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 |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나라에 공적이 있는 공신들의 신주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종묘제례는 왕실 차원에서 거행하는 장엄한 국가제사이며, 임금이 친히 받드는 존엄한 길례였다.
유교가 국가의 근본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조상에 대한 숭배를 인간의 도리이자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법도로 여겨 제사를 특히 중시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나라를 건국하고 번영시킨 왕과 왕실의 조상과 국가 발전에 공헌한 문무대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종묘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를 드릴 때 의식을 장엄하게 치르기 위하여 연주하는 기악(樂)과 노래(歌), 춤(舞)을 말한다. 이는 조선 세종 때 궁중희례연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시적으로 약화되었으나 광해군 때 점차 복구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판소리 |
판소리는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피지배층 삶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판소리는 모든 계층이 두루 즐기는 예술로, 판소리를 통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서로의 생각을 조절하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절과 통합의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강릉단오제 |
음력 4월 5일 신주빚기로 시작하여 4월 15일에 대관령에 올라가 국사성황사에서 성황신을 모셔 강릉시내 국사여성황사에 봉안한 뒤 5월 3일부터 7일 저녁 송신제까지 강릉시내 남대천 변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단오제 행사를 벌이는, 장장 30일 이상에 걸친 축제다. 제례, 단오굿, 가면극, 농악, 농요 등 예술성이 뛰어난 다양한 무형문화유산과 함께 그네뛰기, 씨름, 창포머리감기, 수리취떡먹기 등 한국의 역사와 독창적인 풍속이 전승되는 축제의 장이다.
강강술래는 노래(song), 무용(dance), 음악(music)이 삼위일체의 형태로 이루어진 원시종합예술이다. 춤을 추는 여성들 중에서 노래 잘하는 한 사람이 설소리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뒷소리를 받는 선후창의 형태로 노래하며, 노랫소리에 맞춰 많은 여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전통적으로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절기인 설, 대보름, 단오, 백중, 추석, 9월 중구 밤에 연행되었으며 특히 추석날 밤에 대대적인 강강술래판이 벌어졌다. 밤을 새워가며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노랫말은 여성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민중의 시로 매우 문학성이 풍부한 구비문학이기도 하다.
강강술래 |
남사당놀이는 꼭두쇠(우두머리)를 비롯해 최소 40명에 이르는 남자들로 구성된 유랑연예인인 남사당패가 농·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조선 후기부터 연행했던 놀이이다.
남사당놀이의 특징은 풍자를 통한 현실비판성을 담고 있으며,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놀이를 벌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한 곳의 등·퇴장로를 제외한 원형 공간만 있으면 주위에 구경꾼들이 앉아 공연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놀이판은 철저히 열린 판이 된다.
영산재는 49재(사람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의 한 형태로, 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행한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을 오늘날에 재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전에는 사흘 낮과 밤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근래에는 규모가 축소되어 하루 동안 이루어진다.
영산재 |
바다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제주 어민에게 ‘영등굿’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등 시기가 돌아오면 제주도 곳곳에서는 영등굿을 행하며, 바다의 평화와 풍어를 기원한다. 이 수많은 영등굿 중에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펼쳐지는 굿이 바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된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다. 건입동은 제주도의 작은 어촌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 있는 굿이며,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의 굿이라는 점에서 그 특이성과 학술적 가치가 있다.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 |
처용무란 처용 가면을 쓰고 추는 춤을 말한다. 궁중무용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오방처용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 헌강왕(재위 875∼886) 때 살던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물리쳤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춤의 내용은 음양오행설의 기본정신을 기초로 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춤사위는 화려하고 현란하며, 당당하고 활기찬 움직임 속에서 씩씩하고 호탕한 모습을 엿볼 수 있고, 가면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처용무 |
가곡은 시조(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에 곡을 붙여서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으로, ‘삭대엽(數大葉)’ 또는 ‘노래’라고도 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가곡은 우조, 계면조를 포함하여 남창 26곡, 여창 15곡 등 모두 41곡이지만, 이 가운데 여창은 남창가곡을 여자가 부를 수 있도록 조금 변형시킨 것으로 남창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여창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선율과 높은 음역의 속성(가성)을 내는 점이 다르다.
매사냥은 매를 훈련하여 야생 상태에 있는 먹이를 잡는 방식으로 4천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발원하여 무역과 문화교류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에 매사냥은 식량 확보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자연과의 융화를 추구하는 야외활동으로 자리매김했으며 60개 이상 국가에서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함께 아랍에미리트(UAE), 벨기에, 체코, 프랑스, 모로코, 카타르,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스페인, 몽골 등 11개국이 참여해 공동등재를 신청해 통과됐다.
매사냥 |
대한민국에서는 나무를 다루는 사람을 전통적으로 목장, 목공, 목수라 불렀다. 기록상으로 보면 목장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이 목장 가운데 궁궐이나 사찰 또는 가옥을 짓고 건축과 관계된 일을 대목(大木)이라 불렀고, 그 일을 하는 장인을 대목장(大木匠)이라 불렀다. 설계, 시공, 감리 등 나무를 재료로 하여 집을 짓는 전 과정을 책임지는 장인으로, 오늘날 건축가를 일컫는 전통적 명칭이 대목장이다.
줄타기는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놀이이다. 줄 위를 마치 얼음 지치듯 미끄러지며 나가는 재주라고 하여 ‘어름’ 또는 ‘줄얼음타기’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줄타기는 외국의 줄타기와 달리 줄만 타는 몸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노래와 재담을 곁들여, 줄 타는 사람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진 놀이판을 이끄는 특징이 있다.
줄타기 |
택견은 우리나라 전통무술의 하나로, 유연한 동작으로 손과 발을 순간적으로 우쭐거려 생기는 탄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기 몸을 방어하는 무술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택견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삼국시대부터 이미 택견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무인들 사이에서 성행하는 무예로 발전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중화되어 무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널리 행하게 되었다.
택견은 언제나 우리 산하의 모습처럼 부드럽게 춤을 추듯 굼실대다 순간 몸을 놀려 탄력 있게 공방을 이루어낸다. 처마 끝 풍경을 울리고 달아나는 바람처럼 여유 있게 우쭐대며 가볍게 상대를 제압한다. 또한 공방의 어느 한 가지에만 치우치지 않고, 단순한 자세로 멈추어 있지도 않는다. 경쟁자를 쓰러뜨리는 무술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무술이며 정신 수양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격투기와는 다르다.
택견 |
한산모시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만드는 모시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하여 모시의 대명사로 불린다. 모시는 모시풀 껍질 벗긴 것을 재료로 하여 만든다. 한산 지역에서 모시짜기가 성행한 이유는 이 지역이 모시풀의 생장조건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모시는 여름철에 기온이 높고(평균 섭씨 20~24도) 연평균 강수량이 1천밀리미터 이상이면서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속성이 있는데, 서해안을 끼고 있는 한산 지역 일대가 이런 조건의 최적지이다. 제작과정은 크게 재배와 수확, 태모시 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굿 만들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모시표백 순으로 이루어진다.
한산모시짜기 |
[글·사진: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