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곰탕 한 그릇으로 서울을 넘어 뉴욕과 파리, 도쿄까지 진출한 옥동식 셰프. 세계 각지에서 한식을 선보여 온 그가 꼽은 한식 세계화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했다. 바로 '본질을 지키는 것'이다.
현지의 식재료와 주방 환경은 받아들이되 장과 양념, 맛의 방향과 한식에 담긴 철학까지 바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식이라는 큰 범주를 한꺼번에 알리기보다 세계인이 기억할 수 있는 '한 그릇'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한식 세계화의 출발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책브리핑은 법정기념일 지정 이후 처음 맞은 '한식의 날'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26 한식대축제' 현장에서 한식 컨퍼런스 발표자로 나선 옥동식 셰프를 만났다.
지난 10월 23일부터 사흘간 국립중앙박물관 거울못 일대에서는 한식을 '보고, 맛보고, 즐기는' 2026 한식대축제(HANSIK FESTA)가 열렸다.
김치·나물 명인의 조리 시연부터 한식 만들기 체험, 전통 장류 시식까지 한식의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인 행사에는 사흘간 7만 5000여 명이 다녀갔다.
축제 첫날 박물관 대강당에서는 제1회 '한식의 날'을 기념하는 한식 컨퍼런스가 열렸다. 학계와 산업계, 외식업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식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연사로 참여한 옥 셰프에게 첫 한식의 날을 맞은 소감을 묻자 축하보다 당부를 먼저 꺼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죠. K-컬처, K-팝, 한국 음식이 많이 유행한다고 해서 뭘 하는 건 좋은데,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반짝이는 유행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한식. 그 방법을 묻는 질문마다 그의 답은 한곳으로 모였다. '본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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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기념일이 된 '한식의 날'
한식의 날은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한 '한식진흥법' 개정안에 따라 법정기념일이 됐다.
법은 매년 10월 24일을 한식의 날로, 이날부터 1주간을 '한식 주간'으로 정했다. 완성과 조화를 상징하는 숫자 '10'과 계절의 흐름을 담은 '24절기'를 결합해, 자연과 계절이 어우러지는 한식 고유의 가치를 담았다.
신형순 한식진흥원 한식확산팀장은 "한식의 날 지정은 한식이 단순한 인기나 유행을 넘어, 미래세대에 계승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식을 찾는 세계의 수요도 커지고 있다.
'2025 해외 한식당 현황조사'에 따르면 해외 한식당은 123개국 189개 도시에 1만 6532개가 있다.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서 한식을 안다고 답한 외국인은 68.6%로 전년보다 2.9%p, 호감도는 71.4%로 2.2%p 올랐다. 한식을 먹어본 사람의 만족도는 94.2%에 이른다.
한식을 경험한 소비자의 만족도는 높지만, 아직 한식을 알지 못하는 해외 소비자도 적지 않다. 한식의 인기를 지속적인 소비와 관심으로 이어가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에게 한국 음식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 바꿔도 되는 것과 지켜야 할 것
옥동식 셰프는 2017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돼지곰탕 전문점 '옥동식'을 열었다.
걸쭉한 돼지국밥과 달리 맑은 국물의 돼지곰탕으로 이듬해부터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2022년 미국 뉴욕에 팝업 매장으로 첫선을 보인 뒤 이듬해 정식 매장을 열었고, 그해 뉴욕타임스가 꼽은 '2023 뉴욕 최고의 요리 8선'에 돼지곰탕이 선정됐다.
이후 파리, 도쿄 등으로 무대를 넓혔고,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 '뉴욕에 간 돼지곰탕'으로 출연해 대중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해외 매장을 운영하며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현지화'에 대한 오해다. 현지인 입맛에 맞춘다는 이유로 레시피 자체를 바꿔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현지화라는 단어를 잘 이해해야 해요. 레시피를 바꾸고, 한식의 본질을 바꾸는 건 현지화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을 안 쓰고 미소를 쓴다든지, 스리라차를 쓴다든지, 그런 식으로 변형을 해버려요. 그건 잘못된 거죠."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한국에서 가져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그은 선은 명확했다. 채소와 고기 식재료는 현지 재료를 쓰고, 주방 시스템과 위생 법규, 주방 환경은 현지에 맞춘다. 대신 장과 양념, 그리고 맛의 방향과 한식의 철학은 지킨다.
"수많은 재료를 어떻게 한국에서 다 가져오겠어요? 특히 고기 같은 건 수출입도 어려운 상황이고요. 현지 재료로 한국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야 하는데, 그때 핵심이 '본질'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만드는 사람들의 마인드라든지, 맛의 방향성 그런 것들이 변하지 않고 지켜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 한식 열풍을 타고 해외 한식당이 빠르게 늘면서, 한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문을 여는 곳도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파리의 한 한식당에서는 부대찌개가 여러 언어를 거쳐 번역되면서 메뉴판에 '아미(Army)찌개'로 오른 사례도 있었다.
그는 이처럼 한식의 이름과 조리법이 잘못 전달되면, 현지 소비자가 한국 음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맛의 방향에 대한 우려도 덧붙였다.
"우리나라 현대 음식이 맛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달고 짜고 매운 것들이 너무 과해지고 있어요. 해외 한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이 자극적인 맛이 한식 본연의 맛인 것으로 잘못 소개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세계 미식 무대에서 경쟁하기 위해 한식이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짧았다.
