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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호>한국인의 삶을 바꾼 것들-송년회

200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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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送年會)가 넘쳐나는 세밑이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했던 망년회(忘年會)라는 말을 요즘은 이렇게 바꿔 부른다. 망년회는 본래 일본의 풍속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 해의 수고로움을 잊는다(忘年)’는 뜻에서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연말 풍습에는 ‘수세(守歲)’라는 것이 있다. 수세는 연말에 방·마루·부엌·마구간 등 집 안 곳곳에 불을 켜 놓고 조상신이 오는 것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성스러운 행사였다. 그런 날인 만큼 경건함을 지켰으며, 흥청거림은 없었다. 오늘날의 송년회와는 그 모습이 많이 달랐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망년회는 주로 도시에서 이뤄졌을 뿐 전국적 현상은 아니었다. 해방 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송년회는 크리스마스가 ‘명절’ 취급을 받으면서부터 사실상 시작됐다. 그 즈음인 1950년대 연말 서울의 중심 명동 풍경은 흥청거림의 연속이었다. 매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만큼은 야간 통행금지마저 해제돼 망년회는 주로 이날 밤에 집중됐다. 1950년대 신문은 26일 아침 1면 톱으로 ‘성탄 전야 명동에 15만 인파 운집’ 등의 기사를 내보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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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가 대중화된 것은 대략 1960년대부터다. 1964년 12월26일 한 일간지의 1면 톱기사는 ‘사상 최악의 광란과 무질서, 종로와 명동 인파 35만 명’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들 대부분이 ‘망년회’ 참석자였음은 물론이다. 당시 서울의 인구가 300만 명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파였던 것이 틀림없다.

1970년대 송년회 자리는 ‘OB’ ‘크라운’ 등의 상표를 단 맥주가 귀한 대접을 받으며 주연으로 등장했다. 대학생 등 청년들은 다방이나 제과점을 통째로 빌려 트위스트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들은 맥주를 마시고 통기타를 쳤으며 ‘건배’ 대신 ‘위하여’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서민들은 대폿집에서 막걸리나 소주잔을 앞에 놓고 젓가락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며 고된 1년을 마감했다.


폭탄주·노래방 송년회 풍속 여전히 기세
1980년대 송년회에는 맥주와 양주를 섞은 이른바 ‘폭탄주’가 등장했다. 소위 ‘신군부’가 정권을 잡고 집권하면서부터 유행한 군대문화의 별종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이른바 ‘망년회 고속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들은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 교외나 온천 등으로 빠져나가 원정 송년회를 열었다.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과 함께 점차 개인소득이 늘어나면서 송년회의 횟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인간관계가 다양한 직장인들은 연말이면 하루 건너 잡혀 있는 각종 송년회 행사를 쫓아 다니느라 일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송년회 때 과로로 숨지는 사건이 신문 사회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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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송년회는 1990년대부터의 풍속도다. 1차 음주를 하고 2차 노래방을 가는 것은 정해진 순서 같았다. 노래방 송년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춤과 노래였다. 대학생 등 청년들은 나이트클럽 등에서 행사를 마무리하는 일도 흔해졌다. 가면파티 등 서구의 이색적 파티문화가 선을 보인 것도 이즈음 송년회에서였다.

2000년대 들어 송년회 풍속은 더욱 다양해졌다. 술자리를 대신한 ‘문화행사’들이 대거 선을 보였다. 전시회 개최, 공연 관람이 송년회 행사로 등장해 급속하게 확산하는 추세다. 여성 직장인들의 힘이 커지면서 ‘망가지는 망년회’를 건전한 송년회 문화가 빠르게 대체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오후 10시 이전 귀가라는 송년회 신풍속도 덩달아 등장했다. 기혼자의 경우 가족을 동반하는 송년회를 갖는 회사도 생겨났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은 점심시간에 송년회를 기획했다. 아예 술 마시는 저녁 송년회를 폐지한 것이다.

물론 ‘마음껏 술 마시고 죽자’는 식의 송년회 풍속도 여전히 성행한다. 거기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죽었다’ 다음날 ‘부활’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송년회를 통한 ‘죽음과 부활의 의식’은 그렇게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다.
[RIGHT]한기홍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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