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콘텐츠 영역

<제48호>구랑리역, 추억 속의 간이역

2006.09.20
뉴스레터 구독
말하기 속도

본문 듣기를 종료하였습니다.

글자크기 설정
목록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오랜만에 나의 고향 경북 문경을 찾았습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문경새재의 주흘산은 여여한데, 어느덧 내 나이는 일찍 가신 아버지를 따라잡았습니다.
세월이라는 기차는 아직 어린 나를 태우고 철커덩 철커덩 세상 밖으로 나가더니, 문득 이렇게 두서없이 돌아와 구랑리역에 내팽개치고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구랑리역, 점촌역발 가은행의 마지막 간이역이자 소년기에 머물던 내 인생의 간이역.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은 지 이미 오래여서 레일은 녹이 슬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 태어나는 신생의 아이들도 더 이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철길 위에 엎드려 녹슨 레일에 귀를 대보면, 어느새 추억 속의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와 힘차게 기적 소리를 울리며 철교를 건너 코뿔소처럼 달려오고 있습니다. 기차는 하루에 여섯 번밖에 서지 않았지요. 새벽기차와 아침저녁의 통학열차, 점심 무렵의 왕복열차, 그리고 밤기차가 전부였지요. 구랑리 사람들의 일상은 첫차의 기적소리로부터 시작해 막차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면서 끝이 났습니다.

기차는 통학이나 장을 보러 가는 교통수단으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이 마을의 시간을 지배하는 시계이자 바깥세상의 소식과 풍문을 전해주는 우편배달부였지요.

내 기억 속의 구랑리역은 초등학교 시절에 한해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구랑리역 앞 ‘작약꽃밭의 악동’으로 말입니다. 어머님이 기차역 주변 600여 평의 밭에 작약을 심어놓았는데 해마다 봄이면 그 작약꽃밭이 장관이었습니다. 당연히 여고생들의 주요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말하자면 나는 누나들이 흠모하는 국어선생님께 바칠 꽃들을 지키는 이른 아침의 ‘꽃지기’였던 것입니다.

기차가 머무는 30초 동안, 여고생 누나들이 우르르 몰려와 순식간에 꽃을 꺾어 다시 기차에 오르면 나는 분을 참지 못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지요. 그러나 그것도 내가 늦잠을 잔 날이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침마다 참매 ‘벼랑이’를 어깨에 앉히고 송아지만한 ‘불개’를 꽃밭 주변에 풀어놓은 채 통학기차를 기다렸지요. 누나들은 감히 기차에서 내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차창을 열어 내게 미인계나 껌 등의 물량공세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다고 모두에게 꽃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야, 작약꽃밭의 악동! 한 송이만… 선생님 드릴 거야.”
“안 돼, 누나는 안 돼. 저번에도 훔쳐갔잖아! 오늘은 저기 저 예쁜 누나 줄 거야.”
이렇게 나는 아침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누나 한 명을 골라 미리 준비해둔 꽃다발을 차창 너머로 전해주곤 했습니다. 매일 바뀌는 주인공 누나와 작약꽃 한 다발이 날마다 통학열차를 달리게 했지요.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열두 살이 되기도 전에 여고생들의 ‘스타’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주 잠깐 기차가 머무는 구랑리역의 봄날 아침, 나는 ‘헌화가’ 속의 늙은이가 아니라 아직 사춘기도 못된 애송이가 되어 불우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작약꽃밭의 악동’입니다. 아니, 언제까지나 지리산 야생화를 지키는 악동이고 싶습니다.     
[RIGHT]<시인>[/RIGHT]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는 담당자와 협의한 후에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책브리핑 공공누리 담당자 안내 닫기

이전다음기사

정책브리핑 게시물 운영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게시물은 삭제 또는 계정이 차단 될 수 있습니다.

  • 1. 타인의 메일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 또는 해당 정보를 게재하는 경우
  • 2.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경우
  • 3.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시키는 경우
  • 4. 욕설 및 비속어의 사용 및 특정 인종, 성별, 지역 또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용어를 게시하는 경우
  • 5. 불법복제, 바이러스, 해킹 등을 조장하는 내용인 경우
  • 6.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광고 또는 특정 개인(단체)의 홍보성 글인 경우
  • 7. 타인의 저작물(기사, 사진 등 링크)을 무단으로 게시하여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글
  • 8. 범죄와 관련있거나 범죄를 유도하는 행위 및 관련 내용을 게시한 경우
  • 9. 공인이나 특정이슈와 관련된 당사자 및 당사자의 주변인, 지인 등을 가장 또는 사칭하여 글을 게시하는 경우
  • 10. 해당 기사나 게시글의 내용과 관련없는 특정 의견, 주장, 정보 등을 게시하는 경우
  • 11. 동일한 제목, 내용의 글 또는 일부분만 변경해서 글을 반복 게재하는 경우
  • 12. 기타 관계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 13. 수사기관 등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는 경우
뉴스레터 구독

히단 배너 영역

정책 NOW, MY 맞춤뉴스

정책 NOW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실시간 인기뉴스 10.24. 03:47 기준

  1. 정부, '초광역특구법 제정' 추진…역대 최대 320여개 규제특례 담는다 순위동일
  2. 탄소중립 영향 선제 지원…'정의로운전환 특별지구' 지정 기준 마련 단계상승 1
  3. 부총리, 영등포 행복주택 방문…"주거안정에 가용자원 집중 투입" 단계상승 2
  4. 금융위, 여신전문금융사의 부동산·건설업 관련 대출한도 규제 강화 NEW
  5. 행안부, 태풍 '참피'·호우 대비 강풍 취약시설 사전 점검 지시 NEW
  6. 병역·출산 땐 창업지원 최대 5년 연장…행정서류 2756개 줄인다 NEW

인기, 최신, 오늘의 영상 , 오늘의 사진

오늘의 멀티미디어

정책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