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달이’ 이봉주(39·삼성전자)의 마라톤 인생이 10월 21일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이날 열린 제90회 전국체전 마라톤에서 이봉주는 고향인 충남대표로 출전해 2시간15분25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 마지막 레이스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봉주는 이날 41번째 풀코스를 뛰었다. 세계 마라톤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대기록이다.
그의 마라톤 인생은 오뚝이를 닮았다.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황영조 선수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미련 없이 선수 인생을 접었다.
반면 이봉주는 2등으로 레이스를 마친 경우가 많았고, 특히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1993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호놀룰루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하며 세계 마라톤계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1996년 열린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시간12분39초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는 아직까지 한국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1년 보스턴마라톤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1위 등 꾸준히 세계 정상급 기량을 보이던 이봉주는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14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아프리카 철각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꾸준한 속도전을 펼쳐 마의 2시간5분대, 4분대 벽을 잇따라 깨면서 이봉주의 시대는 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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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혹독한 훈련을 거듭했다.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막판 기적과 같은 역전 레이스를 펼치며 2시간8분4초로 우승컵을 안았다. 보스턴마라톤 이후 6년만의 국제대회 우승이었다.
양쪽 발의 크기가 다른 짝발이었던 탓에 남모를 통증을 앓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한국 마라톤을 10년 이상 홀로 이끌어온 이봉주. 순박한 미소와 함께 한눈팔지 않고 마라톤 외길을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우직한 모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글·최호열 기자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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