다. 도심에 학교는 많은데 거주자가 많지 않아 다른 지역 학생들을 도심의 고교로 배정한 것이었다. 새로운 방식의 도입으로 먼 거리 통학생이 증가해 평준화정책의 측면에서 보자면 근거리 배정 원칙에 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건국대 부동산학 박사논문 ‘교육환경이 주택가격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실증분석’은 “공동학군의 확대는 강북지역에서도 지역간 주거 및 생활격차, 교육환경 격차가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 곳곳에 목동·중계동 등 ‘유사 8학군’들이 탄생해 강북 안에서도 지역 격차가 현저해진 것을 주목했다. 정부는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학군제는 이들 지역으로의 전입 수요가 증가해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을 막기 위한 다목적 포석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이어 1999년 국민의정부는 8학군에서 송파구와 강동구를 떼어내, 서울시의 학군을 11개 학군으로 개편했다. 학군 경계와 행정구가 불일치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과외금지 위헌 결정, 그리고 사교육 특구의 등장

다소 잠잠했던 학군 조정 문제는 2000년 들어 재등장했다. 2000년 4월 헌법재판소가 ‘과외금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사교육 시장이 급팽창하면서부터였다. 이번에도 부동산 값 폭등과 교육이 결부됐다.

2000년 4월 헌재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 이후 입시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사교육 1번지'이자 '집값 폭등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사진은 대치동 대로변 건물에 입주한 학원들.
8학군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학원가인 대치동 일대가 문제였다. 이 지역은 ‘사교육 특구’와 ‘사교육 1번지’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2001년 11월 3억8000만원이었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은 ‘어려운 수능’ 한 달 뒤인 12월 4억2500만으로 뛰었다. 한 달 사이에 12%(4500만원)나 올랐다.

실제 2003년 주거환경연구원이 강남지역 4개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거주 5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강남에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교육 때문”(29.2%)이었다. “재산증식 효과 때문”은 ‘뜻밖에도’ 2.0%에 불과했다. 특히 중고생 자녀를 둔 가구는 56.5%가 “교육 때문”에 강남에 살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이경숙 의원(열린우리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4월 1일 기준 서울시내 5911개 입시·보습 학원 중 강남구 676개(11.4%)를 비롯해 상위 6개 자치구에 전체의 46.7%인 2758개 학원이 몰려 있었다. 송파구 502개(8.5%), 양천구 495개(8.4%), 노원구 391개(6.6%), 강동구 376개(6.4%), 서초구 318개(5.4%) 순이었다.

특히 대치동 학원가의 사교육 열풍은 특목고와 명문대 입학뿐 아니라 특성화중학교인 경기 가평 청심국제중학교 입학을 원하는 초등학생 저학년까지 삼켜버렸다. 일년 내내 국제중 입학을 위한 학부모 설명회가 끊이지 않는다. 2006년 전교조 서울지부의 주장이다.

“청심국제중학교는 3년간 공식적인 학비만 3000만원에 이르며 여기에 잡비, 사교육비까지 합치면 대학교의 등록금은 비교 대상도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의무교육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이런 천문학적인 학비에도 불구하고 국제중학교 입시설명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입학경쟁률은 21대 1에 이르니 이 또한 대학입시 뺨치는 천문학적 경쟁률이다. 한편 이 학교 입학생 중 21명이 강남의 특정학원 출신의 동창생이며, 지역적으로도 30%의 학생이 서울 강남 출신이다. 이는 국제중학교가 부유층을 위한 특권학교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으며, 초등학생들까지 반교육적이고 반인간적인 입시지옥의 경쟁교육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8학군은 명문고 밀집지역일뿐더러 최고급 사교육 타운으로 자리매김됐다.

학군과 아파트값…경제부처와 교육부의 이견

경제부처는 학군과 아파트 값 상승의 관련성을 염두에 둔 채 오랜 세월 동안 직·간접적으로 학군조정 가능성을 교육당국에 타진했다. 교육 문제를 부동산문제 해결방안의 하나로 거론하는 것에 대해 교육부는 곤혹스러워했다.

참여정부의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집값과 교육 문제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부동산 관계자들로부터 “현실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지적을 받기까지 했다.

이에 비해 경제 관료 출신인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2005년 8월 김 부총리가 학군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때만 해도 강남 8학군을 근본적으로 손대는 일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역대 정부의 실패 사례 때문이었다.

