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우린 ‘뚝배기’ 같은 민족이야. 세련되지 않지만 은근한 끈기와 용기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냈잖아.”
장장 7대 200여 년간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들고 있는 박재환(75·충북 무형문화재 12호) 옹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얼마 전 국정홍보처의 공익 CF ‘우리의 내일은 식지 않습니다’에 출연해 IMF 외환위기로부터 10년 동안 식지 않은 열정을 ‘뚝배기’로 표현하기도 했다. 외곬으로 살아온 그를 만나 숨겨진 옹기 얘기를 들어봤다.
박옹은 “우리 항아리의 모양을 봐. 선이 곱지도 세련되지도 않았지.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삶과 인생, 역사가 담겨있다”면서 “잡초 같은 우리 민족을 가장 잘 표현해 내는 것이 바로 옹기”라고 정의했다.
그렇다. 어린 시절 공에 맞아 산산조각난 항아리 조각에 망연자실했던 일, 항아리에서 퍼온 동치미 국물 한 그릇을 벌컥벌컥 들이키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던 화를 삭이던 아버지, 알사탕 곶감 등 맛난 것이 가득했던 주름진 외할머니의 보물창고였던 다락방 항아리, ‘보글보글’ 소리와 함께 밥상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뚝배기의 추억도 다 옹기에서 시작됐다. 우리의 삶과 함께 해왔음에도 참 무심했다. 뿐만 아니라 편리함에 익숙한 우리 삶에서 옹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젠 아파트 문화, 플라스틱 밀폐 용기, 냉장고 때문에 우리 삶과 추억이 묻어있는 옹기를 보기 힘든 시대가 되고 말았다.
우리 음식과 찰떡궁합인 전통 옹기
그는 “인기가 없으면 어때. 나는 그냥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진흙을 만지며 여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뿐이야. 한 발로 진흙을 밟고 손에 묻혀 죽는 순간까지 자식 같은 옹기를 만드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우리 것이 좋으니까 무조건 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억지지. 하지만 옹기는 우리 음식을 보약처럼 발효시킬 뿐 아니라 장기간 보관하는 데 그만이야. 그래서 옹기가 좋은 거야”라며 옹기자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한 겨울 수북이 쌓인 눈을 치워내고 옹기 속에서 묵은 짠지 맛을 전기 힘으로 온도를 맞춘 김치냉장고의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김치와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우리집 김치를 먹어봐. 아이들도 김치 하나면 다른 반찬은 필요없어.”
이렇듯 안과 밖이 서로 소통하고 순환하며 우리 먹을거리를 지키는 것이 ‘옹기의 생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의 방식 그대로 고집
2004년 초 내린 폭설로 충북 청원군 강외면에 있는 그의 옹기공장은 지붕이 내려앉고 벽이 무너져 내리는 피해를 봤다. 4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조그만 난로의 온기에 의지한 채 차가운 바닥에 앉아 물레를 돌리며 곱은 손을 만지던 그는 “참 아쉬워. 나라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데. 비닐하우스나 축산 농가들의 폭설 피해는 지원해주었는데 우린 공장이라 법적으로 보상 한 푼 받지 못했다”면서 “그래도 가마가 무너지지 않아 몇 달에 한 번씩은 옹기를 구워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애써 웃음 짓는다. 전통기술과 함께 양질의 옹기를 빚기 위한 필수조건은 바로 좋은 가마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 가마 짓는 법을 배우기 위해 열 번이나 유명 가마터 근처로 이사를 다녔다는 그는 유일한 재산인 가마가 있는 한 절대 흙을 등지지 않겠다고 했다. 슬하 5남매 중 큰 아들인 종화씨와 막내인 대순씨가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나서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가격이 10%인 중국산 옹기, 만들기 쉬운 전기 가마의 유혹에 장작 가마로 전통 옹기를 만드는 사람을 찾기 힘든 현실이야. 하지만 나는 물론 우리 애들은 절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나의 아버지에게 배운 그대로 옹기를 만들거야. 그래야 나중에 조상님 얼굴 뵐 면목이 있지.”
그가 추천하는 좋은 옹기는 의외다. 빛이 오디 마냥 새까맣고 겉이 반들반들 윤이 나야 한다는 것. 겉에 유약을 발라 단순히 윤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목초를 태운 재와 약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광명단(납이 섞인 페인트 원료)을 넣어야 한단다.

지난 1945년부터 제작됐다는 광명단 항아리는 납성분이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이유로 시장에서 철저히 배척됐다. 하지만 그 광명단 항아리가 가장 좋은 옹기라고 한다.
“광명단을 넣으면 800∼900도 낮은 온도에서도 잘 구워져 한때 대량생산업체들의 상술로 전통옹기가 존폐위기에 몰리기도 했지. 하지만 전통옹기는 1250도 고온에서 구워. 그래야 납성분이 모두 날아가 없어져 버려. 대신 다른 유약성분의 결합을 도와 항아리가 완전방수 기능을 갖게 하는 거야.”
즉 다른 옹기들이 김치 등 소금성분을 만나면 산화과정을 밟으면서 음식물에 영향을 주는 반면 광명단을 넣은 전통옹기는 내용물과 섞이지 않고 고스란히 좋은 맛을 끝까지 유지시켜 준다는 설명이다.
그의 마지막 희망은 흙의 숨결이 살아있는 옹기가 앞으로도 수천 년 우리 땅을 지키는 것.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평생을 옹기에 바친 박재환옹 같은 이들이 있는 한 옹기의 생명력은 쉬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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