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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호>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200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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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모름지기 사람은 견문을 넓혀야 한다. 견문을 넓히는 것이 꼭 물리적인 여행일 필요는 없다.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지성의 업적들을 책을 통해 읽는 것 또한 여행이다. 책을 통해 전혀 다른 생각들을 접하고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자기 나라의 모순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우리 문화에 대해 비평한 글을 읽는 것은 어쩌면 물리적인 여행보다 더 큰 의식의 충격을 제공할 수도 있다.

러시아 출신인 박노자는 날카로운 비평가다. 한국사회의 썩은 곳, 그러나 타성에 젖어 사람들이 미처 그 병증의 중대함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던 곳들에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그가 집어든 칼은 냉정하고 예리하다. 이 책이 출간된 2001년도에 그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 문제라는 화두를 짚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한국인이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때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부조리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책 제목이지 싶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것은 두 가지 층위의 문제의식을 담았다. 그 하나는 한국인 입장에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그 둘은 외국인 입장에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이 나라가 헌법에 규정된 민주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특권층만을 위한 나라라는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패거리’ ‘거액의 자금과 탁월한 로비능력’ ‘비리사학재단’ ‘유착’ ‘족벌언론’ 등의 단어들이 바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그 ‘당신들’은 오늘도 막대한 금융소득과 부동산소득을 독점하면서 한줌도 안 되는 세금조차 낼 수 없다고 ‘당신들 나라’에 끼지 못한 절대 다수 국민들을 능멸하고 있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외국인의 입장에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반만년 단일민족 신화에 갇힌 한국인의 인종주의를 말한다. 세계에서 화교가 버티지 못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대한민국의 이 극단적인 폐쇄성을 외국 출신인 그가 날카롭게 짚어낸다.
노동자와 농촌 신부 등 나날이 늘어나는 외국인 문제에 대해 우리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면 10~20년 후 프랑스 인종 폭동이 이 땅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는 또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것은 어쩌면 그가 사회주의권 출신이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독차지한 ‘당신들’의 무한한 자유를 규제할 주체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가권력뿐이라는 점이다. 국가가 아니면 누가 종부세를 매길 수 있으며, 부동산 부자, 사학 재단의 탐욕을 제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박정희의 시대가 끝난 지금 절대국가에 대한 박노자의 예민한 감수성은 지나친 감이 있다. 2001년에 박노자가 짚어준 한국사회의 병증은 깊이 경청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여전히 ‘당신들’이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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