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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부터 국민 품으로…청와대 역사·경내 주요 유적

2022.05.02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공감>

“5월 10일부터 청와대가 온전히 국민의 공간이 됩니다.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을 비롯해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녹지원과 상춘재까지 모두 국민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청와대의 완전한 개방으로 광화문에서부터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길은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늘 국민 곁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는 5월 10일 국민에게 개방될 청와대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문화 공간이다. 청와대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이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광화문 1번지’로 정해졌는데 광복 이듬해인 1946년부터 ‘세종로 1번지’로 바뀌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시청과 종로, 을지로 등 도심 사무실 밀집 지역의 북쪽에 있다.

청와대 터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건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 고려의 이궁(離宮)이 여기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고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도읍이었던 개경(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 등 세 곳을 삼경으로 두었는데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을 설치하고 남경(서울)으로 삼았다.

▶청와대 대통령관저 부근에 있는, 명당·길지를 의미하는 문구 표석
청와대 대통령관저 부근에 있는 명당·길지를 의미하는 문구 표석

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 터

대통령 기록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지금의 청와대는 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 터였다. 청와대 자리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건 조선 건국 때다.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새로운 서울을 세우기 위해 관리들을 보내 새 궁궐터를 찾아보게 했다. 고려 숙종 때의 이궁 자리는 너무 좁아서 새로 궁궐을 짓기가 어려우므로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궁궐을 지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즉 오늘날의 청와대 터에서 좀 더 내려간 평지에 왕궁을 짓기로 한 것이다. 태조는 1394년 12월 정도전에게 궁궐 짓는 일을 시작하도록 지시했고 139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 9월에 완성된 궁이 경복궁이다.

세종 8년인 1426년에는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 후원(뒤뜰)이 조성됐다. 이때 후원에는 서현정, 연무장, 과거시험장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경복궁과 이곳은 폐허가 됐다. 그 뒤 경복궁과 그 후원인 지금의 청와대 근처는 270년 동안 방치됐다가 고종 2년인 1865년 흥선대원군의 노력으로 다시 지어졌다. 고종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창덕궁 후원을 본떠 경복궁 후원인 상림원을 조성했다. 이때 경무대도 함께 지어졌는데 경무대는 창덕궁 후원의 춘당대를 이어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시험장 기능을 이어갔다.

경복궁은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고종 황제가 경운궁으로 옮겨가자 정궁으로서 위상이 급속히 추락했다. 이어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조선박람회가 청와대 자리에서 열리면서 여기에 있던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됐다. 일제는 조선박람회 이후 한동안 공원으로 남아 있던 옛 후원 자리에 1939년 조선총독 관사를 지었다. 이후 이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다.

해방 후 경무대는 다시 ‘청와대’로 불리게 된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은 이화장에서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다. 경무대는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부터 푸른 기와라는 뜻의 ‘청와대’란 이름을 가지게 됐다.

15만 개 한식 청기와로 지붕 이은 본관

이제 청와대 안 곳곳을 둘러보자. 북악산 정남향에 자리 잡은 청와대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된 중심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이 거주하던 곳을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돼 1991년 9월에 신축됐다. 전통 목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격조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지붕을 올리고 15만여 개의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단층의 별채를 배치했다.

청와대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 행사를 열었던 곳이다. 외국의 대통령이나 총리가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를 알리는 민속 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 행사장으로 이용되거나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와 연회를 위한 장소로도 사용됐다.

1978년 12월 준공됐으며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형태로 내부에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월계수, 태극무늬가 형상화돼 있다. 1층과 2층에는 똑같은 홀이 있는데 1층은 접견장으로 외국 국빈의 접견 행사를 치르며 2층은 만찬장으로 대규모 오찬과 만찬 행사를 치르는 장소로 활용했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관저는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가 배치돼 있다. 앞마당에는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가 자리 잡고 있다. 대문은 전통 한옥 분위기에 맞는 삼문으로 만들어졌다. 전통적인 목구조로 궁궐 건축양식인 팔작지붕의 겹처마에 한식 청기와를 얹은 ㄱ자형 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지금 청와대 자리는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이었던 만큼 왕궁을 지키는 수궁(守宮)의 자리도 있었다. 지금의 수궁터다. 고종 5년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융문당, 융무당, 오운각 등 전각이 들어서고 과거시험이나 무술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이 수궁터에 총독 관사를 지었고 광복 이후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경무대,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면서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됐다. 1991년 청와대 본관을 새로 건축한 후 1993년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그 건물을 철거하고 수궁터로 복원했다.

