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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아픈 역사 정리한다는 사명으로 수조 원대 전국 토지보상 새로운 기준 제시

[대한민국 혁신 국민이 누린다] ⑩충북 음성군청 허준회 주무관

2022.02.21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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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군청 허준회 주무관(맨 오른쪽)이 소송을 위해 고문서 등의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제공=충북 음성군청)
충북 음성군청 허준회 주무관(맨 오른쪽)이 소송을 위해 고문서 등의 자료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충북 음성군청)

평범한 공무원이 개인의 신념과 소신으로 나랏돈을 찾기 위해 2년의 시간과 노력, 열정을 쏟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이 놀라운 일을 해낸 사람이 있다. 충북 음성군청에 근무하는 허준회(44) 주무관이 그 주인공이다.

허 주무관은 음성군 소재 도로부지 명의자가 제기한 부당이득금 청구소송에 맞서 2년간 싸운 끝에 결국 승소했고 부당이득금과 토지보상비 7억 5000만 원을 절감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허 주무관의 사례는 전국의 다른 도로 소송에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허 주무관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가 주관하는 ‘2021년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쉽게 가는 길 대신 도전하고 개척하는 길을 선택한 허 주무관의 적극행정 이야기를 들어봤다.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고 싶었다”

“어차피 질 게 뻔한 싸움인데 적당히 보상해주고 끝내면 될 걸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괜히 시간과 노력 들이지 말고 보상해주는 게 어때요?”, “이런 소송은 우리가 무조건 이기니까 그냥 빨리 합의하시죠?(상대측 변호사)”

2년 동안 긴 소송을 진행하면서 허준회 주무관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을 묵묵히 혼자 파헤쳐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허 주무관은 “솔직히 처음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고 사례도 없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사람들의 권유처럼 그냥 보상해주고 싶은 유혹도 컸다”면서도 “하지만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물러서면 앞으로 계속 비슷한 상황이 닥칠 것 같았고 이대로 계속 방치하는 건 분명 잘못된 행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뭔가 해봐야겠다는 오기와 투지 같은 게 끓어올랐다”고 설명했다.

허 주무관을 투지로 불태워 도전하게 만든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음성군청 건설교통과에서 토지보상 업무를 10여 년간 담당하던 허 주무관에게 2018년 11월 소장이 하나 도착했다. 음성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내 도로에 대해 토지 명의인의 후손이 토지 도로사용료를 반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검토해보니 소장에 있는 도로는 1922년 일제강점기에 도로로 편입된 토지였고 추정 보상가는 7억 원의 고액이었다.

“토지보상 업무를 10년 동안 하면서 수많은 토지보상 사례를 접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사건은 아무리 살펴봐도 그 당시에 국가에서 보상이나 어떤 취득 행위가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도로 건과 비슷한 사유지가 120필지 이상 얽혀 있던 터라 이 소송에서 지면 줄줄이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었죠.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가가 다시 땅값과 임대료까지 물어줘야 한다면 국가적 손실이기도 하고 정당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허 주무관이 이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만류하는 눈치였다. 국가 대 개인의 재산권 분쟁을 할 경우 국민의 재산권 보호 때문에 국가가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이런 소송은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허준회 주무관의 2021년 적극행정 대통령상 수상 모습 (사진제공=충북 음성군청)
허준회 주무관의 2021년 적극행정 대통령상 수상 모습 (사진=충북 음성군청)

법학 전공과 토지보상 실무 경험 상승효과

그렇게 시작된 소송은 결코 쉽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산 넘어 산이었다. 100년 전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토지보상과 기부채납 근거 서류를 도대체 어떻게 찾아야 했을까?

“제가 업무적으로 초보였으면 이 소송을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그동안 토지보상 업무를 하면서 소송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에 이번엔 꼭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죠.”

허 주무관은 2년 동안 이 과정을 변호사 없이 혼자 힘으로 처리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사례를 제대로 입증하겠다는 각오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던 것 역시 큰 도움이 됐다. 법에 대한 지식과 토지보상에 대한 실무 경험이 상승효과를 내면서 자신감을 더했다.

소송에서 이기는 방법은 100년이 넘은 토지소유권 증거자료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낮에는 일반 업무를 보고 밤에는 소송 관련 자료를 공부했는데 시간이 부족해 주말까지 반납하고 해당 자료를 찾느라 고군분투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당시 작성된 조선총독부 공문서, 관보 같은 고문서가 한자와 일본어로 돼 있었다는 거죠. 제가 법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한자 해독은 익숙했는데 일본어는 번역기를 돌리거나 주변에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번역했어요.”

