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이 열린 이탈리아 설원 위에 '19세 철인' 김윤지 선수가 메달을 쏟아냈다. 3월 8일(이하 한국시간) 이탈리아 테세로(Tesero) 크로스컨트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바이애슬론 여자 스프린트 좌식 12.5㎞'. 김윤지(19·BDH파라스)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한국 장애인 스포츠의 역사가 새로 쓰였다. 김윤지는 이날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한민국 동계패럴림픽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역대 동계패럴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선수가 개인 종목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김윤지가 처음이다.
김윤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10일 열린 크로스컨트리스키 스프린트 좌식에서는 은메달을 따냈고, 다음날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10㎞ 인터벌 스타트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하며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도 함께 세웠다.
스노보드에서도 감동의 승전보가 전해졌다. 3월 8일 코르티나담페초 파라 스노보드 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크로스 남자 하지 장애(SB-LL2)' 결선에서 이제혁(29·CJ대한통운)이 동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 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사상 첫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휠체어컬링 믹스더블 백혜진-이용석 조도 11일 은메달을 따내며 2010 밴쿠버 대회 이후 16년 만에 패럴림픽 시상대에 태극기를 올렸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개막 이틀 만에 목표로 내세웠던 '금메달 1개·동메달 1개'를 조기 달성했다. 3월 12일 현재 우리 대표팀은 금메달 1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이미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역대 최대규모… 52개국 665명 참가
제14회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은 3월 7일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에서 개막했다. 얼마 전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성화가 꺼졌던 바로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불빛을 밝히며 10일간 열전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은 참가국 알파벳 순서에 따라 15번째로 입장했다. 기수는 스노보드 이충민과 알파인스키 박채이가 맡았다.
이번 대회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52개국 665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알파인스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스키, 스노보드, 휠체어컬링, 아이스하키 등 6개 종목에서 총 79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쟁이 펼쳐졌다. 대회의 마스코트는 족제비를 모티브로 한 '밀로(MILO)'다. 험준한 산악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과 회복력을 상징한다. 설정상 한쪽 다리가 없지만 긴 꼬리를 이용해 장애물을 넘는 모습은 패럴림픽 선수들의 도전정신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 알파인스키,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스키, 스노보드, 휠체어컬링 등 5개 종목에 선수 20명을 포함해 총 56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2월 초부터 노르딕스키(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스키) 대표팀, 2월 중순부터 알파인스키와 스노보드 대표팀의 적응 훈련을 진행했다.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스위스에서 빙질 적응과 전술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김윤지의 질주는 3월 8일 테세로 크로스컨트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바이애슬론 여자 스프린트 좌식 12.5㎞'에서 시작됐다. 38분00초1의 기록으로 출전 선수 12명 가운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대한민국 바이애슬론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자, 2018년 평창 대회 이후 8년 만에 나온 한국의 패럴림픽 금메달이다.
선천성 이분척추(척수수막류)를 안고 태어난 김윤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수영선수로 활동하며 폐활량과 심폐지구력을 길렀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20년 노르딕스키에 입문했고 불과 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2025~2026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파라 크로스컨트리스키 월드컵'과 '2026 국제바이애슬론연맹(IBU) 파라 바이애슬론 월드컵'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이번 대회를 앞두고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스키'와 '사격'을 결합한 종목이다. 선수들은 스키로 일정 거리를 달린 뒤 사격장에서 표적을 맞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표적 5개 중 맞히지 못한 만큼 1발당 1분의 벌칙 시간이 추가된다. 격렬한 스키 주행으로 심박수가 크게 오른 상태에서 정확한 사격을 해야 하는 고난도의 경기다.
