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와 종이가 혼인을 해 자식을 낳으니 그것이 바로 맑은 바람이다.’
우리 선조는 부채를 놓고 이 같은 시조 한 수를 지었다. 또 ‘여름 생색은 부채요, 겨울 생색은 달력이라(鄕中生色 夏扇冬曆)’는 말처럼 더위가 시작되는 음력 5월 5일 단오가 되면 지인이나 이웃에 부채를 선물하곤 했다. 우리의 전통 부채는 그 쓰임새가 다양했는데 여덟 가지 쓰임새를 일컬어 팔덕선(八德扇)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나는 비를 가려 젖지 않게 해주는 것, 둘째는 파리나 모기를 쫓아주는 것, 셋째는 땅바닥에 앉을 때 깔개가 되어주는 것, 넷째는 여름날 땡볕을 가려주는 것, 다섯째는 방향을 가리킬 때 지시봉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여섯째는 사람을 오라고 할 때 손짓을 대신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빚쟁이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얼굴을 가려주는 것, 여덟째는 남녀가 내외할 때 서로 얼굴을 가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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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이뿐인가. 시조라도 한 곡 하려면 부채로 장단을 맞추거나 펼쳤다 접었다 해가며 풍류와 멋을 즐겼고 호신용으로도 한몫했다.
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꿀잠을 자는 어린 손자에게 쉴 새 없이 부쳐 주시던 할머니의 사랑을 우리는 기억한다. 부채 바람에 고단한 삶까지 날렸던 어머니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 부채가 이제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에 밀려 미술관이나 인사동 거리, 공예품 전시관을 찾아야만 만날 수 있는 ‘귀하신’ 몸이 됐다.
[RIGHT]사진 안홍범 | 글 권태욱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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