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작가라는 나는 도대체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읽고 있는 것일까. 워낙 읽는 속도가 느리기도 하기 때문이겠지만, 소설 말고 다른 글들을 읽으려면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보통 공력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나 또한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하루살이 인생이나 마찬가지로 이번 달 글써서 다음 달 밥을 마련하고 사느라, 진실을 고백하자면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때도 있다.[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
책과 가장 가까이 있을 법한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이러한데 다른 직업, 이를테면 막노동을 한다거나(사실 나도 글쓰기라는 막노동을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어떤 때는 우리집에 배달되는 두 종의 신문 중 한 종은 늘 포기하기 십상인 나날을 살고 있는 나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뭐라고 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발 책을 좀 많이 읽어 줬으면 좋겠다. 꼭 내가 책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이렇게 한 달에 소설이든 뭐든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서글퍼서다, 속상해서다. 그래서 악을 쓰듯 제발 책 좀 읽어보자고, 속 상한 김에 그까짓 책이라도 한번 읽자고 해 보고 싶은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나 <실미도>를 보아 주는 것만큼이나 책도 그리 보아달라고 말한다면, 먹고 살기 위해 핑핑 돌아쳐야 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핀잔을 들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사람들이 이왕 팍팍한 세상, 서글픈 세상 다른 것 다 못해도 책이나 봐주자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장관은 “우리에게는 이제 15년이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15년 후에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고령화사회가 되어버려 지금까지와 같은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 바로 15년이라고. 15년 후에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때쯤에는 지금보다 더 ‘지식정보화’시대가 확실하게 되어 있을 텐데, 이 땅에서 글써서 먹고 사는 나 같은 사람까지 포함해 ‘먹고 살기 바쁜’ 많은 사람들이 책은커녕 교육비조차 줄여야 하는 판에 15년이라는 기간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이 팍팍한 현실이 얼마나 개선될 수 있을까.
아,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책이라는 것이 꼭 먹고 살기 어렵다고 안 읽히는 것일까. 이렇게까지 책도 안 읽고, 오락·문화비도 줄이고 살아야 하고, 대신 술·담배를 많이 먹고 피울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15년 후에는 무슨 수로 그 많은 노인을 부양할 수 있을까. 책 안 읽어 영혼도 허기지고 술·담배 많이 해 몸도 허약해져 들어가는 돈은 쌀값·반찬값이요, 늘어가는 돈은 의료·보건비뿐이어서 사는 것이 슬픔 자체일 이 나라 사람들이….
그래서 나는 더욱 부르짖고 싶은 것이다. 옛날 이보다 더 가난하게 살 때도 자식들 가르치는 것에는 물불 가리지 않았던 만만치 않은 저력을 되살려, 이제 돈 생기면 쌀 사고 반찬 사는 돈 옆에 책 한 권 사는 돈 정도 ‘오기’로라도 남겨두자고. 그래야 15년 후 우리가 덜 서글플 것 같다고. 요컨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라는 소리 대신, 이제 우리가 이왕 먹고 살기 어렵다면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보려고 한번 애쓰는 것, 내가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가지고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는 자존심은 지니고 살자는 것이다. 책 한 권 손에 드는 것은 바로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의 사람들이 그나마 버릴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챙기는 것의 일종이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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