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볕이 길게 드리운 6월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SVC(스타트업벤처캠퍼스) 서울. '모두의 창업' 1기 출범식을 한두 시간 앞둔 시각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르게 도착한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행사장을 둘러보았고, '모두의 창업'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똑같이 맞춰 입은 표정에는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났다.
'모두의 창업'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대국민 창업 프로젝트'다. 창업 경험이 없어도, 간결한 아이디어 서류 한 장만으로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1기에는 6만 3000명의 신청이 몰렸고, 그 가운데 5000명이 선발됐다. 이들은 전문 멘토링과 창업활동자금, AI 솔루션, 규제 사전검토 등 창업 전 과정에 걸친 지원을 받으며, 지역·권역을 거쳐 12월 전국 단위 오디션까지 단계별로 나아간다.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을 하나의 자산으로 인정하고 재도전을 돕는다는 것이 이 사업이 내건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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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3000명이 지원해 12.6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1기 5000명. 그 가운데 일부가 이날 출범식 자리에 모였고, 나머지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동시에 열린 출범식과 유튜브 생중계로 연결됐다. 창업이 자기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사람들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출발선에 섰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인사말에서 '모두의 창업'을 만든 이유를 이야기했다. 창업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을 돕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다듬는 일부터 멘토와 AI 솔루션 같은 기반까지 정부가 마련해준다면, 누구나 지금보다 쉽게 도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 주변에 창업가가 없어도 도전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고 싶었다"고 한 장관은 말했다.
그가 꼽은 창업 인재상의 첫머리도 거기에 닿아 있었다. 내 주변의 문제, 내 삶의 문제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 거창한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자기 삶의 불편에서 출발할 수 있다면, 창업은 더 이상 먼 세계의 일이 아니다.
◆ 병상에서 길어 올린 아이디어
그 말에 가장 먼저 겹쳐지는 얼굴이 있었다. 로컬 트랙 선정자를 대표해 단상에 오른 박종민 씨(62세)다.
부산에서 20년 넘게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는 그의 이야기는, 평탄한 회고가 아니었다.
"은퇴가 아니라 폭망이죠." 그는 창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시간을 이렇게 요약했다. 학원 운영이 기울며 경제적으로 무너졌고, 그 무렵 하나뿐인 누나를, 부모님을, 그리고 아내를 차례로 떠나보냈다. 몇 년 사이에 닥친 일이었다. 그 자신도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한꺼번에 밀려든 위기 앞에서 감당이 안 됐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시 일어선 계기는 뜻밖의 자리에서 왔다. 우연히 옛 인연인 동명대학교 창업학과 학과장을 만났고, 지난해 그 학과에 입학했다. 60대의 늦깎이 학생이었다.
"우리 동기들이 용기를 많이 줬어요. 할 수 있다고 계속 응원해주셨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젊은 동기들 사이에서,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났다.
학습만 이어가던 그에게 전환점이 된 건 올해 초 병상이었다. 척추 골절 수술로 두 달간 입원해 있던 그는, 같은 병원에서 높은 산동네에 사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병원 한 번 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정년을 앞두고 남은 미래를 걱정하던 한 수간호사의 모습을 보았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자리를 잃는 사람. 이 둘을 연결할 수는 없을까. 마침 그 무렵 '모두의 창업'을 알게 됐고, 그는 병상에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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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온 것이 '시니어 헬스로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직접 찾아가는 이동형 건강관리 서비스로, 은퇴한 의료·보건 전문가가 '시니어 마스터'로 참여하고, 청년은 'AI 데이터 코디네이터'로 어르신의 건강정보를 모아 관련 기관에 전달한다. 도움을 받는 시니어, 도움을 주는 시니어, 그리고 청년이 함께 연결되는 3세대 모델이다.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시니어에게는 역할을, 청년에게는 일자리를, 지역에는 지속 가능한 돌봄 생태계를 남기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이 아이디어의 뿌리는 그가 오래 품어온 문제의식이었다. "50대 후반만 돼도 직장에서 나오면 갈 데가 없어요. 정말로요." 그는 자기 또래의 현실을 그렇게 말했다. 구청의 시니어 일자리는 하루 네 시간 남짓인데도 경쟁이 치열하고, 아파트 경비 자리도 하늘의 별 따기다. 오랜 세월 쌓은 경험과 전문성이 정년과 함께 그대로 소멸되는 현실이 그는 안타까웠다. '시니어 헬스로드'는 자신이 통과해온 시간이자, 한 세대가 함께 겪는 문제에서 길어 올린 아이템인 셈이다.
