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년(세종 2년) 경자식년시(庚子式年試·3년마다 행하는 문과)의 장원급제자는 여말선초의 명문가 순흥 안씨 집안의 안숭선(安崇善)이었다. 안숭선은 조선이 개국하던 1392년생이므로 이때 스물아홉이었다. 할아버지 안경공(安景恭)은 개국공신이었고 아버지 안순(安純)은 당시 호조참판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말미암아 안숭선은 원래 문음(門蔭·공신 후손의 자격으로 관직에 진출)으로 관직의 길에 들어섰다. 실록에서도 “총명하고 출중했다”고 밝힐 정도로 업무 능력이 탁월했고 용모나 성품 또한 “뛰어나게 잘나고 호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문과 급제 전에 이미 정6품 사헌부 감찰(監察)로 일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장원급제 후인 1420년 3월 22일 감찰보다 두 등급 위인 정5품 사헌부 지평(持平)에 제수된다. 시작부터 ‘고속 출세’인 셈이다.
하지만 신언서판(身言書判·관리 등용의 기준으로 삼았던 몸, 말씨, 글씨, 판단의 네 가지)을 두루 갖춘 안숭선 역시 장원급제자 특유의 치명적 단점도 갖고 있었다. 매사에 자신만만해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너무 분명했다.
급제 6년 만인 1426년 안숭선은 정4품 사헌부 장령(掌令)에 제수된다. 다시 2년 후인 1428년 세종은 안숭선을 종3품 사헌부 집의(執義)로 임명한다. 집의는 종2품 대사헌(大司憲) 바로 아래로 핵심 요직 중 하나다. 안숭선은 ‘견사풍생(見事風生)’, 일을 보면 그것을 풀어가는 재주나 의견이 바람이 일듯 끊임없이 나온다는 말로 세종이 좋아했던 인재 유형 중 하나였다.
그리고 다시 2년 후인 1430년(세종 12년) 8월 22일 안숭선은 승정원 동부대언(同副代言·6승지 중의 막내)이 되는데, 품계는 지신사(知申事·도승지)와 같은 정3품 당상관이었다. 같은 날 황보인(黃甫仁)은 지신사, 김종서(金宗瑞)는 우대언에 제수됐다. 안숭선보다 두 살 위인 김종서는 태종 5년(1405년) 문과에 급제했으니 안숭선이 15년의 ‘갭’을 하루아침에 거의 따라잡은 것이다.
김종서로서는 더 치욕적인 일이 6개월 만인 1431년 2월 29일 일어난다. 안숭선을 지신사로 임명한 것이다. 품계는 같았지만 역할을 따지면 이제 김종서가 안숭선 아래에 놓이게 됐다. 세종 15년에 세종은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승정원 지신사(知申事)를 도승지(都承旨)로 개칭하는데 바로 안숭선이 지신사였다가 도승지로 바뀌게 되는 주인공이다.
이후 1435년 2월 5일 어머니의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할 때까지 4년 동안 안숭선은 세종의 최측근으로서 북방영토 개척을 비롯해 의욕적인 사업을 전개하고 있던 세종을 ‘특급 보좌’했다. 실록은 그가 도승지로서 왕명을 출납함이 “공명하고 진실하였다”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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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상(母親喪)을 마친 안숭선은 다시 대사헌으로 복귀해 공조참판과 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친 다음 1445년(세종 27년) 병조판서에 임명된다. 반면 김종서는 북진 개척의 공을 인정받아 안숭선보다 5년 빠른 1440년 형조판서에 올랐다. 김종서의 모진 고생에 대한 보답인 셈이다.
두 사람은 사헌부나 승정원에서 함께 일할 때부터 어긋나는 사이였다. 1448년에는 병조판서로 있던 안숭선이 정실인사(情實人事)를 했다는 이유로 유배를 가게 된다. 얼마 후 세종이 오해를 풀어 풀려나게 되지만 그 배후에 김종서가 있었다는 것이 조선 성종 때의 문신 성현의 해석이다.
세종 말 우의정에 오르고 문종 때 좌의정을 지내며 단종 때 최고의 실권을 쥐게 되는 김종서와 달리 안숭선은 문종 때 참찬(參贊·의정부의 정2품직)에 올랐다가 세상을 떠났다. 참찬은 좌우 찬성(贊成·종1품)을 거쳐야 우의정에 오를 수 있었으니 김종서보다 여러 단계 아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종서 또한 수양대군과의 투쟁에서 패해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 안숭선과 김종서, 누가 현실의 승자이고 또 역사의 승자일까?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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