참여정부 들어 부동산문제 해결을 위한 학군조정에 대해 윤덕홍 교육부총리(오른쪽)는 부정적인 반면 경제관료 출신인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적극적이었다. 사진은 2003년 10월 국무회의 간담회에서 부동산대책을 논의하는 당시 윤덕홍 교육부총리와 김진표 경제부총리 모습.

공정택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이 본격적으로 나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변했다. 공 교육감은 “선복수 지원 대상 학교 수를 늘려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해 주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밝혔다.

공 교육감은 2005년 11월 박부권 동국대 교수팀(교육학)에게 연구용역을 맡겼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바탕으로 2006년 12월 7일 ‘학교선택권 확대방안’(일명 ‘고교선택제’)을 발표했다. 8학군이 정식 명칭으로 등장한 지 한 세대만에 8학군 지역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된 셈이었다. 또 1983년 이래 번번이 무산됐던 8학군 조정 문제가 4반세기만에 이뤄진 것이기도 했다.

서울시 교육청, 고교선택제 도입키로

서울시교육청의 고교선택제 방안은 2010년부터 11개 학군별 배정 방식을 폐지하고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길을 넓히는 데 초점을 뒀다. 고교 지원자들은 모두 3단계의 지원 절차를 거치게 된다.

1단계(단일학교군)에서는 서울시내 전체 일반계고교(현재 204곳) 중 2곳을 선택해 지원한다. 2단계(거주지학교군)에서는 거주지 학군 내 고교 중 2곳을 골라 지원한다. 1단계에서 고교 입학정원의 20~30%가, 2단계에서는 30~40%가 추첨 배정된다. 두 단계에서 학교를 배정받지 못한 나머지 학생은 3단계(통합학교군)에서 거주지와 교통편의, 종교 등을 고려해 배정받는다.


특이한 점은 1단계 지원을 통해 한 학교에 다양한 계층과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이게 했다는 것이다. 박부권 동국대 교수는 “한 학교에 모이는 학생들의 성향과 배경이 다양해지면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사회 통합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방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오히려 일부 고등학교였다. 지원 학생이 드문 ‘기피 학교’들이 사실상 도태될 수 있다는 걱정에서였다. 이는 학생들의 학교선택 권한이 늘어날 가능성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굳이 강남으로 학교 옮길 필요 있나요”

여론도 호의적이었다. 광역학군제와 고교선택제 도입으로 강북에서도 강남권 고교에 진학할 수 있어 학군 프리미엄이 줄어든 때문이다. 다음은 각각 2007년 8월 20일자 국민일보와 9월 28일자 동아일보 기사(일부)다.

“단일학군제 도입 추진 등으로 서울 강남 등 소위 ‘우수 학군’의 집값이 크게 떨어졌으며, 올 들어 이들 지역에는 예전에 볼 수 없던 방학 전세 특수가 사라지고 매매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2010학년도 고교 신입생부터 서울지역에 적용되는 고교선택제(광역학군제)가 강남과 목동 등 이른바 ‘학군 프리미엄’ 수혜 지역의 집값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들 지역은 매년 이맘때면 매매가와 전세금이 동반 상승했지만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각종 부동산 대책 등 다른 변수와 함께 학군 수요 감소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보고 있다.”

방학철마다 학군 이사수요가 몰렸던 강남, 목동 등의 집값이 2010년 고교선택제 시행을 앞두고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보도한 2007년 9월 28일자 동아일보.

8학군 신드롬, 사라질까

과연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서의 8학군은 사라질까.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등의 지역격차로 인해 아이들의 성적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앞으로도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김미숙 한국교육개발원 입시제도연구실장의 말이다.

“학군광역화가 8학군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 자신의 실력 이외의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기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고교선택제 도입으로 정부는 일단 ‘발등의 불’을 끈 것으로 보인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이를 두고 “서울 교육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자평했다.

사실 고교선택제 도입에 앞서 2008년부터 대입에서 내신 비중이 강화됨에 따라 8학군 열풍이 수그러드는 현상도 이미 나타났다. 서울경제신문 2007년 3월 7일자는 강남 지역의 전세 값 약세 원인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전했다.

“부동산 시장 전반의 불황도 한 이유지만 주된 원인은 교육이라는 게 부동산과 교육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내년 대학입시에서 내신 성적 비중이 높아져 경쟁이 치열한 강남 학교로 전학하려는 수요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좋은 학군을 찾아 강남을 찾았던 학생들이 강북으로 ‘유턴’하는 흐름도 있다. 2007년 7월 서울시가 시민 4만8000명을 대상으로 이사계획을 물은 결과 강남보다는 강북으로 이사 가겠다는 시민이 늘었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교육환경 개선 등으로 강북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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