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 없습니다.”
이 짤막한 대사는 만삭인 마리아와 남편 요셉이 예수를 낳기 위해 여관을 찾아다닐 때 빈 방이 있느냐고 물으면 없다고 답하는 짧은 장면이었습니다. 덕구는 역할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대사를 외웠습니다.
“빈 바이 없습니다. 빈 바이 없습니다.”
‘빈 바이’가 아니고 ‘빈방’이라고 아무리 귀가 따갑도록 이야기해 주어도 그 말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선생님은 덕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연극을 망칠까 싶어 조마조마했습니다.
드디어 연극의 막이 오르자 덕구의 차례가 왔습니다.
“빈 방 있습니까?”
“빈 방… 없… 습니다….”
흐지부지 말을 끝낸 덕구는 돌아가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다시 말을 합니다.
“빈 방 있어요. 방이 있어요. 이리로 오세요….”
순간 단원들이 술렁이며 무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연극은 서둘러 막을 내렸고 아이들은 덕구를 몰아세우며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연극을 망쳐 놓은 덕구는 홀로 무대에 앉아 자책하면서도 자신은 도저히 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만삭의 마리아를 어떻게 외면하느냐고…. 방이 없으면 자기 방이라도 내주어야 한다고….
해마다 이맘때면 잔잔한 감동을 주는 크리스마스 성극 <빈 방 없습니까>의 줄거리입니다. 덕구의 그 대책 없이 착한 마음이 영리하고 단단한 현대인의 마음을 올해도 조용히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내 계획대로라면… 올해는 고마운 지인들에게 간단하게나마 카드로 연말 인사를 할 작정입니다.
나의 마음에 슬며시 덕구의 마음이 들어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할아버지와 친구도 없이 꿈도 없이 사는 소년의 멍한 눈동자를 어떻게 못 본 척하느냐고, 무상으로 배급받은 연탄을 아끼려고 불구멍을 닫고 있는 할아버지의 거친 빈손에 어떻게 없다고 말하느냐고, 겉이 멀쩡해 손가락질받는 노숙자들의 추락해 버린 소망의 아픈 마음들이 어떻게 안 보이느냐고….
감독의 연출처럼, 나의 가계부 사정을 보면 없다고 해야 순조로울 것입니다. 그래야 많은 것들이 착오 없이 진행될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이성적인 생각 위에 덕구의 이 엉뚱한 말이 자꾸 메아리칩니다.
“ 마음들이 다 꽉 찼어요. 빈 마음이 없어요. 내 마음을 드릴게요. 여기 빈 마음 있어요. 이리 오세요.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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