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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풍경

200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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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 공원의 은행나무 얘기를 하는 동안 그는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무의 이미지가 주는 어떤 연상 작용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안간힘을 다해 유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유언을 남기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숨결에 실어 한 마디를 토해내는 사람은 제 생에서 가장 종요로운 것, 절박한 것, 한스러운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마침내 유언은 사사롭고 곡절한 개인사를 닫는 마지막 문장이 될 것이다. 아, 꿈이로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레몬 향기를 맡고 싶다, 사랑하오, 미안하다…… . 하품처럼 탄식처럼, 유언은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꾸려져 있다. 적나라하고 직설적이다. 그러나 유언은 또한 한 생이 얹힐 만큼 충분히 은유적이다.

그의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문장은 그 나무를 한 번 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나무라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레몬을 찾은 예술가의 유언처럼 비범하고 신비롭게 들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좀 좀스럽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십오 년이 넘도록 찾아가본 적이 없는 지방 소도시를 찾아갔다. 그의 고향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아버지는 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생애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 그 집은 한때 그의 부모가 세를 얻어 신접살림을 차린 단층 슬래브 집이었다. 옥상에 오르면 길 건너로 시청이 보였고, 신문보급소 건물을 두고 시립공원이 정원처럼 펼쳐졌다. 시립공원은 어느 도시에나 있을 법한 오래된 공원이었다. 팔각정에 매일 노인들이 북적거리고 봄이면 시내 초등학교에서 소풍을 오곤 했다. 그 공원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성터의 흔적이 남은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 같기도 했고, 아름드리 벚나무 그늘이 깊은 것으로 미루어 일본인들이 새로이 단장한 공원이 아닌가 싶었다.

 공원 한 편에는 작은 동물원이 있었다. 원숭이와 공작새가 있었는데 어느 해부터 공작새는 사라지고 원숭이 두 마리만 남았다. 벌겋게 성기를 늘어뜨린 수컷 원숭이가 시민들의 발길을 붙들곤 했다. 사람들은 그 원숭이에게 과자나 음식물을 던져주며 놀리곤 했다. 심지어는 원숭이가 소주병을 안고 취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는 뒷날 동물원과 공원의 이상스러운 조합이 근대화의 이미지로 떠오르곤 했다. 원숭이의 존재만으로도 그 공원은 도시에서 가장 이국적인 정취를 지닌 장소였다.

 공원은 어린 그에게 놀이터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는 그곳에서 뛰어놀았다. 그에게는 두 살 많은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누이가 있었다. 그 누이 탓인지 그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냈다. 늘 벙싯거리며 공원을 돌아다니는 누이 역시 사람들에게는 원숭이처럼 구경거리 같았다. 그의 누이 말고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모자(母子)가 있었다. 어머니는 맹인이었고 아들은 누이처럼 정신이 모자란 청년이었다. 맹인 어머니는 청년의 목에 깡통을 매달아서 구걸을 다녔다. 둘 사이에는 끈처럼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막대기를 두고 아들이 앞서고 어머니가 뒤를 따랐다. 아들은 눈이고 어머니는 보호자였다.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매일같이 두 모자는 공원에서 띄었다.

어느 날 그의 누이가 공작새처럼 사라졌다. 공작새처럼 사라졌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 그의 기억이 그렇기 때문이었다. 군인들이 시민들을 살육한 어느 밤 그의 누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시 그는 홍역을 앓느라고 며칠째 방에 드러누워 있었다. 총성이 들렸으나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가슴을 치며 숨죽여 우는 어머니의 목소리, 몇 번씩이나 날카롭게 여닫히는 대문소리…….

누이가 실종된 내력을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의 부모가 입을 열어 말해준 적은 없었다. 그날 밤 오감으로 전해진 꿈 같은, 파편적인 꿈 같은 이미지들, 누이의 실종 이후로 집안을 잠식해버린 어머니의 탄식, 아버지의 우울과 술주정이 쌓여서 누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는 감을 잡게 되었다.