김윤지의 강점은 실력뿐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이다. 국제대회에서 늘 밝은 미소로 경기에 임하는 그는 외국 선수들 사이에서 '스마일리(Smiley)'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김윤지는 금메달을 확정한 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기를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윤지는 3월 10일 테세로 크로스컨트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스프린트 좌식' 결선에서도 3분10초1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1㎞ 남짓한 코스를 전력 질주하는 스프린트는 폭발적인 스피드가 요구되는 종목이다. 이어 11일 열린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10㎞ 인터벌 스타트'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했다. 이날 19명 가운데 16번째로 출발한 김윤지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넘어졌지만 곧바로 일어나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26분51초6)하는 투혼을 보이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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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야 할 곳은 올림픽 무대"
이제혁(29·CJ대한통운)은 스노보드 결선 무대에서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3월 8일 코르티나담페초 파라 스노보드 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크로스 남자 하지 장애(SB-LL2)' 결선에서 이제혁은 에마누엘레 페라토네르(이탈리아), 벤 투드호프(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노보드 크로스는 4명의 선수가 동시에 출발해 점프대와 웨이브, 급커브 등이 설치된 코스를 내려오며 순위를 겨루는 레이스다. 'SB-LL2'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선수 가운데 비교적 기능 제한이 적은 등급 선수들이 출전한다.
경기가 끝난 후 눈물을 쏟아낸 이제혁에게 설원은 한때 다시 돌아오기 힘든 곳이었다. 중학교 때 스노보드 훈련 중 발목 부상을 당했고 치료 과정에서 2차 감염이 발생하며 결국 장애를 얻었다. 한동안 스노보드를 외면했던 그를 다시 설원으로 불러낸 것은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이었다. 그는 "당시 경기를 보면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휠체어컬링팀, 밴쿠버 이후 첫 은메달
휠체어컬링 믹스더블 대표팀인 백혜진(43·경기도장애인체육회)-이용석(42·경기도장애인체육회)도 3월 11일 값진 은메달 소식을 전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패럴림픽(당시 혼성단체팀 은메달) 이후 휠체어컬링 시상대에 태극기가 올라간 것은 처음이다.
결승전 상대는 예선에서 6대 10 패배를 안겼던 '컬링 강호' 중국이었다. 우리 대표팀은 매서운 추격전을 펼쳐 7엔드에서 3점을 따내며 6대 7로 따라붙었고 마지막 8엔드에서 상대 실수를 놓치지 않고 7대 7 동점을 만들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비록 연장에서 패했지만 혼신의 승부는 관중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특히 밴쿠버 대회 당시 은메달 주역이었던 박길우는 이번 대회에서 휠체어컬링 지도자로 은메달을 다시 목에 걸었다. 휠체어컬링 믹스더블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백혜진과 이용석은 대한민국 최초의 휠체어컬링 믹스더블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K-공감 백재호>

대한장애인체육회 급식지원센터 운영
동계패럴림픽 대표팀 뒤에는 든든한 밥심이!
이번 패럴림픽에서 맹활약하는 우리 선수단과 함께 달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선수들의 식단을 책임지는 '대한장애인체육회 급식지원센터' 구성원들이다. 3월 7일(현지시간) 코리아하우스 개관과 함께 본격 가동된 급식지원센터에서는 매일 60〜70인분의 한식 도시락을 책임졌다. 이번 대회를 위해 준비한 식재료 규모부터 압도적이었다. 한국에서 직접 공수한 쌀 140㎏, 김치 40㎏을 포함해 고춧가루, 참깨 등 기초 양념류까지 꼼꼼히 챙겼다. 조리팀의 하루는 보통 오전 6시30분부터 시작되지만 식재료 전처리 작업이 중요한 만큼 사실상 24시간 체제로 가동됐다.
선수단 식단 총괄은 2024 파리 하계패럴림픽 당시 선수단 식단을 책임졌던 전향희 영양사와 장종호 조리장이 다시 맡았다. 이들과 함께 조리사와 조리원 등 총 6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한식팀은 매일 밥과 국, 5~6가지 반찬이 어우러진 집밥 같은 '한정식 도시락'을 순식간에 완성해냈다. 특히 보온통 위에는 전 영양사의 아이디어로 '밥', '국'이라고 써진 귀여운 한글 스티커도 붙었다. 선수들이 잠시나마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준비된 작은 배려다.
한국 여자 선수 사상 첫 동계패럴림픽 금메달을 따낸 김윤지 선수는 자신의 누리소통망(SNS)에 도시락 사진을 올리며 '한식 지원 감사합니다! 맛있겠다'라는 글을 남겼다. 장 조리장 역시 "(메달을) 같이 준비하는 마음이다. 항상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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