▶청와대 개방 소식을 전하는 ‘청와대, 국민 품으로’ 누리집
청와대 개방 소식을 전하는 ‘청와대, 국민 품으로’ 누리집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녹지원

상춘재(常春齋)는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귀빈들에게 우리나라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 회의 장소 등으로 사용됐다. 현재 상춘재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사 별관인 매화실(梅花室)이 있었는데 이승만 대통령 시절 상춘실로 개칭했다. 이어 1978년 천연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양식 목조건물로 개축했다. 이후 상춘재로 이름을 명명하고 1983년 전통 한옥식 가옥으로 신축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는 녹지원이 꼽힌다. 120여 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밖 후원으로 문무의 과거를 보는 장소로 이용됐다. 이후에 정원이 되면서 가축 사육장과 온실 부지로 사용됐다. 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각종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주변에는 녹지원을 상징하는 소나무 반송이 있는데 수령은 약 150년에 이르며 높이는 16m다.

대통령비서실은 여민1관, 여민2관, 여민3관으로 이뤄져 있다. 여민은 ‘여민고락(與民苦樂)’에서 따온 이름으로 대통령과 비서진이 국민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민1관은 2004년, 여민2관(구 신관)은 1969년, 여민3관(구 동별관)은 1972년에 세워졌다.

1990년에 완공된 춘추관은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출입기자들의 기사송고실로 마련됐다.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엄정한 역사 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 예문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춘추관은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게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이 깃들여져 있다.

무궁화동산은 옛 중앙정보부의 궁정동 안전가옥(안가) 터에 마련된 공원으로 본래는 청와대 구내에 속해 출입이 금지됐던 곳이었으나 1993년 청와대 앞길이 개방된 뒤 시민 휴식공원으로 조성됐다. 각종 수목과 야생화가 어우러지고 맞은편에는 분수대가 있어 청와대를 찾는 관광객과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 무궁화동산 뒤편에 있는 칠궁은 조선시대 때 왕을 낳은 후궁 7명(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 등)의 위패를 모신 7개 사당이다. 1968년 이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으나 2001년 11월 공개돼 다시 일반 관람 방문이 이뤄지고 있다.

관저 인근엔 오운정·침류각 두 전각

대통령 관저 인근에는 오운정·침류각 두 전각이 있다. 1990년 청와대 경내의 북악산 기슭 암벽에서 각자로 새겨진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문구 표석이 발견됐는데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길지(吉地)로 여겨졌음을 전한다. 1868년 고종 때 이 명당에 오운정, 침류각, 벽화실 등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오운정, 침루각은 1989년 청와대 대통령 관저를 새로 건립할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워졌다. 오운정은 경복궁 후원에 지었던 오운각의 이름을 딴 건물이다. 침류각은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터에는 보물 석조여래좌상도 있다. 통일신라(9세기) 불상으로 1912년 총독부박물관으로 이전됐다가 1989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됐다. 절병통은 옛 청와대 본관에서 유일하게 남은 항아리 모양의 장식 기와다.

청와대 경내는 옛 경복궁 후원 권역이라서 서현정, 취로정, 관저전, 충순당 등 전각도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됐다. 지금의 상춘재, 녹지원 인근은 융문당, 융무당 영역이었다. 융문당은 과거시험장이었고 융무당은 군대를 시험하고 무예·활쏘기 시험을 보는 군사훈련 참관 장소였다. 융문당, 융무당은 1868년에 세워진 뒤 1928년에 둘 다 철거돼 1929년 용산의 일본 사찰 용광사로 함께 옮겨 세워졌다고 한다.

영빈관 인근은 관풍루를 포함한 경농재(1893년에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은 재당) 영역이었다. 풍년을 기원하는 조선 팔도(八道)배미는 고종 당시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에 풍년을 기원하고자 조성한 논밭이다. 1939년 조선총독부 관사를 지을 때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유헌은 경농재의 부속 건물로 ‘대유’는 ‘크게 소유한다’(즉 풍년을 기원)는 뜻이다. 역시 1939년 총독부 관사 건립 때 철거됐다. 청와대 옛 본관 터는 수문사 군사들을 위한 건물 ‘수궁’이 있던 자리였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이전태스크포스(TF)는 청와대 개방 소식을 전하는 누리집 ‘청와대, 국민 품으로’를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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