누이는 옥상에서 불꽃 튀는 시내를 구경하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겁 많고 소심한 아버지는 누이의 시신을 대문 밖으로 내놓았다. 두려웠을지 모른다. 아니면 뒷날에라도 누이가 공권력에 희생당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대문 밖에 누이를 눕히고 온 아버지는 다시 나가 누이를 큰길가로 옮겨놓았다. 밤새 어머니는 뛰쳐나가려고 발버둥을 쳤고 아버지는 가로막았다.  전쟁 같은 밤이 지났다. 새벽길을 밟아 아버지는 큰길가로 나갔다. 딸은 사라지고 없었다. 군인들이 수습해간 게 틀림없었다.

도시가 일상을 찾아갔다. 아버지는 병원으로 화장터로 공동묘지로 누이를 찾아 다녔다. 가해자의 기록에도 희생자 단체의 기록에도 딸은 없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딸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 스스로 죄인이 되었다.

홍역을 치른 그는 공원으로 나갔다. 한 번도 자랑스러워본 적 없는 누이라 그런지 그는 슬프지 않았다. 서서히 그는 아이들과 친해졌다. 공원 곳곳에는 그날 밤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한동안 공원에서 보이지 않던 맹인 어머니와 아들도 막대기를 앞뒤로 잡은 채 다시 나타났다. 주민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아는 체를 했다. 이 공원을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노인도 있었다.
공원이 대대적으로 정비되면서 흔적들은 지워져갔다. 총알 박힌 은행나무 한 그루만이 남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은행나무는 어른 팔뚝만 한 굵기의 어린 나무였다. 시민들은 그 은행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추곤 했다. 더 이상 원숭이는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머잖아 공원에서 동물원이 사라졌다.

밤이면 그 나무를 어루만지고 가는 손길들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하찮은 나무 하나를 살리려고 마음을 졸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끔 아버지가 초췌한 모습으로 그 은행나무 앞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몇 년 후 그 공원에 시민들이 집결했다. 연일 최루탄이 터졌다. 시청을 불사르자고 몰려가는 시민들 틈에 중학생이 된 그가 서 있었다. 대학생 하나가 불쏘시개를 달라고 외치자 그는 연습장으로 쓰려고 신문보급소에서 가져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광고전단지 뭉치를 건네주었다.

경찰이 마지막 발악처럼 강경진압으로 시민들을 해산시켰다. 최루탄 연막이 큰길과 공원을 뒤덮고 시민들이 골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자욱한 연막이 걷히자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세 사람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의 아버지와 맹인 모자였다. 아버지는 앙상한 은행나무를 붙들고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고 있었다. 맹인의 아들은 고통으로 날뛰었는데 막대기만은 꼭 끌어쥐고 있었다. 그의 맹인 어머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조금은 기괴한 그 광경은 그러나 그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그가 대학생이 되면서 그의 가족은 그 도시를 떠났다.                 

십오 년 만이지만 공원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나무는 울창하고, 깊은 그늘 아래서 노인들이 쉬고 있었다. 그는 어렵사리 그 은행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총탄이 박힌 자리는 옹이진 대로 아물며 여느 나무와 다름없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늘 밑에는 나무의자까지 놓여 있었다. 그는 나무의자에 앉아 감회어린 눈으로 공원을 바라보았다.

어느 풍경에 이르러 그는 화들짝 놀란 사람처럼 입을 벌렸다. 막대기를 든 사내가 벙싯거리는 얼굴로 앞을 지나갔다. 그도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어 있고, 가슴에서 깡통이 사라졌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맹인의 아들이었다. 순간 그는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막대기 한 쪽 끝을 잡고 뒤따르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막대기 한 쪽 끝을 뒤쪽 허공에 놓인 채 그 사내는 공원을 가로질러갔다. 시간의 허방을 짚은 듯 그는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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