"없어요. 단지 식문화의 차이일 뿐이에요."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저트로 이어지는 서양식 코스 기준으로 평가하니 다르게 보일 뿐,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한국 식문화가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따뜻한 환대의 마음, '정(情)'
그가 강조하는 한식의 본질은 재료와 조리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와 식탁에서 나누는 마음 역시 한식이 지켜야 할 가치라고 했다.
뉴욕과 파리, 도쿄 등 세계 곳곳의 매장에서 만난 수많은 손님 가운데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은 것은 최근 도쿄 신오쿠보점을 다녀간 한 일본인 손님의 장문 리뷰였다.
"리뷰를 읽어보니 '따뜻함'을 느꼈다는 것 같아요. 우리 조상님들은 손님이 오면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으로 베풀었잖아요. 본인은 못 먹을지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어했죠. 저는 그걸 한국인의 '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일본인이 느꼈다는 거예요. 내용이 너무 좋아서 전 직원에게 다 알렸어요."
그 손님이 느낀 따뜻함의 이유를 그는 이렇게 짐작했다.
해외 식당은 물론 현지 한식당에서도 김치나 밥, 국물을 더 달라고 하면 대개 추가 비용을 받는다. 하지만 옥동식에서는 별도의 값을 받지 않고 내어준다.
"단순히 '가성비'가 아니라, 손님들은 너무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고, 따뜻하고 기분 좋은 환대였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는 이러한 '정'의 문화가 지나친 상업화 속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국내외 한식당에서 다시 되살려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따뜻한 환대로 기억되는 식당, '정(情)'의 문화가 한식이 세계 무대에서 내밀 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이라는 것이다.
◆ 현장이 바라는 것, 정책이 채워갈 것
한식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자, 그는 가장 먼저 사람 이야기를 꺼냈다.
"일할 사람이 너무 없어요. 해외에서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교육된 한식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야 해요. 관저에만 요리사를 보낼 게 아니라, 현지 식당에도 인력이 배치됐으면 좋겠어요."
외국인 인재에게도 문을 넓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뉴욕에 있는 저희 식당 외국인 직원은 저랑 4년 일했는데, 저보다 김치를 더 잘해요. 이제 한국도 해외 인재에게 문을 열어서 한식을 더 많이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들은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 지원을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어요. 인력이나 교육자료 같은 게 현장에서 더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제대로 된 한식 레시피 같은 거요."
외국인 직원을 가르치려면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등 현지 직원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언어로 된 표준 레시피가 있어야 교육이 훨씬 수월하다는 설명이다.
해외 한식당이 겪는 이러한 어려움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주요 지원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 10월 20일 '해외 한식당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고급 한식당 중심이던 '해외 우수 한식당 지정제'를 대중 한식당까지 확대하고, 향후 5년간 지정 한식당을 1000곳(추천 한식당 900곳, 우수 한식당 100곳)으로 늘린다.
서비스·위생 요건을 갖추면 '추천' 등급, 국산 식재료 활용 등 추가 요건까지 갖추면 '우수' 등급으로 지정하고, 사후관리도 강화한다.
현장에서 필요성을 강조한 다국어 교육자료 보급도 주요 과제에 포함됐다.
한식 표준 매뉴얼을 제작해 다국어로 보급하고, 조리·위생·식재료 관리 교육 콘텐츠를 담은 '한식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2027년 하반기까지 구축한다. 온라인 '글로벌 한식 아카데미'도 가동한다.
식재료 조달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산 식재료의 기업 간 거래(B2B) 물류 지원과 수출 공급망 확충을 통해 해외 한식당이 우리 식재료를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인력 문제와 관련해서는 내년부터 본격 추진하는 한식 전문인력 양성 사업 '수라학교'의 교육생·수료자를 해외 한식당의 채용 수요와 연계할 계획이다.
다만, 해외 현지 비자처럼 국내 정책만으로 풀기 어려운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 "한식이 아니라 돼지곰탕을 알릴거예요"
해외 진출을 꿈꾸는 젊은 셰프들에게 그는 현실적인 조언부터 건넸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해외로 가서 바로 대박 나고 순식간에 성공한 줄 알아요. 절대 아니거든요. 옥동식 매장도 다 잘되는 것 절대 아니에요. 잘되는 매장도 있고, 안 되는 매장도 있고요. 그 가운데 해결책을 찾고 있는 거죠."
그는 해외 진출에 앞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좋은 현지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이라고 반드시 한식을 들고 해외로 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가 뉴욕에서 본 한국인 요리사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탁월한 역량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물론, 순간마다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외로 향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했다. 시장의 규모가 다르고,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볼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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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의 한식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묻자, 그는 다시 돼지곰탕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는 '돼지곰탕'을 알릴 거예요. 한식을 알리는 게 아니라요. 스시가 유명해져서 일식이 알려진 거고, 포(Pho)가 알려지면서 동남아 음식이 알려진 거잖아요. 우리가 지금 한식을 너무 방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방식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한식이라는 큰 범주를 한꺼번에 알리기보다, 세계인이 기억할 수 있는 '한 그릇'의 음식부터 제대로 알리자는 것이다.
옥 셰프에 따르면 현재 5곳인 옥동식 매장은 내년 10곳으로 늘어난다.
"세계 곳곳 메가시티에 돼지곰탕을 가지고 나가서 돼지곰탕, 그리고 사이드 메뉴들의 한식적 요소를 알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음식을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제 사업이긴 하지만, 그 역할을 제가 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정책브리핑 김두리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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