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다섯 칸 ‘망댕이 사기요’의 맨 아래 있는 작은 가마에 불이 지펴졌다. “넣어~” 가마 앞에 앉아 불꽃을 지켜보던 백산 김정옥(67) 사기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를 잇고 있는 외아들 김경식 명인이 가마의 너비에 맞게 잘라온 소나무를 불구멍에 밀어 넣는다. 까치구멍 입구에서 심심해하던 불기둥이 다시 솟아오르며 활개를 친다. 앞으로 14시간이다. 그동안 “넣어~”와 ‘넣기’를 반복하며 1300도의 높은 온도를 유지해주면 물과 흙과 불이 조화를 이룬 ‘보물’이 나온다. 한번 가마에 불을 때면 150~200개 정도의 그릇을 건질 수 있지만 이 중 작품이라 할 만한 것은 대여섯 점뿐이다. 물론 가격은 이 작품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7대를 이어오고 있는 김 사기장은 국내 유일의 사기 부문 중요무형문화재다. 학비가 없어 중학교를 중퇴한 김 명장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83년 경북공예품경진대회에서 입선한 뒤부터다. 1991년에는 조선에서 가져다 국보로 삼은 일본의 ‘정호다완’을 재현해 도예부문 최고 명장이 됐다.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으로 지정된 것은 199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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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기장 작품은 간혹 여성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특별한 기교를 사용하지 않아 정갈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거친 사질토로 만들어진 비파색 정호다완의 경우 작은 사발이지만 “웅장한 느낌을 주는 균형감이 신비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레를 빚을 때 생긴 손자국은 마치 굽은 대나무 마디를 보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일본은 물론 미국 등 외국에서 더욱 빛이 났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을 비롯해 캐나다 왕립박물관, 독일 베를린 동아시아박물관 등이 김 사기장과 그의 작품을 모셔갔다. 지금도 일본에 가면 ‘한국의 인간국보’가 왔다며 시장이나 시의장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마련할 정도로 대접이 융숭하기 그지없다.
사실 가업에 대한 사명감보다는 먹고살기 위해 놓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김 사기장은 지금 생각하면 운명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김운희)가 관요에 징발돼 곤지암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많이 달랐을 기라. 또 아버지(김교수)가 난리통에 가마를 버렸다면 ‘문경 망댕이 사기요’도 남아 있지 못했을 기고.”
김 사기장이 문경읍 진안리로 나오기 전까지 사용하던 관음리의 ‘문경 망댕이 사기요’는 5대조인 김영수 선생이 1843년에 만든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마이기도 하다. 일제의 탄압에 전쟁통에 산업화에 전국의 가마가 다 허물어져버렸지만 ‘문경 망댕이 사기요’는 조상들의 자부심과 고집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찻사발이 대접받기 전까지 도공의 삶은 고단했는 기라. 비록 주변에 도자기 빚기에 알맞은 흙과 물과 나무가 있고 교통이 좋아 도자기의 고장이 되었다고 하지만 산속이라 마땅한 운송수단이 없다보니 지게로 모든 재료를 날라야 했제. 젖은 흙을 지고 몇 십리를 걷다보면 흙이 다져져 위에 찰랑찰랑 물이 고이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끔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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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문경의 사기장은 23명. 영남요 김정옥 사기장을 비롯해 문경요의 천한봉 명장, 묵심요의 이학천 명장 등 전국 5명의 명장 중 3명이 문경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 흙을 지게에 지고 나를 일도, 나무를 하러 산속을 헤맬 일도 없지만 문경의 도공들은 여전히 전통방식의 장작가마를 고집한다. 왜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김 사기장의 대답은 명쾌하다. 선조들의 작품을 재현, 전승하려면 그때 그 방식 그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또 왜 옛날 작품을 하느냐고 물어. 그럼 또 대답허제.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기라고. 일본이나 영국이나 독일은 할 수 없는 우리만의 작품이라고. 일본 사람이 좋아하든 말든 그건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닌 기라.”
[RIGHT]사진 안홍범 / 글 신동섭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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