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열~”
쓰레기를 모아 이름을 붙여주고, 양말에 동전을 넣어 호신용 무기를 만들고, 좋아하는 이성을 꿈에서 만나는 방법을 연구하고…. 급기야 이것들을 책으로 엮어 라 명명하고 스스로 ‘덕집장’의 자리에 앉은 이 남자.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가 그를 봤다면 분명 “웬열(1980년대 유행하던 ‘웬일’의 조어)”이라 외쳤을 거다.
더쿠(덕후)와 덕집장의 ‘덕’은 지덕체(智德體)의 그것도, 오리(Duck)의 영어 발음도 아니다. 독특하고 기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어 발음과 비슷하게 ‘오덕후’라 바꾸고 한 번 더 줄여 ‘덕후’라 칭한 것. 골방에 박혀 잠자던 덕후들이 스타로 조명받기 시작한 이때, 자신이 덕후의 대표라도 되는 냥 떡하니 그 이름을 잡지에 박아버린 고성배(32) 편집장.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덕질 한번 제대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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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독립잡지 <더쿠>의 고성배 편집장은 매호 혼자 놀기, 집착, 은폐 등 덕후(독특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특성을 주제로 잡지를 펴내고 있다. |
2014년 4월 세상에 첫 ‘발사’된 <더쿠> 1호는 덕후들의 가장 큰 특징인 ‘혼자 놀기’의 방법들을 담았다. ‘방구석 파이터 되기’ 편엔 성룡 주연의 영화 ‘취권’이 유행하던 시절 고 씨가 책을 보며 공부한 취권 기술 51가지를 직접 시연하고 웹캠으로 셀프 촬영한 사진이 들어 있고, ‘1인 밴드 도전하기’ 편엔 리코더로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을 연주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하다하다 할 게 없을 때 하는 ‘청소부 놀이’ 편엔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오는 길에 직접 주운 귤껍질, 담배꽁초, 전단지 등을 ‘정성껏’ 촬영해 넣고 톰, 케이티, 혼다 등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였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덕질. 본격 덕질 장려 잡지를 표방하는 <더쿠>의 모토는 ‘10만 덕후 양성’이다. 고 씨는 잡지를 만들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실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이 덕후예요. 누구나 집중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덕질의 종류가 다른 거죠. 제가 하는 ‘쓸모없는’ 생각들도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에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덕질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잡지를 기획했어요. 덕후를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비웃지 마, 너희도 사실 다 이러고 있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현재 6호까지 제작된 <더쿠>는 매호 덕후들의 특징을 주제로 만들어진다. 집착(2호), 은폐와 엄폐(3호), 방구석 소우주(4호), 오컬트실전마법(5호), 서울미스터리(6호) 등이다. 게임북, 일러스트북, 가이드북 등 매호 콘셉트도 달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인 건 3호. 거기엔 좀비, 태양, 살인마, 빚쟁이를 피해 효과적으로 숨을 수 있도록 고안된 은폐, 엄폐 아이템들이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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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쿠>에는 고 씨가 직접 시연하고 촬영한 취권의 51가지 기술(왼쪽), 살인마를 피해 다른 사람인 척할 때 필요한 흑도화지 수염을 만드는 방법(오른쪽) 등 다양한 ‘덕질’이 소개돼 있다.(사진=더쿠) |
아이템들은 모두 ‘다이소’ 제품을 활용해 고 씨가 직접 만든 것. 못생기게 변장하기 위해 얼굴에 뒤집어 쓸 스타킹, 좀비와 맨손으로 싸울 때 필요한 장갑, 은폐할 곳을 찾을 때 필요한 종이로 만든 동서남북 내비게이션, 흑도화지로 만든 위장용 종이수염 등을 보고 있자면 황당하지만 기발하며, 의미는 없어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결은 별것 아닌 생각을 ‘있어 보이게’ 표현하는 거란다.
잡지 맨 뒷장을 펼쳐보니 에디터·디자인에 물고기 머리, 촬영에 소니A65과 아이폰6, 베타테스터로 월요일마다 보는 카페 주인이 참여했다고 쓰여 있다. 모두 고 씨 자신, 혹은 고 씨가 사용한 장비들을 일컫는 말이다. 1호 때는 다른 에디터들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잡지 색깔이 워낙 강해 이후부터는 기획부터 제작, 유통까지 혼자 다 한다. 완벽한 1인 잡지다. 1000여 종의 독립잡지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비결을 묻자 고 씨는 “<더쿠>는 독특함을 표방하면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재미있고 쉬운 덕질을 알려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가 독립출판을 하게 된 건 몇 년 전, 올해로 16주년을 맞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잡지 <싱클레어>의 제작자가 진행하는 독립잡지 제작 수업을 듣고 나서다. 당시 마케팅 에디터로 일하던 고 씨는 취미 삼아 시작한 일에 푹 빠져 6개월 전부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덕질에 나섰다. 한 권에 6500원짜리 잡지를 한 호당 300부씩 찍어 팔아 딱 ‘먹고살 만큼만’ 번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저를 보고 부럽다고들 해요. 하지만 누구나 저처럼 살 수 있으면서도 두려워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것뿐이죠. 저는 꿈에 젖어 이상만을 좇는 사람이 아니에요. 돈이 부족해지면 다시 직장을 구할 수도 있고요. 다만 지금은 제 인생의 안식년을 즐기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안식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고 씨는 몇 달 전 서울 성동구 응봉동에 작은 카페도 차렸다. ‘국민’학교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장난감과 만화책, 다른 이들이 만든 독립잡지 500여 권이 책장 안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다. 이 밖에도 1970, 80년대 영화 포스터와 LP판, 재래식 타자기 등 주인장의 복고 취향을 보여주는 잡동사니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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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씨가 운영하는 카페 ‘홀리데이 아방궁’에는 재래식 타자기, LP판, 1960~90년대 만화책 등 직접 수집한 골동품들이 가득하다. |
고 씨는 이곳에서 독립잡지 제작 수업도 하고 며칠 전엔 최근 ‘스타워즈’ 7편 개봉을 기념해 전편(4, 5, 6편) 연속 상영회도 열었다. 외로운 덕후들이 모여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기자는 취지다. 그는 앞으로도 외롭고 심심한 사람들을 위해 카페를 다각도로 활용할 방법을 고심 중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카페 이름 ‘홀리데이 아방궁’의 뜻이 무엇이냐 묻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회의 외로운 덕후들과 연합해 아방궁처럼 화려한 안식년을 보내겠다는 뭐, 그런 거창한 의미라도 담겨 있을 거란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친구들이랑 놀러 가다가 본 나이트클럽 이름이에요.”
‘인생은 어차피 죽을 때까지 쓸모없는 짓을 하는 것, 사회가 부여한 의미가 아닌 나만의 의미로 사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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