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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3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있는 3층의 L·M 게이트 사이 외교통상부 인천국제공항연락실에는 아침 9시부터 얼굴이 사색이 된 여행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후 4시20분 싱가포르행 비행기인데요. 꼭 타야 합니다.”
“이 여권 가지고 어떻게 출국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여행사에서 확인해 주지 않던가요?”
“결혼 10주년이어서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여행사에서 챙기지 못했나 봅니다.”
“신청서에 사유를 쓰고 공항 2층 사진관에서 사진 두 장 찍어 오세요.”
외교부 인천공항연락실에는 금세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정아무개(88) 씨는 올 초 아내와 사별하고 미국에 있는 딸네 집으로 가는데 여권 만료 기간이 끝난 줄 몰랐다고 한다. 고령이어서 여권 만료 기간을 몰랐던 데다 여행사에서도 이를 놓쳤던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겨우 거동하는 그에게 다시 서울로 돌아가 여권을 발급받는 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를 대신해줄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1시간 뒤 정씨는 새로 만든 단수여권을 받아 들고 무사히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뒤이어 허겁지겁 연락실로 뛰어온 이는 국제 연주회차 미국으로 나가는 피아니스트 장아무개(37) 씨. 그는 여권 유효기간 만료일인 6월12일 안에 연주회를 마치고 귀국할 수 있기 때문에 여권을 연장하지 않았다.
출국 임박 여행객에 긴급여권 발급
하지만 미국 같은 경우는 여권 만기일이 촉박하면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장씨는 이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장씨가 해당 구청 여권과로 가서 여권을 새로 만들려면 최소한 1주일은 기다려야 한다. 이럴 경우 연주회 참가는 물거품이 될 것이 뻔했다. 장씨도 1시간 뒤 단수여권을 새로 발급받아 비행기를 탔다. 다음 민원인은 이화여대 목동병원 의사 정아무개씨. 신경과학학술회의 참석차 이탈리아로 가는 그도 여권 만기일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다.
이날 하루 동안 외교부 인천공항연락실은 모두 25명에게 긴급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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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인천공항에서 영사 민원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지난 5월24일. 이전에는 여권에 문제가 있는 여행객들은 예외없이 서울이나 자신의 거주지로 돌아가야 했다. 현행 여권 규정상 일반여권 발급과 유효기간 연장은 외교부의 위임을 받은 전국 17개 광역시·도와 서울 10개 구청 등 27개 ‘여권 발급 대행기관’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는 여권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입국을 허용한다. 문제는 앞서 외교부 연락실을 찾았던 것처럼 출국 전에 유효기간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여행객이 많지 않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차세대 유망 첼리스트 고봉인(19) 군의 경우였다. 고군은 첼로의 거장 다비드 게링가스의 제자며 금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는 젊은 음악가다. 그는 1997년 러시아국제청소년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고군은 2004년 12월22일 일시 귀국했다가 2005년 1월6일 낮 12시 시카고행 항공편으로 출국하려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오전 11시 탑승수속을 하다 여권 유효기간이 지난해 말 만료된 것을 알았다. 여권 재발급에 걸리는 시간은 6∼7일. 꽉 짜인 연주 일정과 학업을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고군은 예정대로 출국하지 못할 처지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마침 현장을 지나던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가 이 광경을 보고 여권을 즉시 발급받을 수 있게 외교부에 연락해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고군은 결국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는 여권을 받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 여권 있어야 발급 가능
인천공항에서 여권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외교부 인천공항연락실 황도연 영사민원팀장은 “처음 문을 열기 전에는 과연 여권을 확인하지 않고 공항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했다. 기껏해야 3∼4명 정도로 예상했는데 문을 열고 보니 하루 30∼40명 정도가 찾아왔다. 이 중 평균 25명 정도에게 긴급 여권을 발급해 준다”고 말했다.
[SET_IMAGE]5,original,left[/SET_IMAGE]그러나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여권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기간이 만료된 여권이라도 일단 기존 여권을 제출해야 하고, 긴급한 사유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여권을 집에 두고 나온 경우에는 발급받을 수 없다. 또 세계적으로 여권 위조 사례가 많기 때문에 엄격한 심사 기준을 적용한다.
아직 시작단계여서 현재 외교부 인천공항연락실에서 일하는 직원은 황 팀장을 포함해 2명뿐이다. 때문에 이들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정말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렇지만 국민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며 해결해 주기 때문에 보람은 많단다. 황 팀장의 말이다.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은 사람들도 얼굴이 사색이 되어 찾아옵니다. 그러던 사람들도 1시간 만에 긴급여권을 만들어주면 몇 번씩 고맙다고 절을 하고 가죠. 일은 힘들지만 공무원으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것이 혁신 아닐까요?”[RIGHT]최영재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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