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생활 속 외교’들을 알아봤다.
비자를 받기위해 미 대사관 담장을 끼고 길게 줄 서 있는 모습. |
서울 A대학 4학년인 한아름(23·경기도 고양시 마두동) 씨는 지난 여름 친구를 만나러 한 달여간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한씨의 친구는 중학교 3학년 때 미국 LA로 가족들과 이민을 떠났는데 놀러 오라는 성화에 용기를 낸 것이다. 그런데 한씨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 비자’였다.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을 지날 때 꼬리가 어딘지 모르게 서 있는 줄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나도 이 줄을 서야 하나.”
한씨는 우선 인터넷 사이트부터 뒤졌다. 미국 비자 발급 후일담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한씨는 인터넷 등에서 여러 후일담을 접하면서 비용과 경험상 혼자 준비해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고 직접 비자를 받기로 했다.
예상대로 미국 비자 받기는 쉽지 않았다. 인터뷰 날짜 잡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인터뷰 예약은 인터넷이나 전화로 해야 하는데 전화 ARS를 이용하려다 보니 날짜 하나 예약하는 데 상당시간 전화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예약이 끝나자 이번엔 서류 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이라 자신이 준비해야 하는 서류는 호적등본과 여권이 전부. 하지만 아버지가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는 재직증명서, 갑근세납부증명서, 소득금액증명원, 의료보험증 사본, 은행잔고증명, 명함 등 부탁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서류 준비를 마친 한씨는 한 은행에 가서 비자 수수료(VISA FEE)로 131달러를 내고 영수증을 첨부한 뒤 인터뷰 날짜에 맞춰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대사관 밖에서 2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비로소 안으로 들어오라는 호출이 왔다. 서류를 제출하고 10분여를 기다리니 영사와 인터뷰를 하자며 전광판에 대기 번호가 떴다.
“왜 가냐”, “가서 뭐 할 거냐”, “얼마나 있을 거냐” 등 이렇게 세 마디를 묻더니 “여행 잘 다녀오라”며 나가 보란다. 한편으로는 허탈하고 한편으로는 은근히 화도 났다. 그러나 미국 비자 발급이 최근 많이 유연해졌지만 지금도 인터뷰한 사람의 3~4%가 비자를 받지 못한다고 하니 “잘 갔다 오라”는 영사의 인사에 한편으로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한씨는 비자가 동봉된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누가 말했는지 지긋지긋한 미국 비자란 말이 딱 맞았다” 며 한씨는 빙긋 웃었다.
최대 90일까지 방문 허용… 관광도 자유자재
한 번이라도 미국 여행을 했던 사람이라면 한씨처럼 비자 발급 문제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나마 3~4년 전부터 비자 면제 문제를 놓고 한·미 양국이 협상을 벌이면서 비자 발급이 수월해졌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거절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여행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9·11사태 이후에는 아주 엄격해지고 수량도 제한되는 등 비자 발급의 어려움이란 말로 다 못할 정도였다는 것이 당시 미국을 다녀온 사람들의 공통된 푸념이다. 하지만 빠르면 이달 17일 이후, 늦어도 내년 1월 12일부터는 이런 불편이 크게 해소될 전망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7일 ‘비자면제프로그램(VWP·Visa Waiver Program)’ 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 대상에 우리나라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마이클 처토프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10월 23일 한국, 헝가리 등 VWP 신규가입국으로 지정된 7개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국에 대한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이 11월 중으로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미 간 ‘범죄예방과 대처를 위한 협력 증진협정’ 서명과 국회 비준을 받은 후 미국 정부가 VWP 신규가입국 접수를 위한 출국통제 시스템 및 전자여행허가제(ESTA) 준비를 마치게 되면 우리나라도 신규가입국으로 확정돼 프로그램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번 비자 문제로 다시 한 번 실용외교의 성과가 확인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VWP’란 무엇일까. ‘VWP’는 미국 정부가 지정한 국가 국민에 대해 관광 및 상용 목적으로 최대 90일까지 미국 방문을 허용하는 제도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을 비자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듯 미국 방문도 자유롭게 된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미국 관광(B1) 및 상용(B2) 비자 발급을 위해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인터뷰 대기 등으로 파생됐던 여러 가지 불편 사항이 해소되게 됐다. 또 비자 수수료, 인터뷰 신청 수수료, 택배 수수료 및 기타 비용으로 지출되던 직접적 비용이 절감돼 국가적으로는 약 1000억원에서 1500억원 상당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외교부는 전했다.
특히 VWP 가입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VWP에 가입한 나라는 서유럽 22개국과 아시아 대양주에서는 일본·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브루나이 등 5개국. 기존에 가입한 나라가 대부분 경제 선진국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비슷한 반열에 올랐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다.
