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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 넘어 공감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담았다"

타임지가 꼽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미술감독 류성희·최지혜

2026.02.10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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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최고의 K-드라마'에 오른 '폭싹 속았수다'의 미술 작업을 맡은 류성희(오른쪽)·최지혜 미술감독.
'2025 최고의 K-드라마'에 오른 '폭싹 속았수다'의 미술 작업을 맡은 류성희(오른쪽)·최지혜 미술감독. 사진 C영상미디어

"10년 전 이 자리에서 누군가 '앞으로 10년 후에는 한국이 만드는 콘텐츠가 글로벌 문화의 중심이 되고 매주 전 세계 톱10 리스트를 점령하며 글로벌 시상식을 휩쓸 것'이라고 말했다면 다들 꿈 같은 소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한국 콘텐츠가 장르와 소재를 뛰어넘어 사랑받고, 제주도 소녀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꿈 같은 일이 모두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 1월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10주년을 맞아 열린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6 코리아' 행사에서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부문 부사장(VP)이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이하 '폭싹')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25 최고의 K-드라마'에 올랐다. '타임'은 '폭싹'을 두고 "현실의 소재를 아름답고 깊이 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며 "올해 최고의 한국 드라마이자 어쩌면 최고의 TV 시리즈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작품의 반향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25 외래관광객조사 보고서(잠정치)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제주 방문율은 1분기 8.9%에서 2분기 9.0%, 3분기 10.5%로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3분기 방문율은 전년 연간 기준보다 0.6%p 높았다. 2025년 3월 7일 '폭싹' 공개 이후 극 중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 제주에 대한 관심이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 류성희·최지혜 미술감독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공간의 구조부터 소품, 화면 질감까지 방대한 자료 조사를 거쳐 설계했다.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 류성희·최지혜 미술감독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공간의 구조부터 소품, 화면 질감까지 방대한 자료 조사를 거쳐 설계했다. 사진 넷플릭스

사전 자료조사만 한 달여

K-드라마 한 편의 영향력이 화면 밖까지 이어진 데는 작품 속 공간이 설득력 있게 구현됐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폭싹'은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아우르는 시대극으로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미술'의 역할이 특히 중요했다. 그 공간을 설계한 사람이 류성희·최지혜 미술감독이다.

미술감독은 시나리오를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으로 구체화하는 책임자다. 세트와 로케이션, 소품, 색감 등 화면에 보이는 시각 요소 전반을 설계한다. 류성희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괴물',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의 미술을 맡아왔고, 최지혜 감독은 '폭싹'을 통해 미술감독으로 데뷔했다. 두 감독은 제주의 풍경을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골목 구석구석과 집 안의 소품 하나까지 인물의 서사와 감정이 스며들도록 섬마을을 만들어냈다. 주인공들이 나고 자란 1950년대 제주 '도동리' 마을은 경상북도 유휴부지에 세워진 세트장으로 주택 80여 채와 현무암 돌담, 항구, 어선 등 당시 분위기를 복원했다.

본격적인 제작에 앞서 자료조사만 한 달 넘게 걸렸다. 검색 채널이 다양해진 지금도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다루는 작업에서 자료조사는 여전히 가장 큰 부담이자 책임이다.

"제주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살리면서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중요했어요. 같은 공간이더라도 서사와 감정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어야 했고 시간이 쌓여가는 장소로서 설득력을 가져야 했죠. 어디에나 있을 법한 섬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제주'를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자료를 봤어요. 저희가 수집한 자료 양을 보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웃음) 그중에서도 제주답고 시대성이 살아 있는 것들을 골라 참고로 삼았습니다. 정말 운이 나쁘면 최소한의 재료만 갖고 작업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그럴수록 관객과 시청자를 마주할 때 더 겁이 나고 자신감도 떨어져요. 어딘가 면목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류성희)

"기존 시대극과는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주 다뤄지지 않은 공간이기도 하고 내륙과는 다른 식생이나 생활 방식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소품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연환경까지 포함해 팀원들과 함께 리서치하며 준비했습니다."(최지혜)

어촌 마을을 구현하기 위해 평지 위에 건물을 올리는 대신 수백 톤의 흙을 쌓아 바닥의 높낮이부터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세웠다. 베트남과 강원도 철원에서 공수한 현무암으로 담을 쌓았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스티로폼을 활용해 하나하나 제작한 뒤 채워 넣었다. 화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이 과정이 공간에 대한 실감, 나아가 이야기의 '공감'을 좌우했다.

