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노력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금속재료 기능장으로 거듭난 노성훈 씨. |
“안녕하세요, 노성훈입니다.”
순박한 얼굴에 꾸밈없는 미소. 올해 서른둘, 경남 창원에 소재한 국내 굴지의 중공업 업체에서 근무하는 금속재료 기능장 노성훈 씨의 첫인상이다.
노 씨는 지난 6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한 ‘국가자격 취득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두 달간 진행됐던 이번 공모전에서는 국가자격을 취득한 후 취업 또는 창업에 성공했거나 직장 내에서 새로이 업무능력을 인정받은 경우 등 다양한 사례 총 125편이 접수돼 최우수작 1편과 우수작 3편이 가려졌다.
“학력이 아닌 기술로 취업하기 위해 노력했고, 자격증으로 실력을 증명한 사연이 진솔하게 담겼다”는 심사평을 받은 노 씨의 수기에는 고교 졸업 후 어려움을 겪다 전문대에 진학,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기업에 취업해 또다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도전과 좌절, 성공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져 있다.
실력 부족 절감…전문대 진학 후 자격증에 도전
인천의 한 가정에서 2남 1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난 노 씨는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얼른 취직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공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학년 때부터는 자격증에 도전해 졸업 전까지 자동차정비기능사, 자동차검사기능사, 건설기계기관정비기능사, 굴삭기운전기능사 등 자격증 4개를 취득했다. 여느 동기들이 자격증 1, 2개만 들고 졸업하는 것에 비하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기능사’ 자격증만으로는 현장에서 대접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부터 현장실습 겸 자동차 정비업소에 취업한 노 씨는 늘 세차담당이었다. 잡다한 일만 맡겨질 뿐 차량을 점검하며 실력을 키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호칭도 이름 대신 ‘야’, ‘너’로 불리기 일쑤였다. 업체 몇 곳을 전전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그러다 입영통지서가 날아와 정비병으로 2년간 복무를 마치고 전역, 다시 자동차 정비업소에 취업했지만 급여만 조금 올랐을 뿐 대우는 여전했다. 그러던 중 2004년 여름 그의 인생을 바꾸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딱 요즘같이 엄청나게 무더운 날씨였어요. 정비업소 사장이 저에게 폐오일을 처리하라고 했죠. 펌프를 작동시키자 장치 안에 있던 폐오일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제 얼굴로 쏟아졌습니다. 석유 유출사고 현장의 갈매기처럼 저는 시커먼 기름범벅이 됐죠. 그런데 사장과 선배들은 기계만 살피고, 오히려 제게는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저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그날 이후 노 씨는 ‘실력을 쌓아 기술로 성공해야겠다’고 결심, 정비업소를 그만두고 2005년 3월 인하공업전문대 금속재료과 야간학부(2년제)에 입학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6년 졸업예정자 자격으로 금속재료 산업기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한 번에 합격했다. 산업기사 자격시험은 기능사 자격증 소유자의 경우 경력 1년, 실무 경력만 있을 경우 경력 2년이 필요하나 관련학과 대졸자(졸업 예정자)는 경력 없이 바로 응시할 수 있다.
노 씨는 “기능사 자격증만 있을 때와 달리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니 취업할 수 있는 대상이 달라지더라”며 “이전까지는 꿈도 못 꾸던 대기업에 원서를 내밀 수 있었다”고 말했다.
2년 동안 노력한 만큼 보람도 뒤따랐다. 동시에 여러 대기업에 합격했다. 행복한 고민 끝에 노 씨는 자신이 살던 인천과는 멀지만 금속 관련 기술을 좀 더 배울 수 있는 경남 창원의 두산중공업을 선택했다.
노 씨에게 입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2007년 1월 입사한 그는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중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금속재료 기능장 자격증 취득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기능장은 제가 감히 넘볼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산업기사 자격을 따고 나니 ‘도전하면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노 씨는 2012년부터 기능장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그 전까지는 배울 게 많은 신입사원이라 자격시험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고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인 1만3천톤급 프레스기를 운용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됐다.
달라진 대우에 격세지감…첫 월급 비해 연봉 20배 상승
그는 “무엇보다 고마운 건 저를 믿고 의지해 준 아내였다”고 했다. 세 번의 낙방 끝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네번째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그의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네살배기 아이를 돌보며 도서관으로 향하는 노 씨에게 매일 도시락을 싸줬다.
“실기시험 합격자 발표일이 10월 4일이었는데, 마침 둘째가 10월 2일 태어났어요. 병원에서 아내와 함께 합격통지를 문자메시지로 받았어요. 둘째 순산에 이은 겹경사에 뛸 듯이 기뻤습니다.”
노 씨는 보람과 함께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고3 때 첫 직장에서 월급 30만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20배 넘게 법니다. 자격증으로 제가 가진 기술을 증명한 덕분입니다. 학력이 아닌 실력을 쌓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자격증에 도전한다면 누구나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