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이 5년 3개월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온다. 지난 2008년 2월 방화로 훼손된 숭례문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등 각분야의 최고의 장인들이 총 동원돼 복구됐다. 특히 전통기법과 재료로 복구하기 위해 다양한 고증과 연구조사를 수행해 복구과정에 반영했다. 조선 시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위용을 되찾은 숭례문 복구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살펴본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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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욱 숭례문 복구자문단 기술분과 위원 |
숭례문은 한양이 서울의 수도로 자리 잡은 1398년(조선 태조7)에 처음 지어졌으며 건립 이후 조선왕조 수도의 얼굴로 그 역할을 해냈다. 문에는 종이 걸려 아침저녁 종소리에 맞추어 성문을 여닫았으며,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또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기청제를 지내는 등 나라의 중요한 제례도 여기서 지냈다. 역대 임금들이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도성 밖을 나설 때면 이 문을 지났으며, 중국 사신이 오면 이 문을 통해 궁궐에 가서 임금을 뵈었다. 그 만큼 숭례문은 조선왕조 5백년을 지나면서 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이 문은 처음 지어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습지 때문에 건물이 기울어졌다. 1448년(세종30)에 와서 근처에 연못을 파서 물을 빼내고 건물은 전면적으로 다시 지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숭례문의 모습은 바로 이때의 것이다.
세종시대는 조선왕조의 모든 문물이 질서를 잡고 과학적인 창의정신이 넘쳐나던 때였는데, 이런 시대 분위기는 당대 건축물에도 그대로 반영되게 마련이었다. 숭례문은 기둥이 비교적 굵고 지붕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건물 건체가 안정감을 갖추고 있으면서 세부에서는 정교하면서 날렵한 곡선미를 갖추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물 전체와 각 세부가 서로 적절한 조화미를 갖춘 점에 숭례문의 건축 특징이 드러나 있으며 이것은 세종시대의 예술적 특성이기도 하다.
숭례문은 현존하는 서울의 역사적인 건축물 중에 건립 연대가 가장 오래며 또 전국 곳곳에 지어진 성문가운데서도 역사가 가장 오랠 뿐 아니라 건물의 규모에서도 으뜸 되는 위치에 있다. 1962년 숭례문이 국보로 지정된 까닭도 이런 숭례문이 지닌 역사적 의의나 건축적인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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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은 1950년에 벌어진 한국전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건물 곳곳은 총탄자국으로 얼룩지고 지붕은 크게 퇴락하고 집은 기울었다. 그 때문에 1961년부터 본격적인 수리에 들어갔다. 이 때는 아직 우리 손으로 역사적인 건축물을 수리하는 경험이 부족했으며 전문 기술인력도 넉넉하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만 2년여의 작업 끝에 1963년에 수리작업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젊은 기술자들이 모여들어 문화재 수리에 대한 소중한 경험들을 익힌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소득이었다.
2008년 숭례문의 화재 사건 직후에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은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복구대책을 수립하고 곧바로 복구 작업에 착수하였다. 1963년의 수리공사 때 참여했던 전문가들이나 기술자들이 다시 모였다. 건물을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하기 위한 고증분과 위원이 구성되고 또 기술적인 제반 문제들을 검토하고 판단하기 위한 기술분과 위원들이 구성되어 문화재청의 담당관들과 토의에 토의를 거쳤다.
1963년 홍안의 청년으로 목수일에 참여했던 신응수 목수는 이번 복구에서는 건물을 다시 세우는 작업을 총괄하는 대목장으로 나섰다. 1963년 수리시에 작성했던 수리공사 용 도면이 잘 남아있어서 큰 참고가 되었으며 그 후에도 건물 세부를 일일이 측량해서 그려놓은 상세한 실측도면이 있었기 때문에 공사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욕심을 내어 제반 작업 과정을 가급적 조선시대와 같이 인력으로 자재를 다듬고 짜 맞추는 방식을 선택했다. 또 건물에 사용되는 철물도 현장에 대장간을 설치해서 풀무질을 해가며 조선시대 방식대로 철물을 제작했다. 단청도 근래 많이 쓰던 화학안료를 최소화하고 가급적 천연안료를 사용하여 공해에 강하고 단청 본래의 색조가 살아나도록 하는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작업은 비용이 많이 들고 공사 기간이 길어지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적어도 숭례문에서만은 비용이나 공사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복구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애썼다. 드디어 만 5년에 걸친 오랜 작업 끝에 2013년 5월, 숭례문은 화재의 참화를 딛고 당당하게 다시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오히려 화재 전에 끊어져 있던 좌우 성벽의 일부 구간도 복구되어 성문 본연의 모습을 갖추었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다른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은 우리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유산의 보존은 그 동안은 일부 전문가들의 사이에서만 일이 진행되는 정도이고 일반 국민들로부터 큰 관심과 이해를 얻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숭례문의 화재사건은 이런 분위기를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일반인들 누구나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나 중요성에 대해 그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하겠다. 문화유산의 보존은 일부 전문가나 정부 몇몇 부처의 노력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한계가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문화유산 보존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아끼는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문화유산을 이어 주는 일이 가능하다. 이번 숭례문 복구가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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