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일생 동안 글 읽기의 행복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대학을 막 졸업했을 무렵,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의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나 대학에서 젊은 한국인들을 상대로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입에 올리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당시 전율의 여운 속에 놓여있다.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모든 면에 있어서 각별한 책이다. 한국인이 일본인과 일본문화에 대해 ‘논(論)’한 최초의 책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나온 김소운의 저작이 있었지만, 그것은 ‘논’이 아닌 ‘록(錄)’에 가까운 것이었다. 게다가 출판된 지 어언 25년의 세월이 경과했음에도 아직도 이 책을 능가하는 일본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는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다)이야말로 이 책이 지니는 가치를 대변한다.
지금까지 한국인이 일본에서 출판한 책 중에서 이 책만큼 일본인들의 관심을 끈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 독자들의 구미에 맞는 책일 것이라는 추측은 성급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전후 부흥에 성공해 경제대국의 지위에 자족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이 듣기에 껄끄러운 지적과 비판은 한 치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1945년 이후 일본인 및 비일본인에 의해 씌어진 일본인론, 일본문화론의 종류는 1000종을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루스 베네딕트부터 롤랑 바르트, 에드윈 라이샤워, 존 다워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저자들의 일본론 논저들도 이 책만큼의 흡인력을 지니지는 못할 것이다. ‘비전문가’임에도 웬만한 일본전문가를 능가하는 박학다식에, 일본문화와 일본사회 구석구석에까지 미치는 비범한 관찰력과 명징한 논리, 기지로 번득이는 수사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이 책이 일본사회에 발신하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근대 이후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관습적으로 신봉해온 ‘일본/서양’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대한 이의 제기일 것이다. 예컨대 ‘서양에 없는 것은 일본에만 있다’는 식의 일본인 논자들의 치명적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한국문화를 비교고찰의 ‘기준’으로 삼아 일본문화를 상대화해 나가는 솜씨는 쾌도난마의 지적 퍼포먼스로 부족함이 없다.
물론 이 책이라고 해서 완벽할 수는 없다. 부채·분재·도시락 등을 예로 들면서 포개 넣고, 접고, 줄이고, 채워 넣는 일본문화에 대한 비교문화적 고찰은 타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축소와 확대라는 이분법에 의한 범주화·일반화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무릇 문화론적 언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문제라는 점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자산 가치는 오히려 한국에서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일본문화에 대한 정교하고 치밀한 관찰과 분석의 산물인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지적 불평등 관계를 시정하는 기념비적인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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