대신 VWP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전자여권을 먼저 발급받고 미국의 전자여행허가시스템(ESTA)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미국 여행을 떠나기 전 늦어도 72시간 전까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현행 미국 입국신고서와 유사하게 신상정보, 여행계획 등을 입력해야 한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ESTA가 또다른 비자제도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많은데 ESTA 정보는 기존 미국 입국 시 작성하던 입국신고서(I-94w)에 기입하는 수준”이라며 “이는 종전 비자를 받기 위해 최대 74가지 정보 및 서류를 미국 대사관에 제출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적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VWP 가입 후 입국 거부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미국은 비자 면제 국가 국민들이 미국 공항에서 입국 거부되는 비율이 매우 낮다고 설명하고 있다”며 “입국 목적이 의심스러운 사람 등 수상한 여행객을 제외하고는 비자 면제 여행객의 입국이 거절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90일 이상 체류한다거나 △관광·상용 이외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할 경우 △미국 체류 중 유학, 취업 등으로 신분 변경을 의도할 경우 △ESTA를 통해 비자 발급이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은 경우 △종전에 미국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거나 미국 입국을 거부 또는 추방된 적이 있는 경우에는 비자를 받아야만 입국이 가능하다.
단기 복수비자 협정… 러시아 입국도 쉬워져
러시아를 갈 때도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입국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지난 9월 이명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양국 국민의 상호 왕래 및 체류에 편의를 제공하는 ‘단기복수비자협정’이 체결됐기 때문이다.
협정 발효를 위한 양국의 국내 절차가 완료되면 협정이 발효될 예정이어서 내년부터는 본격 시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단기복수비자협정’은 비자발급 처리기간 단축(2주에서 1주), 초청장 승인 절차 폐지 등 비자발급 절차 간소화와 체류기한 90일인 1년 또는 5년 유효 복수비자 발급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제3국에서도 비자 신청을 서로 허용하고 유학이나 연수, 문화 및 체육, 가족초청 등의 경우는 비자 수수료를 면제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외교부는 “비자협정이 본격 시행되면 양국 국민이 이전보다 자유롭게 상대국을 방문할 수 있어 양국 간 인적 교류 증진이 예상된다”며 “우리 기업인의 러시아 진출도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7200명으로 워킹 홀리데이 인원 확대 추진
한국과 일본은 양국 청소년들에게 쌍방의 문화 및 일반적인 생활 양식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1999년 4월부터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5년, 심사를 통과한 1800명에게 워킹 홀리데이 사증을 발급했으며 2006년에는 모집인원이 두 배로 늘어 각 분기마다 900명씩 1년에 3600명을 선발하고 있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전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 쿼터를 내년부터 현재의 2배 규모인 7200명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으며 올해 말까지 실무협의를 통해 세부사항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워킹 홀리데이(취업관광) 사증은 어떻게 발급받을까. 워킹 홀리데이 사증은 1년간 유효한 단수 입국사증으로 이것으로 일본에 입국하는 한국인은 최장 1년간 체재가 허가된다. 또한 관광의 부수적인 활동으로 여행자금을 보충하기 위한 취업이 인정된다.
워킹 홀리데이 사증 발급 요건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주된 일본 입국 목적이 문화체험 및 이해가 되어야 하며 사증 신청 시점에서 나이는 원칙적으로 18세 이상 30세 이하여야 한다.
또한 귀국 시 비행기표를 구입하기에 충분한 자금 및 일본에서의 체재 초기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 약 250만원을 소지해야 하며 이전에 워킹 홀리데이 제도를 이용한 적이 없어야 한다.
신청은 관련 서류를 지참하고 일본 대사관 또는 일본 총영사관에 신청하면 되며, 동일 신청자의 복수 신청은 모두 무효처리된다.
WEST 시행, 어학연수에 인턴취업도 가능
대학생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인턴취업을 연계한 한·미 대학생 연수취업(WEST) 프로그램도 ‘실용외교’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WEST는 지난 8월 6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학연수와 인턴취업을 연계해 연간 최대 5000명이 참가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합의하면서 본격 추진되고 있다. 지난 9월 22일에는 양국 외교장관이 WEST 양해각서에 서명함으로써 시행 일자만 기다리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WEST는 우리 대학생에게 미국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 기회를 확대시켜 양국 관계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특히 WEST는 고비용 어학연수의 대안으로, 어학연수와 인턴십을 결합해 유급인턴십일 경우 체재비용의 일부 충당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자신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직종에서 인턴취업이 가능해 우리 대학생이 미국 기업에서 실질적인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됨은 물론 언어 적응능력과 기업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WEST 참가 절차는 현재 외교부와 교육부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외교부측은 기본적으로 △정부추천 대상자 선발 △미국 스폰서를 통한 어학연수 및 인턴 프로그램 지원 △미국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 수령 △정부추천서 발급 △주한 미국 대사관에 문화교류(J)비자 신청 △비자 수령 후 출국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대신 적정한 대상자 선발을 위해 저소득층이나 지방대 학생들에게도 일정비율을 할당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대학 관계자와 미국의 스폰서 측과 접촉을 통해 미국 내 인턴십이 요구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최종 선발 방법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12월까지 정부추천 대상자를 선발하는 등 WEST 추진체계를 마련하고 내년 2월까지는 본격적인 지원방침을 정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내년 3월경부터는 한국 대학생들이 미국에서 어학연수도 받고 인턴으로 취업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