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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의 철학

200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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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필독서의 하나로 앨빈 토플러의 ‘제3물결’과 ‘권력이동’을 손꼽는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지도자들은 ‘권력 이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권력이동’을 애독했다고 밝혔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김 전대통령은 재임 시 토플러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자문을 구했을 정도였다.

정치 지도자 가운데 토플러의 자문을 받은 이는 비단 김 전대통령에 국한되지 않는다.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대통령도 재임 시에 토플러를 크레믈린으로 초청하여 러시아의 미래에 대하여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우연하게도 토플러는 고르바초프와의 만남 다음의 여행지를 한국으로 잡았기 때문에 이런 비밀스런 사실을 나에게 설명해 주곤 했다. 그것은 당시 방한 초청자였던 나에 대한 그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선물은 선물 치고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설명 속에는 ‘소련 붕괴론’이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플러는 고르바초프가 폐쇄적인 공산사회를 개방하고 정보 유통의 자유화를 시도하는 순간 체제붕괴의 길에 접어든다는 것을 서슴없이 단언하는 것이었다. 요즘 같은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누구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겠지만 당시의 상황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예측이었다. 토플러의 이런 분석과 예측을 나는 은밀하게 관계당국에도 전한 바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가치 있는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지식인이 말하는 흥미 있는 이야기꺼리 정도로만 여겼을 뿐이었다.

첫 대면서 "내책 해적판 출판돼 한국 싫다" 일괄

토플러와 나의 만남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내가 뉴욕에서 토플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거침없이 한국과 한국인을 싫어한다고 털어놓았었다. 그 까닭은 한국에서 자기의 저서들이 해적판으로 출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적판이 출판되고 그것이 용인되는 나라나 사람들은 지식야만인 취급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그가 우리를 혐오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의 귀결인 셈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얼굴이 뜨거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말이 나온 김에 토플러의 해적판을 한국에서 발붙일 수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토플러와 정식 출판계약을 하면서 기왕에 한국에서 출판된 해적판에 대한 보상적 차원에서 토플러의 방한 초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토플러의 한국 방문이 빈번해졌고, 그는 한국의 정보화 사회 촉진에 전도사 구실을 자임하고 나선 꼴이 되었다. ‘제3의 물결’, ‘미래쇼크’, ‘권력이동’, ‘전쟁과 반(反)전쟁’등 토플러의 이른바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우리나라 서점가에서 선풍을 일으켰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그의 저작물이 제시하는 미래예측은 철저한 현장 탐사와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문명 저널리즘이라는 점에서도 새롭게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젊을적 토플러는 노동현장 뛰어든 극렬반체제 투사

나는 토플러와 여러 차례에 걸친 만남을 통해서 무엇이 오늘의 그를 존재케 했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젊었을 때의 토플러는 책을 버리고 노동 현장에 뛰어든 극렬 반체제 투사였다고 한다. 노동 운동의 현장에서 동지로 만난 것이 그의 아내 하이디였다.

토플러 부부가 투쟁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반대와 반체제도 숨 쉬고 밥 먹게 해주는 토양과 체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 부부가 몰입했던 반체제 운동은 반대를 위한 숨통 막히는 투쟁만을 되풀이하는 갇힌 사회였다. 그곳에는 반대의 견해가 용납되지 않았고 무자비한 자아비판과 숙청이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이런 토플러의 경험은 문명과 체제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고 그것이 저서를 통해서 세상에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토플러는 자유와 민주,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열린사회는 같은 분모 속에 있으며 그것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토플러의 이런 철학이 IT 선진화를 지향하는 우리사회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나위도 없을 줄 믿는다.

◎이규행 대표
경향신문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등을 거쳐, 한국경제신문 대표이사와 문화일보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무료신문 ‘더 데일리포커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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