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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호>몸과 마음 비우는 새해 맹세

200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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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한 해가 저물고 다시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날마다 태양은 떠오르지만, 하루의 소망이 한 해의 소망으로 확대재생산되는 즈음이기에 누구나 들떠 있습니다. 들뜬다는 것은 뭔가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것을 뜻하지만 되짚어 보면 에너지 분출의 방향이 혼돈에 빠져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새해 소망과 더불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암수 한몸’처럼 우리를 다스리기 때문이겠지요.

그리하여 인디언 모호크 족의 추장인 제이크 습지는 ‘해맞이 감사의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우리를 이처럼 인간으로 살게 해 주신 위대한 신령의 산물에 감사 드립니다.”
이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더욱 근원으로 돌아가 에너지의 분출이 아니라 속으로 에너지를 더 다지는 일, 말하자면 내공을 키우는 맹세가 아니겠는지요.

새해를 맞으며 어떤 이는 산으로 바다로 일출을 보러 가고, 어떤 이는 지인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두문불출하며 소외감에 젖거나 외로움을 즐기기도 합니다. 모양새는 다르지만 모두 한 해를 마감하고 속으로 또 한 해 살림살이의 조감도를 그리고 또 그려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지 모릅니다. 모두 새해 소망이라는 보따리에 뭔가 자꾸 채우려고만 했지 도대체 조금도 비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모든 소망과 맹세가 해마다 반복되는 용두사미가 아니었는지요. 그리하여 새해 첫날부터 지리산을 찾아와 4박5일간 단식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입니다. ‘먼저 창자를 비우지 않고 어찌 마음을 비울 수 있겠는가. 욕망, 그 모든 욕구는 이 몸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메스를 사용하지 않는 내장수술, 가장 완벽하고 섬세한 만병통치 요법’이라는 단식을 새해의 화두로 삼은 것이지요.

문득 신경림 선생의 시 <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가 떠오릅니다.
‘이쯤 해서 길을 잃어야겠다 / 돌아가길 단념하고 낯선 길 처마 밑에 쪼그려 앉자 / 들리는 말 뜻 몰라 얼마나 자유스러우냐 / 지나는 행인에게 두 손 벌려 구걸도 하고 / 동전 몇 닢 떨어질 검은 손바닥 / 그 손바닥에 그어진 굵은 손금 / 그 뜻을 모른들 무슨 소용이랴’.

신경림 선생의 일갈 ‘이쯤 해서 길을 잃어야겠다’는 선언은 그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지요. 모두 길 위에서 잃은 길을 찾느라 몸부림치고, 뭔가 더 채우려고만 발버둥치는 가운데 새해 소망을 ‘이쯤 해서 길을 잃어야겠다’로 정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사실 우리는 날마다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보니 참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바로 이러할 때 ‘이쯤 해서 길을 잃어야겠다’는 다짐은 얼마나 멋진 역설의 소망인지요.

오히려 길을 잃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에게 마침내 환한 길이 열리고, 비우고 또 비움으로써 마침내 더불어 채워지는 이 행복의 실체가 내내 궁금한 새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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