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서울 대일외고 3학년 허해성(18) 군을 지난 9월 대일외고 교정에서 만났다. “축하한다”는 말에 허 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라디오 남북친구’에 매일 10분씩 5차례나 방송을 내보낸 사람치곤 수줍음이 많았다.
허 군은 “해외근무를 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가 프랑스 파리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인근에 있던 북한 무역관을 지나면서 북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같은 민족에게 무섭다는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참 서글펐다”고 회상했다.
허 군은 최근 탈북주민들의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기관인 하나원이 실시하는 북한이탈주민 대상 한국문화 교육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도 한국을 알릴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중 ‘열린북한방송’에서 시민참여 프로젝트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열린북한방송은 2005년 12월 민간 대북방송 제1호로 개국한 이래 2006년 상반기까지는 자유북한방송, 자유조선방송 등의 프로그램 송출을 대행하는 대북방송 중계 사업자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2006년 말 방송시간을 1시간으로 확대하고 자체 제작한 방송과 외부에서 제공한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 독자적인 방송을 북한을 향해 내보내고 있다.
재미가 있고 시대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매체여서 영화를 소재로 택했다는 허 군은 자신의 프로그램 ‘영화 속으로의 여행’을 통해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 5편에 담긴 한국 현대사를 북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맨스 빠빠>(1960년대) <고교 얄개>(7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80년대) <서편제>(90년대) <괴물>(2000년대) 등이 그가 선정한 영화들이다.
허 군은 <로맨스 빠빠>는 전쟁의 상흔 속에서 피어난 가족 간의 사랑과 낭만, <고교 얄개>는 친구 대신 우유 배달을 해주고 필기한 공책을 함께 보며 공부하는 모습에서 협동을 강조한 새마을운동 정신이 돋보였고, <공포의 외인구단>은 역경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노력과 여주인공의 사랑 이야기 등이 1980년대 ‘3S(Sex, Sports, Screen)’ 정책이 반영된 시대 모습을 잘 대변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에피소드 하나. 자신의 이름 해성은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 오해성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눈이 먼 딸이 한(恨)을 극복하면서 명창이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서편제>는 한이 남북이 공감하는 우리 민족 정서여서 선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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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군은 “2학년 때 YMCA에서 진행한 재외동포 한국문화 체험프로그램에 도우미로 참여하면서 세대를 거쳐도 우리 민족 고유의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았다”며 북한 주민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영화 <괴물>은 환경문제와 함께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것 중 하나라며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영화 속으로의 여행’이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허 군은 초등학교 시절 외국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이 그분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나자 친구에게 전화해 “부대찌개 시켜줘”라며 식당으로 향하는 허 군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야자(야간자습) 하려면 잘 먹어야 하거든요.” 영락없는 고3 수험생이었다.
글·강선임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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