"요즘 시청자는 정말 많은 콘텐츠를 보기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금방 알아채요. 배우가 울퉁불퉁한 바닥을 걷는 느낌이나 경사를 오르내리는 느낌을 일부러 연기하면 바로 알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공기와 분위기를 만드는 데 많은 공을 들였어요.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소품 하나를 놓을 때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포스터 한 장, 신문 한 장에도 수많은 시간과 손길이 담겼습니다."(류성희)

해외 시청자도 이해할 수 있는 K-디테일

글로벌 시청 환경과 한국적인 디테일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한국의 서사를 담으면서도 화면의 톤과 색감은 해외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읽혀야 했다. 이에 대해 류 감독은 "진정성을 가지려면 가장 한국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외 시청자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톤과 색감은 조정했다. 해외의 완성도 높은 시대극을 참고해 자연을 담아내는 방식과 색의 조합, 공간이 낡아가는 표현법 등을 연구했다.

"가난한 가족의 일생을 다루지만 그 삶을 거칠고 궁핍하게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벽지의 질감이나 색감 하나까지도 따뜻한 톤을 유지하면서 인물들의 시간을 정감 있게 담아내려 했습니다."(최지혜)

류 감독은 가장 애정하는 장면으로 '애순이 막내아들 동명이를 잃는 시퀀스'를 꼽았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아이를 찾기 위해 마을 전체가 움직이는 이 장면은 미술과 특수효과, 조명, 연출, 배우의 연기가 맞물려 완성됐다. 그는 "모든 팀이 베스트를 다한 것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젊은 애순과 관식이 부산으로 도망쳐 여관에 머무는 장면이다. 

"작품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에 가까운 공간이었어요. 둘에게는 잠시 현실을 벗어난 화양연화 같은 시간이었고 처음으로 제주에서 가장 멀리 떠난 곳이기도 했죠. 그들의 찬란한 일탈을 위해 (미술적으로) 잘해주고 싶었어요."(류성희) 

두 감독은 K-콘텐츠 미술팀의 경쟁력으로 순발력과 유연함을 들었다. 사전 구상과 역할 분담이 명확해 촬영 현장에서 변경이 거의 불가능한 미국의 제작 구조와 달리 한국은 현장 상황에 따라 빠르게 판단하고 조정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류 감독은 이런 특성이 "장점이면서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해외 시상식을 보면 고령의 미술 스태프들이 상을 받는 장면을 자주 보게 돼요. 그만큼 경험치가 중요한 직업이라는 뜻이겠죠. 이 일을 오래 직업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열정만으로 한계가 있어요. 결국은 사람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젊은 인력이 끝까지 일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구조가 마련된다면 한국 미술팀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류성희)

제작 인프라의 차이도 짚었다. 미국에는 시대별 소품이 체계적으로 축적된 대형 소품 숍이 있어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작품을 준비할 수 있다. 스튜디오 차원에서 운영하는 소품 창고는 물론 민간 차원의 소품 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해외직구 사이트에서 물건을 구해 덧대거나 가구점을 일일이 돌며 예산에 맞춰 '발명하듯' 소품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시대극은 많은 부분이 제로에서 시작하는 작업이라고 류 감독은 말했다. 그는 "이런 환경이 개선된다면 독립영화나 소규모 드라마도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감독의 역할은 기술과 제작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공간을 실제 세트로 제작해야 했다면 컴퓨터그래픽(CG), 시각특수효과(VFX)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미술감독이 관여하는 영역도 확장됐다. 무엇을 실제로 만들고, 무엇을 디지털로 구현할지에 대한 판단을 제작 초기 단계부터 함께 설계해야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까지 제작 환경에 도입되며 역할의 경계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류성희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미술감독'에 대한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좋은 미술감독은 모든 세대와 공감해야"

"고증에만 충실하면 시간이 지나 다시 봤을 때 오히려 촌스러울 수 있어요. 구현하고자 하는 시대와 이 작품을 만드는 시대, 그리고 시청자가 살아가는 시대가 잘 만나야 합니다. '폭싹 속았수다'도 오랜 세월을 다루지만 특정 세대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세대가 각자의 시간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했어요. 옛날 이야기라고 해서 다큐멘터리처럼 만들 수는 없죠. 지금 이 시대의 시청자는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단순히 리서치나 유행을 따라가는 감각과는 다른 차원이에요. 시대의 공기를 읽어내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더 바빠요. 못 봤던 영화나 책, 음악까지 계속 접하면서 현실의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영상을 가장 많이 보고 영향을 받는 건 젊은 세대잖아요. 그들이 무엇에 절망하고 기쁨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무언가를 만들어도 카피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류성희)

이들이 만든 작품이 늘 폭넓은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작업은 다양한 삶의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세계를 정성스럽게 만들어가는 일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취향이 있어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고 꼭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그런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있죠. 그런 사람들이 자기 취향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류성희)

<K-공감 이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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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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