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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호>날 부르는 이 누구인가

200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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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길어지자 자주 땡감들이 떨어집니다.

‘한밤중에/ 날 부르는 이 누구인가/ 발소리 죽이며/ 지리산까지 찾아와/ 봉창문을 두드리는 이 누구인가//(중략)
슬레이트 지붕 위의/ 감나무 어르신/ 투둑 툭/ 섣부른 땡감들만 떨어뜨리네//
제 몸무게도 못 이겨/ 밤마다 스러지는 청춘들이여/ 정녕 그대는 나의 누구인가.’
-졸시 ‘날 부르는 이 누구인가’

밤마다 황급히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을 후려치며 투둑 툭 떨어지는 땡감들이 나를 깨운 것이지요. 떨어진 땡감들을 손에 들고 바라보니 그 푸른빛 속에 수많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참으로 떫은 세상을 못 견디고 스러져간 젊은 벗들과 불의의 사고로 먼 길을 떠난 불귀의 객들.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액체의 전생에서 고체의 이승으로, 그리고 기체의 저승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물이었다가 나무로 자라 마침내 향기로 남는 일이 아닐까요. 때 이른 죽음들을 두고 나는 떫디떫은 땡감들이 삭아 마침내 감식초가 되는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얼마 전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 길을 떠난 화개골 산록차의 박 선생도 그러하겠지요. 떫디떫은 세상에 온몸으로 떫은 땡감이 되어 살다가 홀연히 감식초의 길을 가고 만 것이 아니겠는지요. 살아서 험했던 날들도 이제는 살아남은 이의 기억 속에 감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슬픔으로 자리하겠지요. 박 선생도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며 떨어지는 땡감이 아닙니다. 영안실에서 어린 막내아들 균이가 울면서 하는 말이 내내 가슴을 칩니다. “그런데 아저씨, 왜 죽었다고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고 해요. 아빠하고는 아직 10년밖에 못살았어요.” 문득 말문이 막혀 아직 어린 균이를 꼭 껴안을 수밖에 없었지요.
언젠가 쓴 적이 있는 ‘먼 길’이라는 시가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돌담 위의 굴뚝새야/ 앞 도랑의 버들치야// 강 건너/ 산 넘어 간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그곳에도/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 한 번 가보는 것이다// 저승길이 대문 밖이니/ 인연이 다했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먼저 가서/ 기다리는 사람들/ 저 세상에/ 더 많지 않겠느냐.’

그러나 이 시와는 달리 우리는 나날이 죽어가면서도 아직 죽음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불타는 집이요, 오늘 새벽에도 땡감 떨어지는 소리가 나를 깨웁니다. 밤마다 날 부르는 이 누구이며, 그대를 부르는 이 또한 누구인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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