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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오늘 되찾은 서울

광화문 광장서 ‘서울수복 60주년 및 국군의 날 기념식’

2010.09.28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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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서울은 6.25 전쟁이 발발한지 3일 만에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졌고, 9월 28일 수복 전까지 암흑 세상이었다.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자마자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하던 좌익 세력을 앞세워 공산 통치를 실행해 갔다.

모윤숙(시인) 등 당시 상황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 및 기록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투옥되거나 피신해 있었던 좌익 세력은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북한군을 열렬히 환영하며 본색을 드러냈다고 한다.

북한군은 서울 등 남한 각지에 남한 출신 좌익을 적극 참여시켜 북한식 통치조직을 구성해 갔다. 인민위원회, 내무서(경찰조직), 자위대, 여성동맹, 농민동맹 등 각종 사회단체 등이 그것이다.

북한 통치조직에 참여한 남한 좌익들은 대한민국 붕괴에 앞장섰다. 이들은 북한군을 도와 경찰, 군인가족 등을 색출해 무단 처단하거나 인민재판을 통해 즉격 처형했다. 젊은이들은 의용군으로 동원해 총알받이로 활용하고, 유력인사를 체포해 납북하는데도 앞장섰다.

공산치하의 서울은 통치의 주체는 북한이었지만 실질적 통치 집행은 남한 좌익이었고, 이들의 악독함은 북한군을 무색케 했다. 북한군은 경찰, 군인 등 대한민국 세력의 제거를 좌익에게 맡겼고, 좌익들은 이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좌익들은 동네의 누가 경찰 및 군인가족이고, 지주, 자본가인지 훤히 알고 있었다. 이른바 ‘반동분자’들의 집과 숨을 곳을 알고 찾는 일도 그들의 몫이었다. 북한군들은 좌익들이 다시 북한군을 배신하고 대한민국 동조세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60년 전 오늘, 암흑에서 광명을 찾다

국군의 서울 수복은 공산 통치에서 신음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광명을 찾아준 사건이었다. 서울을 내주고 낙동강까지 밀렸던 국군은 유엔군과 낙동강에서 교두보를 마련하고, 9월 15일 미 10군단과 17연대 등이 4시간 만에 인천 월미도를 점령한데 이어 하루만에 인천 상륙에 성공해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인천 상륙작전을 계기로 워커 장군이 지휘하는 미 8군은 16일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 반격을 개시해 26일 오산에서 7사단과 합류한 뒤 북진을 계속했다.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한 8군과 국군 17연대도 17일 김포비행장을 점령하고, 한강을 건너 서울로 진격했다.

북한군은 최용건을 서해안 방어사령관으로 임명하고 2만5000명의 병력을 배치해 아군에 저항했지만 아군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국군 17연대와 한미 해병대, 미 7사단은 북한군을 완전히 섬멸하고 28일 서울을 수복했다.

서울 수복 후 중앙청에 게양된 태극기,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원수, 1950년 10월 1일 국군 1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모습, 평양에서 시민의 환영을 받는 이승만 대통령(시계방향순)
서울 수복 후 중앙청에 게양된 태극기,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원수, 1950년 10월 1일 국군 1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모습, 평양에서 시민의 환영을 받는 이승만 대통령(시계방향순)
 
서울 수복 후 북진, 10월 1일 국군의 날 제정

서울을 탈환한 유엔군 맥아더 원수는 9월 30일 적에게 최후의 항복 권고를 했으나, 북한군은 이를 일축하고 계속 저항해 왔다. 유엔군은 북진을 결정하고, 국군 1군단이 10월 1일 최초로 38선을 돌파하고, 중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도 38선을 돌파해 북진을 계속했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했다.

북한군은 주력을 청천강 전선에 재배치하고 대동강선에서 지연전을 전개했으나, 국군과 유엔군은 적을 제압하고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했다.
동부전선의 국군과 유엔군도 10월 10일 원산, 17일 함흥을 거쳐 11월 25일 청진에, 국군 17연대는 11월 21일 혜산에 입성했다. 중부전선의 미 7사단과 8사단은 10월 21일 평북 순천, 23일 덕천에, 6사단은 26일 초산을 점령하며 한만 국경선에 도달했다.

위기감을 느낀 북한군은 중국에 원군을 요청했고, 마오쩌뚱은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국군과 유엔군을 밀어냈다. 이에 아군은 1.4 후퇴를 거쳐 서울을 내주고, 다음달 총반격을 개시해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했다.

서울 수복 60년, 6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거행

서울이 수복된지 60년이 지난 2010년 9월 28일,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3부요인, 각군 수뇌부, 시민 등 6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시 서울 수복의 기쁨을 재현하는 ‘서울수복 60주년 및 국군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특히 올해 기념식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세계 주요국 정상이 서울에 모이는 G20정상회의를 40여 일 앞둔 시점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컸다. 행사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서울이 만약 수복되지 못하고 공산 치하에 남아 있었다면 G20정상회의 개최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광화문 광장을 행진하는 육사생도
광화문 광장을 행진하는 육사생도.

이어 열린 참전용사, 각군 의장대 및 사관학교 생도와 군악대, 군기단 등 1500명의 병력이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까지 퍼레이드를 펼쳐 시민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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