◆ 신혼집 고민에서 시작된 '인생 재정 계산기'
박종민 씨가 인생의 후반에서 길을 다시 찾은 사람이라면, 임미선 씨(29세)는 평범한 일상 한복판에서 출발선에 선 경우다. 7년간 앱 스타트업에서 기획과 운영을 맡아온 그는, 창업 경험이 없는 직장인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이기도 하다.
임미선 씨의 창업 아이디어, 인생 재정계산기 '살아봄'은 자신의 고민에서 나왔다. "10월에 집 계약 연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 서비스를 기획하게 됐어요."
전세 대출, 출산, 자녀 양육, 이직 같은 인생의 사건들이 우리 가정의 재정에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숫자로 미리 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물음이 그가 구상한 창업 아이디어의 출발점이었다. 인생의 선택들을 블록처럼 쌓아 올리면 가정의 재정적 미래가 한눈에 보이는 시뮬레이터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계산하기 어렵거나 오랜 시간이 드는 지표들을 대신 반영해, 미래의 현금 흐름과 자금이 부족해지는 구간까지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가 그리는 변화는 우리의 일상에 맞닿아 있다. "가정을 꾸리는 걸 고민하는 분들의 걱정하는 시간을 줄여드리고 싶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거의 매일 창업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는 그는, '모두의 창업'이라는 기회와 남편의 응원이 도전의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창업을 망설이는 또래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어디선가 읽었다는 한 문장을 꺼냈다. 실패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함께 많이 실패해봤으면 좋겠어요."
◆ "지독하게 외로웠다"는 선배의 고백
실패를 해보자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님을, 이날 출범식 무대에 오른 선배 창업가가 자신의 시간으로 증언했다. 광주의 생체인증 스타트업 고스트패스의 이선관 대표다. 그는 선배 창업가로서 '모두의 창업' 1기에 선정된 예비창업가들에게 축하의 말보다 창업의 외로움을 먼저 이야기했다.
"정말 지독하게 외롭습니다."
3년에서 5년 차 무렵, 그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가족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샤워 부스의 물을 틀어놓고 길게는 석 달을 매일같이 울던 밤들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위기는 올해 초였다. 운영자금이 말라가고 투자 유치가 거듭 실패하자, 그를 포함한 임원진은 100% 연봉 삭감에 들어갔다. 예닐곱 달 급여를 받지 못하면서도 회사의 비전을 믿고 버텨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해소되지 않자 그는 일부 구성원에게 어렵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꺼낸 날, 구성원들이 회사 계좌로 누군가는 수백만 원, 누군가는 수천만 원을 보내왔다. 자신과 회사를 믿고 건넨 돈이었다. 그 힘으로 작게나마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정부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고비를 넘겼다. 그가 그 시간을 풀어놓는 동안, 객석에 앉은 선배 창업가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도 정말 어렵고 힘든 길을 걷게 되실 겁니다. 그래도 먼 길을 함께 갈 수 있는 멤버를 만나신다면, 목표는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의미 있는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내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행사 첫머리에서 '혼자서는 위대한 기업을 만들 수 없다'고 했던 한성숙 장관의 인사말과, 함께 많이 실패해보고 싶다던 임미선 씨의 말, 동료들 덕에 위기를 넘겼다는 이선관 대표의 고백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 이제 막 떼어낸 첫걸음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이들이 선 곳은 같은 출발선이다. 인생의 후반에서 마지막 도전에 나선 60대도, 신혼집 고민을 사업으로 바꾼 청년도, 그 길을 먼저 걸어온 선배도, '모두의 창업'이라는 한 자리에서 만났다. 창업이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에게 '한 번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을 심어준 것,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심어준 것. 그것이 이 첫걸음에 거는 가장 큰 기대다.
물론 출발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출범식을 전후해 '모두의 창업' 플랫폼에서 1차 합격자들의 일부 정보가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중기부는 사과와 함께 1차 합격자 5000명 전원에게 아이디어의 영업비밀 원본증명 등록을 무상 지원하는 등 피해 구제와 신뢰 회복에 나섰다. 국민의 창업 아이디어가 쌓이는 플랫폼인 만큼, 정보를 지키는 일은 이 사업이 가장 엄중하게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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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모두의 창업'을 향한 기대는 분명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에서 '모두의 창업'을 향한 예상보다 뜨거운 참여 열기와 우수한 아이디어를 언급하며, "첨단산업 시대에 일자리를 늘리는 길은 창업에 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업의 규모와 강도, 횟수를 더 과감하게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의 창업'은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 부산에서 다시 일어선 박종민 씨도, 신혼집 고민에서 출발한 임미선 씨도, 그날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아이디어를 한 걸음씩 밟아 나가고 있다.
함께 많이 실패해보고 싶다던 한 청년의 말처럼, 이들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정책브리핑 김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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