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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호>충남 아산 ‘짚동가리술’

200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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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네 전통주는 우리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옛날 과거 보는 선비들이 시험 전날 마셨다는 머리를 맑게 하는 잎새곡주, 녹두장군 전봉준이 일본군과 연합한 조선관군에 끌려가면서도 찾았다는 소주 죽력고, 시인 조지훈이 직접 빚어 마셨다는 삼도주, 퇴계 이황이 탐닉했다는 개고기로 빚은 무술주가 그렇다. 무술주는 늙고 지친 부모에게 약으로 내놓았다는 술이기도 하다.

전통주는 옛 문헌에 전해지는 것만도 500종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복원된 것은 채 50종이 안 된다. 민족의 입맛을 풍미했던 전통주의 역사도 굴곡진 우리 역사의 아픔을 비껴갈 수 없었던 탓이다.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자들은 세금을 강탈할 목적으로, 당시 듣도 보도 못한 조세법을 만들어 각 가정에서 담그던 향토주를 밀주라는 이름으로 단속했다.


23개 대형 항아리 속에서 한 달간 숙성
이 당시 전국에 퍼져 있던 자가(自家) 제조장은 15만5632곳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1909년 일제에 의해 ‘주세령’이 공포돼 가정에서 술 제조가 금지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일본식 청주, 맥주, 양주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전통주들이 많이 사장됐다.

하지만 충남 아산시 선장면에 가면 우리 민족의 애환과 이를 극복한 고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명주를 만나 볼 수 있다.

장항선 학성~도고온천역 사이에 ‘선장역’이라는 간이역이 있다. 충남 아산 도고온천 내에 자리 잡은 선장역에는 다른 역에서는 볼 수 없는 택시 승강장식 간이역사 시설을 비롯해 쭉 뻗은 가로수길, 통일호가 다닐 때도 무궁화호만 정차하던 독특한 기차역이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이 철길을 따라 신성리 쪽으로 가다보면 맑은 물과 좋은 약재들로 빚어지고 있는 아산시 명주인 ‘짚동가리술’을 만드는 술도가가 나온다. 1200여 평 대지 위에 2층 규모의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원앙주업 공장이 바로 그곳이다.

술도가에 들어가는 순간 물씬한 누룩과 술밥이 어우러진 술 익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숙성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23개의 커다란 항아리 속에서 술이 농익어가는 누룩 내가 펄펄 난다. 술은 약 한 달가량 이곳에서 익어간다.

짚동가리술은 일제가 본격적으로 술 빚는 것을 통제하면서 탄생됐다. 1909년 일본인 메카타의 주도로 주세법이 생기고 1916년에 강화된 주세령이 시행되면서 가정에서 제조하는 술 단속이 심하게 자행됐다.


일제 때 짚가리 깊숙이 숨긴 데서 탄생한 술
이때부터 이곳 주민들은 술항아리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에 묻기도 하고, 대청마루 밑이나 헛간에 숨기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짚단이 쌓인 짚동가리 속에 묻거나 땅 위에 놓고 그 위에 짚가리를 쌓는 방법으로 술을 숨겼다. 단속이 심할 때는 밀주단속 반원이 와서 쇠꼬챙이로 짚단 속을 쑤셔 봐도 찾을 수 없게 깊숙이 묻어두었다.
짚동가리술은 이렇게 탄생했다.

짚동가리술은 짚의 보온효과가 뛰어나 발효가 안정적으로 이루어져 땅에 묻고 짚을 덮을 때 독특한 맛과 향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추수가 끝난 후 빚은 술은 늦봄이나 돼야 꺼내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짚동가리술이 아산 지역에서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주변 환경도 큰 몫을 했다.
바로 술맛을 결정하는 물이다. 짚동가리 술도가 원앙주업 대표 채수성 회장은 “선장면 신성리 일대는 옛 신라시대부터 으뜸마을로 불릴 정도로 물이 유명하다”며 “병을 얻은 신라 태자가 이곳에 매운맛이 나는 우물 초정(椒井)이 있다 하여 휴양차 다녀갔을 정도로 물맛 하나는 끝내줬다”고 말했다.


지하 250m 암반수 물도 한몫
7년 동안 중국에서 술 공장을 운영하다가 2002년 고향 아산에 술도가를 차린 채 사장은 지난 2003년 아산시의 명주 개발 제안을 받아들여 짚동가리술을 만들었다.
몇몇 주민들이 그 전에도 짚동가리술을 만드는 시도를 했지만 누룩의 배합을 못 맞춰 상품화하는 데 실패했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과거에는 누룩 50%와 쌀 50%로 섞어 만들었지만 지금은 누룩을 20%만 넣으라는 민속주 제조법 규정 때문에 술을 만들기가 힘들다는 것. 누룩 20%로 동동주 같은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채 회장은 “술을 장기간 보관할 경우 살균처리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술맛이 변해 못 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4개월 간의 연구 끝에 누룩 20%를 넣어도 맑은 빛깔과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저온 살균처리로 묵은 맛을 없앴고 장기보관도 가능하게 됐다. 애주가들의 입술에 미소를 머금게 하고도 남는다.

짚동가리술은 술밥과 누룩을 섞어 숙성시켜 만든다. 찹쌀과 멥쌀을 7대3 비율로 혼합하고, 지하 250m 암반에서 끌어올린 물로 여러 번 씻는다. 시루에 보를 얹고 그 위에다 찹쌀을 넣은 후 찐다. 찹쌀이 거의 다 쪄지면 그 위에 대추, 진피, 오미자, 감초, 감국 등 6가지 약재와 누룩을 섞어 항아리에 넣는다.
이 항아리를 볏짚 속에 넣고 20일 정도 숙성시킨 후 살균처리를 한다. 이때 술맛을 더하기 위해 3~4가지 약재를 더 넣는다. 이 약재는 채 사장만의 비법으로 공개할 수 없단다.

짚동가리술의 전통을 잇고 있는 채 회장은 “그동안 소량 생산에만 치우친 나머지 짚동가리술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며 “올해부터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 매출을 늘리는 한편 중국·말레이시아 등 세계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 필요”
지역축제나 식품 관련 박람회 등이 열릴 때마다 전시부스를 마련해 짚동가리술을 대대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채 회장은 “짚동가리술에 담긴 우리 역사를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술에 대한 적극적인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며 “아직도 많은 제약 속에서 술을 빚고 있는 술도가들이 외국 술과 경쟁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아산시가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5000만 원을 지원해 주었으나 올해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원이 끊겼다”며 “지방자치단체의 전폭적인 지원도 적극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 회장은 “짚동가리술은 수입산으로부터 국내 전통주 시장을 조금이라도 지키기 위한 술도가의 자부심”이라며 “새로운 수요 창출로 판로를 넓히고 우리 술의 맛과 향 연구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리 민족의 애환과 이를 극복한 고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짚동가리술로 올 한 해 건강과 삶의 기쁨을 누려 보면 어떨까.
[RIGHT]권태욱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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