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누군가 레거시(Legacy) 방송·언론에 '재래식'이라는 딱지를 붙인 게 화제가 됐다. '신식' 미디어 유튜브에서 이 주장을 한 이들은 레거시 미디어의 매출, 주목도, 영향력이 날로 떨어지는 점을 거론했다.
오늘날 레거시 미디어의 불황은 세계적 현상이다. 미디어 소비자들의 주목도(attention)로만 따지자면 유튜브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수위를 차지했거나 근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갖는 의미는 기술 발전이나 세대 변화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다. 공적 권위나 사회 문화적 구조의 변화까지 원인으로 거론되는 중이다.
신문과 방송이 장악해온 정보 유통의 독점 구조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디지털 환경에 의해 무력화됐다. 알고리즘은 다수 정보 생산자의 출발선을 통일했고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었다. 과거 레거시 미디어는 정보의 내용뿐만 아니라 정보가 전달되는 시간과 일정까지 통제했다. 24시간 대기하는 유튜브는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내용만 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정보의 시점은 초 단위로 분화되고 21세기 정보 소비자들은 자유의 범위를 시간으로까지 확장했다.
물론 우리는 공동의 시간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롭지 않다. 대부분 비슷한 출퇴근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가경제가 유지되는 것처럼 공동의 시간은 여전히 우리 삶의 핵심적 요소다. 그러나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플랫폼들이 시간·일정의 유연성을 높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의 확산, 새벽배송,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 환경은 개인화되고 유연화된 시간의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 레거시 미디어는 이 같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외면하는 중이다. 레거시 미디어 종사자들은 '재래화'의 원인을 매출과 시청자의 감소, 관성화한 규제 탓으로 돌리지만 거기엔 이들이 궁여지책으로 택한 방향 전환이 빠져 있다. 기성 언론이 유튜버들을 출연시키는 것은 물론 이들의 방송 문법을 그대로 차용하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오늘날 뉴스의 가치는 독립성, 공정성, 객관성보다 조회수와 좋아요 수 같은 주목도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자극적인 섬네일, 감정적인 헤드라인을 통해 정치적 방향을 명확히 드러내는 게 주목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그 결과 정보 소비자들은 정보의 질과 진실성을 판단하게 해주던 과거의 지표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레거시 미디어의 재래화가 정보 생산자에 의해서만 부추겨지는 게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미디어 소비자 또한 이 같은 변화의 불가항력성을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이들이 앞장서서 이를 문제 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식 미디어 소비자들은 레거시 미디어의 정당성과 그 정당성을 떠받치고 있던 제도에 대한 믿음을 진작에 버렸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이 같은 문화현상을 '현대적 냉소주의'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국가와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국가나 제도도 끝내 내적 모순과 비리를 떨쳐내지 못한다는 걸 20세기 내내 관찰하고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가와 제도를 완전히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며 웬만하면 공영방송 시청료를 납부한다. 냉소주의란 문제를 알지만 또 문제와 적절히 타협하는 것이다.
재래식 미디어 종사자는 신식 미디어의 문제점을 알지만 회사와 자신의 생존을 위한다는 핑계로 이를 수용한다. 시청자와 독자들 또한 유튜브의 가벼움과 편향성을 알면서도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구독자로 변모한다. 이들 모두 냉소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재래식에서 신식으로 갈아타는 것뿐일까? 같은 시간에 같은 정보를 공동체 전체가 함께 생각해보는 국가적 숙의는 불가능한 것인가? 슬로터다이크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단일한 국가 공동체보다 내부에 다양한 공동체가 공존하는 국가가 20세기를 지나온 자유주의 국가들의 현실태라는 것이다. 국가적 조화에 대한 관념적 믿음을 철회함과 동시에 다양한 정서적 공동체 내부 그리고 간헐적이지만 다양한 공동체 사이의 실용적 연대를 추구할 수 있다면 냉소는 냉소적 이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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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거시 미디어의 재래화를 기술 독재나 망국적 개인주의와 같은 선상에 놓을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래식 미디어가 신식 미디어로 대체되는 건 단일한 국가 공동체, 단일한 제도라는 고전적 목표로부터 다양한 공동체의 공존이라는 21세기 자유주의로의 이행이 임박했다는 걸 예고한다. 우리가 정작 경계해야 하는 건 이 같은 이행의 본질로부터 벗어나 재래식 미디어의 권위를 신식 미디어에 그대로 옮겨 심으려는 시도들이다. 그러나 알고리즘과 플랫폼의 특성상 그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두 군데 구독을 취소했고 한 군데 구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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