무려 2년 동안 일제강점기 도로 소송에 대한 판례와 관련 논문, 전국의 다른 판례들을 수집해 분석하는 고독한 작업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신문 등에 실린 기사를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을 때는 그동안 쌓인 피곤이 싹 가시기도 했다. ‘토지주가 매도를 허락하지 않아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들을 발견한 것이다.

“고문서 발굴에 개인 시간까지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공직자로서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가슴 속 울림이 있었고 국가의 재산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1920~1930년대 언론 기사에서 당시 도로공사 진행 시 토지주와 관계 등에 대한 내용을 찾았다. (사진제공=충북 음성군청)
1920~1930년대 언론 기사에서 당시 도로공사 진행 시 토지주와 관계 등에 대한 내용을 찾았다. (사진=충북 음성군청)

‘사명감’과 ‘몰입’으로 적극행정 임해야

2년 동안 최종 6차 변론까지 갔는데 허 주무관이 제출한 준비서면은 총 93쪽에 달했고 입증자료와 참고자료를 합하면 124건 559쪽에 이르렀다. 한 차례의 변론이 끝나고 다시 반박할 자료를 찾아야 할 때마다 ‘내가 1920년대 땅 주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토지를 관리하던 공무원이었다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막막했던 상황에서도 차츰 길이 보이고 방법이 생겼다. 근거 자료를 발견할 때마다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은 것 같은 짜릿한 기쁨 덕에 고독한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

“토지보상과 관련된 일이 지방자치단체의 단순한 소송이라기보다 과거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뗄 수 없는 일들이잖아요. 조선총독부 시절 소홀하게 이뤄졌던 행정의 뒤처리 작업으로 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 무게감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정리 작업을 하는 데 한 부분을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죠.”

허 주무관은 적극행정을 ‘사명감’과 ‘몰입’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누구라도 한 명이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명감’, 그 일을 끝까지 집중할 수 있는 ‘몰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저는 강을 건널 수 있는 첫 번째 돌을 놓았다고 생각해요. 이 돌이 튼튼해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두 번째 돌을 놓겠죠. 이렇게 하다 보면 우리 모두가 편하게 강을 건널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후회 없이 모두가 이 길을 건넜으면 좋겠어요.”

토지보상에 대한 새로운 기준점 마련

일제강점기 때 각종 도로 개설에 편입된 토지의 상당수는 여전히 사유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후손들의 보상 요구와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소송은 전국 단위로 따지면 수조 원대에 달하는데 대부분 보상이나 기부채납에 대한 근거 서류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소송에서 패소하거나 다시 토지를 매입하는 형태로 조정된다.

물론 일선 공무원들이 과중한 업무 탓에 손쉽게 매수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공공용지는 국민의 재산권 보호 때문에 국가가 취득 경위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크다. 이에 승소 여부는 상당 부분 공무원의 의지와 노력, 법률적 소양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허 주무관이 승소한 도로의 경우 해당 도로에 유사한 사유지가 다수 존재했기 때문에 패소할 경우 다른 사유지들까지 모두 보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밖에 대전지방국토관리청, 충청북도, 경남 의령군 등 관련 기관에서 이 사례를 통해 일제강점기 도로편입용지에 대한 소유권 확보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허 주무관의 승소는 토지보상에 대한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 등 증거 찾아내 승소

토지보상비 7억 5000만 원 세금 절감

허준회 주무관은 결정적 증거들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관보, 공문서 20건, 신문기사 8건 등 총 382쪽의 입증 서면과 참조 판례 23건, 학술논문 3건 등 177쪽의 참고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첫 번째 근거 자료는 해당 도로 노선의 편입 토지 전수조사를 통해 1922년 10월 10일, 1923년 11월 10일에 일률적으로 ‘도로’ 지목으로 변경된 것을 확인하고 이 중 3필지는 1924년 국가가 매수, 등기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당시 정식으로 토지 확보 절차가 있었을 가능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활용됐다.

두 번째 근거 자료는 “토지주가 매도 혹은 승낙에 불응해 공사가 지연된다”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신문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정황과 도로법령에 따라 정식으로 도로가 개설됐음을 설명했다.

세 번째 근거 자료는 조선총독부 관보와 공문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국가가 시장 부지를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고도 진입도로는 등기이전을 하지 않은 사례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당시에 도로부지를 취득하고도 등기를 하지 않았다는 관행에 대한 강력한 근거가 됐다.

법원은 이 같은 자료들을 근거로 ‘당시에 소유권 취득을 위한 적법한 절차를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번 소송으로 음성군은 부당이익금과 토지보상비 7억 5000만 원의 세금 절감은 물론 해당 도로의 다른 사유지에 대해서도 소유권 확보와 보상금액 14억 6000만 원 상당의 세금을 절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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